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및 주요 결과
이 연구를 통해 북한의 의학학술지 ‘소아, 산부인과’에 수록된 논문들이 다루고 있는 영역의 분포와 각 영역에서 다루어진 질환의 분포와 연도에 따른 연구 진행 현황과 논문들의 연구 종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연구의 주요 결과들을 통해 현재 북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역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전체 논문 949건에서 절반 이상이 산부인과 영역(494건, 52%)의 논문이었고, 산부인과 영역 중 모체태아의학 분과(257건, 52%)가 가장 많았다. 5년간의 추세에서도 모체태아의학은 항상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여 산부인과 영역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된 분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북한 보건의료 사회에서 모성 보건을 다루는 모체태아의학이 중요한 의제인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2009년 북한의 국가 최우선 보건과제 1순위가 북한의 보건 시스템 강화에 대한 전반적 의제인 것을 고려하면(WHO, 2009), 2순위인 모성 보건이 실질적으로 가장 우선적인 보건과제라는 점과 일치한다. 실제로 2000년 출생아 10만 명당 모성 사망률 128.0명, 출생아 1,000명당 영아 사망률 57.8명이었던 북한의 모성 보건지표는 2015년 모성 사망률 82.0명, 영아 사망률 18.5명으로 개선되었으나 이런 개선된 수치는 같은 해 남한의 모성 사망률 8.7명, 영아 사망률 3.0명에 비하면 각각 10배, 6배의 차이를 보인다.
모체태아의학에서는 자연분만을 주제로 한 논문이 26건으로 가장 많았고, 제왕절개는 13건으로 4위를 차지하였다. 마취에 관한 연구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두 주제에서 가장 많았던 것을 통해 북한에서 자연분만이나 제왕절개에서의 통증 조절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이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모체태아의학 영역에서 다루어진 조산 논문은 12건으로 전 세계적으로 조산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도 이러한 추세와 일치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산모 사망을 직접 다루는 논문은 없었으나, 북한에서의 산모 사망의 주된 원인(
WHO, 2012)인 임신고혈압(15건), 유산(7건), 산후출혈(5건)에 대한 논문이 높은 빈도를 보였다. 이는 앞서 언급된 북한의 높은 산모 사망률과 간접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임신성 고혈압이 특징적으로 많이 연구되었는데, 이는 현재 북한 산모들의 인구학적 특징을 추정하건대 산전 진찰을 통한 예방이 부족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임신성 고혈압의 발생 원인은 영양부족, 감염에 대한 노출, 산모의 나이 증가, 스트레스 등으로 종합적인 산모 관리를 통해 감소시킬 수 있는 질환이다. 유산은 산모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지만, 유산의 원인인 감염이나 후기 유산에서의 출혈 등의 직접적 원인이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부인과 영역에서는 자궁경부암 연구가 23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 중 치료에 대한 논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보아 북한에서는 자궁경부암이 높은 질병 부담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진단검사나 예방보다는 발병 후 치료가 주를 이룬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자궁경부암은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전암 단계에서 치료를 받게 되면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므로, 정기검진 제도에서의 미흡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비뇨부인과학에 해당하는 논문은 가장 낮은 빈도를 보였으며, 2016년과 2017년에는 아예 발행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영역에서 주로 다루는 요실금 등 골반저질환은 세계적으로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나타난 고령화와 개인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으로 대두된 질환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의료비 지출이 삶의 질 향상보다는 생명과 관련된 위중한 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비뇨부인과학을 다룬 논문의 빈도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소아과 분과별 분포에서 소아소화기영양, 알레르기및호흡기와 소아심장 분과가 가장 높은 분포를 보였는데 이 세 분과에 속한 논문들은 소아과 논문의 58.4%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북한의 소아에서 소화계통, 호흡계통, 순환계통의 질환이 상대적으로 높은 질병 부담을 일으킨다고 추정해볼 수 있으며 이는 북한 내과 학술지 논문에서 다루어진 질환들의 분포에서 도출된 결과와 일치한다(
Ha & Lee, 2018).
2015년 북한의 5세 미만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21명으로 남한의 3.5명에 비해 6배가 높다. 북한의 5세 미만 유아 사망의 54%는 생후 4주 이내에 발생하며 그 원인은 조산, 신생아 가사, 선천성 기형, 패혈증 등이 있다. 생후 4주 이후의 사망 원인으로는 전염병으로 인한 폐렴, 설사와 영양실조이다(
Lee et al., 2020). 이 연구에서는 소아과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5개의 연구 주제가 설사, 선천성 심질환, 폐렴, 영양결핍, 기관지염인 점에서 높은 유아 및 영아 사망률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태아 사망에 대한 논문은 5개년 통틀어 4건, 5세 미만 유아 사망에 대한 논문은 1건으로 이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있다.
소아과에서 단일질환으로는 설사를 주제로 한 논문이 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 중 감염성 설사가 22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식수원과 위생 시설이 개선되지 않은 가정에 사는 아동은 설사와 같은 수인성 질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 이는 북한 인구의 약 33%는 안전하게 관리되는 수원에 접근할 수 없다는 2019년 Joint Monitoring Pro-gramme Report의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소아과에서 다뤄진 주제 중 24건으로 두 번째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것은 선천성 심질환이다. 선천성 심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선천기형이면서 선천성 기형으로 인한 사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van der Bom et al., 2011). 북한에서도 세계적인 추세와 같게 선천성 심질환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중 11건은 정확한 질환명을 나타내지 않고 ‘선천성 심장병’으로 표현되어 있어 세부 분석을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감염성 질환과 선천성 심질환 다음으로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영양결핍이다. 북한의 6개월에서 23개월 어린이의 3분의 1이 세계적으로 정의된 최소 허용 식단(minimum acceptable diet), 즉 최소한의 식품 다양성과 최소 섭취빈도를 조합한 식단을 받지 못하고 있고, 어린이의 5분의 1이 만성적인 영양결핍을 앓고 있다(United Nations, 2020). 이 연구 결과 영양결핍의 치료에 대한 논문의 빈도가 높은 것은 북한에서 소아 영양결핍이 여전히 문제가 된다는 것을 반영한다.
유방외과에서는 대체의학적 치료법을 주제로 한 논문이 13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는 대체의학을 실제 임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서의 대체의학의 활용은 현대적 의약품 및 의학 기술의 부족을 보완하려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보건 및 의학·과학 사업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동당의 정책에 근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Encyclopedia of Korean Culture, 1998).
5개년 통합 분석과 연도별로의 분석에서 모두 임상연구가 가장 많았으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의학 연구의 대다수를 근거 수준이 높은 임상연구로 시행하고 있는 점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임상연구는 무작위임상시험을 통한 무작위배정과 맹검화 등 편향과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를 가짐으로써 가장 높은 연구 신뢰도를 가지게 된다(
Burns et al., 2011;
Concato et al., 2000). 그러나 ‘소아, 산부인과’에서 임상연구의 비율이 높은 이유는 전체의 34.7%를 차지하는 비무작위임상시험으로 인한 것이며, 무작위임상시험은 한 건도 없었다. 시행된 임상연구에서 무작위배정과 맹검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으며 적절한 대조군이 설정되지 않는 등 근거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연구설계를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고려의학’ 학회지를 분석한 연구(
Yoon et al., 2019)에서 임상연구 중 무작위임상시험 없이 전부 비무작위임상시험 논문만 수록되어 있었다는, 이 연구와 일치하는 결과를 보였다. 다만 ‘고려의학’ 학회지 분석에서는 이 논문에서 기초연구라 할 수 있는 실험연구가 가장 많이 시행되었으나, 이 연구에선 비무작위임상시험이 가장 많은 시행된 연구분류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통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는 치료법은 서양의학이 주로 활용되고, ‘고려의학’에서 주로 다루는 한의학적 치료법은 아직 기초연구를 통한 개발 단계에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3. 한계점 및 향후 연구계획
‘소아, 산부인과’에서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빈도가 높음을 근거로 질환의 유병 정도를 속단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북한 학술지의 차례 다음 장은 항상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의 축사 또는 연설을 실어 지도자와 노동당에 대한 찬양과 국가가 제안하는 연구,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논문 서론의 첫 문장은 항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인용하는 것은 다른 북한 논문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며(
Ha et al., 2018), 이는 논문 주제 설정에 있어서 북한 정부의 의견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며 북한정부의 보건 의학적 과제들의 우선순위가 연구 빈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학술지에 실린 연구 분포를 통해 해당 질병의 유병 정도를 연결시키기 어려우나 북한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북한 의학 연구자들이 그 질병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적 영향은 해당 질병을 다룬 논문의 수에 반영된다고 추정할 수 있다.
2020년 이후 논문이 아직 입수되지 않아 최신 상황이 연구 결과에 포함할 수 없었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향후 2020년과 2021년 출판물 분석을 시행하여 특히 코로나 19로 의한 보건의료 상황의 변화를 반영해볼 수 있다. 또한, 북한 사회 상황을 반영하기에는 5개년이라는 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개년을 추가로 분석해 본 연구에서 도출된 주요한 결과가 일치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에서는 빈도 분석을 주로 수행하였으며, 키워드 선정을 통한 내용분석 또한 빈도가 높은 주제를 대상에 한정되어 진행되었다. 따라서 향후 이 연구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활용해 북한 의학 논문의 내용분석을 시행해볼 수 있다. 이는 북한 내부의 질환 분포뿐만 아니라 해당 질환에서 관심을 가지는 연구 주제를 구체적으로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과와 소아, 산부인과를 넘어서 다른 의학 분야에 관한 연구로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 향후 분석해볼 수 있는 북한의학학술지에는 ‘고려의학’,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조선의학’, ‘예방의학’, ‘기초의학’, ‘조선약학’, ‘외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동일한 시기에 우리나라의 소아과와 산부인과 영역의 의학 학술지를 추가로 분석해 비교해볼 수 있다. 북한의학학술지에 비해 다양한 학술지에 논문이 출판되고 양이 많아 분석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소아, 산부인과’ 학술지와 같이 대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서 발행되는 학술 저널인 ‘ Obstetrics & Gynecology Science’와 ‘ Clinical and Experimental Pediatrics’로 한정해 분석을 진행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