서 론
진단검사의학은 현대 의료에서 환자의 진단 및 치료 평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검사 결과에 오류가 있으면 잘못된 진단 및 치료 결정을 하게 되어 환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다[
1].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처방부터 보고까지 검사의 모든 과정에서 품질이 유지되어야 한다. 검사의 전체 과정은 검사가 시행되기 전까지인 검사전단계(preanalytical phase), 검사를 직접 시행하는 검사단계(analytical phase), 그리고 검사 시행 후 과정인 검사후단계(postanalytical phase)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전체 검사 오류의 5–15%정도가 검사단계에서 생기는 것에 비해[
2], 검사전단계 오류는 전체의 60–70%까지 보고되고 있다[
2,
3].
검사단계는 검사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진단검사의학 전문의와 임상병리사가 검사 업무를 수행한다. 또한 그 동안 검사의 정확도와 정밀도를 높이고, 검사결과의 표준화를 이루기 위한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었고, 내부정도관리, 외부정도관리 및 검사실 신임인증심사 등을 통해 꾸준히 검사실품질을 관리해 왔기에 검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었다[
4,
5]. 반면, 검사전단계는 여러 직종의 인력이 업무에 관여하고 검사 종류에 따라 처방-검체전처리 방법과 절차가 다양해서 오류 위험이 높은데도,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전통적으로 하던 업무 범위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충분히 관리하지 못하였다. 검사전단계에 있을 수 있는 여러 오류들에 대해 개선이 이루어져야 환자 안전과 치료 결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
1].
최근 유럽임상화학회(European Federation of Clinical Chemistry and Laboratory Medicine, EFLM)에서 검사전단계에 대한 실무그룹을 구성하여 검사전단계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오류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검사전단계 품질지표를 개발하고 설문조사를 통하여 현황을 파악하였다[
6]. 미국 College of American Pathologist (CAP)에서도 Q-probe라는 이름으로 검사전단계를 포함한 검사 전반에 걸친 품질지표를 관리하고 있다[
7]. 반면, 국내에서는 검사전단계와 관련한 연구들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8,
9]. 검사전단계의 각 요소로부터 오류가 얼마나 발생하고,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고, 이에 대한 문제 인식조차 미진하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는 국내 진단검사의학 검사실을 대상으로 검사전단계의 각 과정이 검사실 마다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통해 현황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고 찰
저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진단검사의학 검사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여 검사전단계의 각 과정이 검사실마다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반적인 현황을 파악하였다. 채혈 시 환자 확인, 금식 규정, 검체 라벨링 및 운반, 채혈 후 접수까지의 소요시간, 검체 내 용혈 등 실무적으로 중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설문하였다. 병원의 규모 및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답변이 제출되어 앞으로 검사전단계 관리 필요성이 높다고 생각되었다.
여러 가이드라인에서 채혈을 하기 전에 환자의 신원을 확인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그 방법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10-
12]. Clinical and Laboratory Standards Institute (CLSI) 가이드라인 H3-A6 [
11]에 따르면, 채혈 담당자는 환자의 이름, 주소, 식별 번호 또는 생년월일을 검사의뢰서(외래 환자의 경우) 또는 환자 식별 팔찌에 있는 정보(입원환자의 경우)와 대조해야 한다. EFLM WG-PRE (EFLM Working Group on Preanalytical Phase)에서는 환자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의료보험 번호 중 이름을 포함하여 최소 두개, 가급적 세 개의 독립적인 식별자로 환자를 확인할 것은 제안한다[
12]. 이번 설문조사에서 성인 환자의 경우에는 모든 기관에서 기본적으로 성명을 확인하고 있고, 거기에 더해서 추가적으로 생년월일이나 주민번호를 물어보거나, 침대의 환자이름을 확인하거나, PDA를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잘 지켜진다고 볼 수 있었다.
채혈에 대한 WHO 가이드라인[
10]에 의하면, 소아 및 신생아 환자의 경우, 환자의 손목이나 발목에 부착된 밴드를 식별 정보로 사용할 수 있으나 침대나 주변에 부착된 정보나 책자 등의 정보는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환자의 손목 밴드 혹은 침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다는 기관이 3분의 2 이상으로 많았다. 아쉽게도 설문을 개발할 때 환자의 손목 밴드와 침대에 적힌 이름을 구별해서 물어보지 않아서 실제로 침대에 적힌 이름을 얼마나 잘못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서는 보호자가 있는 경우, 보호자에게 아이의 성명을 묻고 확인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해당 사항은 잘 지켜지고 있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CLSI 가이드라인[
11]에서는 환자의 보호자 또는 간호사에게 환자의 이름, 주소, 식별 번호 또는 생년월일을 물어보도록 규정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의식의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환자의 가족에게 물어보는 기관이 많았고, 그 외에 침대 또는 손목 밴드의 정보를 확인하거나 PDA를 사용하는 기관이 있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의 확인에는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하는 기관이 10기관(12.3%) 있었으며, 이 중에서는 침대에 적힌 이름이나 손목밴드를 확인하는 방법만 쓰는 경우가 8기관(80%)으로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서 침대의 정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환자의 손목밴드의 이름과 등록번호를 검체의 정보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겠다.
채혈 전 환자 확인 시 CLSI 가이드라인 또는 원내 규정이 잘 지켜지는지 조사한 EFLM 연구에서[
13], 규정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16.1%였다. 스웨덴에서 진행한 한 설문조사 연구[
14]에서는, 채혈 전 환자 확인 시 병동에서 환자에게 이름과 식별번호(주민번호에 해당)를 물어보지 않은 경우가 9.6%, 환자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환자 확인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가 17%였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 환자 확인을 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규정된 방법이 존재하는지, 규정된 방법이 CLSI 가이드라인에 적합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의료기관인증평가 및 보건의료기본법의 환자안전기준에서도 정확한 환자 확인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의식이 없는 환자나 소아의 경우에도 채혈전 환자 확인이 규정대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5].
채혈에 관한 CLSI H3 가이드라인에서는 특정 검사의 경우 환자에게 금식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채혈 전 금식 여부를 확인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11]. 또한 EFLM에서는 혈액 검사에 대해 채혈 전 최소 12시간 금식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물 섭취는 허용하고, 채혈 24시간 전부터 알코올 섭취는 제한하고, 채혈일 아침부터는 담배를 피우거나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수를 마시지 않을 것을 규정한다. 이는 알코올 섭취와 담배는 지질 검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카페인은 혈당 검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6]. 껌을 씹었을 때와 씹지 않았을 때 검사 결과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으며, 해당 연구에서는 인슐린, C-펩타이드, 아밀레이스는 감소하고, 라이페이스, 빌리루빈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17].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대부분의 기관이 금식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79.0%가 금식을 확인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다만, 기관 전체가 잘 지키고 있는지 검사실에서 채혈하는 경우만 그러한지는 단언할 수 없다. 국내 기관에서 금식여부 확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비교적 잘 따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금식이 필요한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과 필요한 금식 시간에 대해서는 검사실마다 매우 다른 규정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금식이 필요한 검사항목과 구체적인 금식대상 음식, 그리고 금식시간에 대한 국내 가이드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껌을 허용한다고 답한 기관은 없었지만, 약 40%에서 허용 여부를 규정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껌도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규정을 정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금식 상태에서 한 검사와, 식사 후의 검사 결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금식 규정은 잘 지켜져야 하며, 지켜지지 않을 경우, 검사 결과의 정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8]. 금식의 기준을 병원에서 확실하게 정하고, 채혈 환자에게 적용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검사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9]. 최근 EFLM에서는 금식하지 않은 지질검사를 추천한다는 연구[
20]도 있지만, 금식일 때와 아닐 때 진단에 사용하는 기준 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는 여전히 금식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환자가 금식을 하지 않았을 때는 상황에 따라서 검체를 거절하거나, 채혈을 진행해야 할 경우 금식 여부를 의무기록에 함께 기재하여 임상의사가 검사 결과를 활용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내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검사전단계 오류를 분석한 연구에 의하면, 응급실 및 병동에서의 라벨링 오류가 외래보다 많다[
9]. 이는 여러 환자의 라벨을 한 번에 출력하거나, 출력된 다양한 검사를 위한 라벨들을 환자별로 묶어 놓았다가 환자에게 가져가서 채혈하는 등의 업무관습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병동과 응급실은 대부분 채혈 전에 작업대에서 라벨을 붙였다. EFLM에서 12개의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53.4%의 채혈자가 채혈 후에 검체 라벨을 붙였으며, 29.6%의 채혈자는 환자가 없는 곳에서 검체 라벨을 붙였다[
13].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 및 검체 확인 관한 CLSI GP33 가이드라인에서는 검체 라벨을 채혈 후에 환자 앞에서 붙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
11].
라벨링 오류는 검사 결과를 다른 환자에게 보고하게 하여 잘못된 의료 처치를 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하다. 앞서 언급한 유럽에서 시행한 연구[
13]에서는 정맥 채혈을 여러 항목들에 대해 평가하고 각각 위험도를 총 다섯 단계로 분류하였는데, 검체 라벨링 오류 관련된 항목인 검체 튜브가 라벨링 되었는지, 그리고 환자가 있는 곳에서 라벨링을 시행하였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potential fatal outcome), 가장 위험도가 높은 단계(life threatening)로 평가하였다. 따라서 라벨링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환자 앞에서 라벨을 붙이도록 하거나 채혈 전 PDA로 환자 바코드를 스캔하는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 최근 EMR 인증제에 바코드 또는 RFID를 이용한 안전한 투약 항목이 추가되면서[
21]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PDA 도입이 늘어나고 있지만, 수혈이나 투약에만 PDA를 사용하고 채혈에는 사용하지 않는 기관도 있다. 채혈 시 PDA를 활용하여 환자 확인을 하면 라벨링 오류 사례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으므로[
22,
23], PDA 또는 바코드 리더를 채혈에도 사용하면 검사 전 오류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채혈 후 분석이 지연되는 경우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반혈액검사는 비교적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24], 혈당, 전해질 및 AST, ALT 등의 효소검사는 영향을 많이 받고, 실온에 보관하는 경우 결과에 더 큰 영향을 준다[
24,
25]. 따라서 검체를 냉장보관 하지 못하는 경우, 검체를 되도록 빠르게 검사실로 운반하여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채혈-접수 소요시간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 곳이 과반을 넘고, 모니터링을 하는 경우에도 접수까지 걸리는 시간에 대한 관리 기준이 다양했다. 채혈 후 실제 검사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과정에서 검체가 적절히 관리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진단검사의학재단 우수검사실 인증심사 문항에 넣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검사전단계 품질지표(quality indicator, QI)를 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기관은 절반이 되지 않았다. International Federation of Clinical Chemistry and Laboratory Medicine (IFCC)의 Working Group “Laboratory Errors and Patient Safety” (WG-LEPS)에서 검사전단계 오류를 모니터링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품질지표를 제안하고 있다[
26]. 모든 유럽 국가와 미국, 호주, 인도, 중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국제 설문조사[
27]에서는 약 90%의 응답자가 하나 이상의 검사전후단계 품질지표를 측정하고 있었다. 품질지표를 도입한 검사실의 경우, 38%는 생물의학 문헌에서, 35%는 내부에서 개발된 품질지표를 사용하며, 17.5%가 IFCC WG-LEPS 프로젝트에서 개발된 품질지표를 사용하고 있었다.
IFCC WG-LEPS에서 제시하는 품질지표는 계산 방식이 모호하거나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검사정보관리시스템(laboratory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 LIMS)에 기록되지 않는 자료로 계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앞서 말한 국제 설문[
27]에서도 LIMS로 수집할 수 있는 항목은 많지 않았는데, 검사 기록 오류, 데이터 기록 오류, 운송 및 보관 문제로 인한 부적합한 검체, 환자식별 오류, 검체 식별 오류 등만 LIMS로 수집 가능했다. IFCC WG-LEPS에서 제시하는 품질지표를 기반으로 실용적인 한국형 품질지표를 개발하여 진검재단 우수검사실 인증심사 문항에 넣거나, CAP의 Q-probe 같은 활동을 하면 검사 품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검체 내 용혈은 검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검사실에서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28]. 이번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병원의 90% 이상에서 검체 용혈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법은 기관마다 차이가 있었는데 이 중 가장 많은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육안 평가 방법은 용혈지수에 비해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이 권장되지 않는다[
29]. 반면에 용혈지수를 사용한다고 답한 기관은 약 40%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육안 평가 방법을 지양하고용혈지수 또는 전처리장비에 내장된 카메라를 사용할 것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 용혈 지수는 검사기기에 따라서 값 산출을 다른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결과 값의 표현 방식도 범주형, 연속형 등으로 다양하며, 단위에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용혈지수를 기준으로일치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용혈지수를 표준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의 검사전단계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채혈 시 환자 확인, 금식 규정, 검체 라벨링 및 운반, 채혈 후 접수까지의 소요시간, 검체 내 용혈과 같이 검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 필요한 경우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거나, 외부정도관리를 시행하여 검사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 결과는 검사전단계 오류 개선을 위한 기초 자료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지속적인 개선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