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최근 정신보건계에서는 정신질환에서 완전히 치료되는 것은 아니나, 질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에 새로운 목적과 의미를 얻는 회복 모델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1-3]. 정신 재활 모델이 기존 정신보건 서비스의 주요 목표로 시행되고 있으나 대상자가 질환으로 인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도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모순을 보여 전문가 중심적이며 당사자를 제외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4]. 또한 2017년 부터는 기존의 정신보건법을 전면 개정한‘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정신장애인의 장기입원을 지양하는 탈원화와 질환관리를 병행한 지역사회 적응을 목표로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기존 재활 모델에 대한 비판과 정책적 변화에 따라 정신 장애인의 회복 지향적인 관점이 중요시될 것으로 볼 수 있다[3].
정신장애인의 회복과 관련된 여러 요소 중 임파워먼트는 정신장애인의 회복의 구성 요소이자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핵심 개념으로 보고되고 있다[5-8]. 임파워먼트(Empowerment)란 무력하거나 취약한 개인이 자신의 삶이나 방향을 결정하는 실제적이고 인지적인 힘을 가지는 과정이자 결과를 말한다[9-12]. 임파워먼트는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어 다소 의미가 모호한 경향이 있으나[6], 정신보건 연구의 경우 권한 부여[13], 역량강화[14]와 같은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된 단어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듯이 임파워먼트는 힘을 얻고, 발견, 획득하여 사용하는 과정을 말한다[15]. 정신장애인은 정신질환이라는 낙인으로 억압과 무력감을 경험하지만[16] 임파워먼트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얻으며 장애를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발표되었다[6,17].
그리고 이러한 정신장애인의 임파워먼트 향상에 있어서는 자신과 유사한 동료 정신장애인 간의 상호 조력과 지지제공인 동료지지(Peer support)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18,19]. ‘동료지지’는 정신장애인을 가진 당사자가 동일한 어려움을 가진 동료에게 도구적인 지지와 사회정서적인 지지를 상호간에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20]. 동료 지지는 6가지로 구분되는데,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자조 집단’,인터넷에서 자신의 정신과적 증상과 의료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지지집단’, 정신장애인이 심리적 상담이나 지원 서비스를 다른 동료 정신장애인에게 제공하는 형태인 ‘동료 제공 서비스’, 정신장애인이 사업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운영하는 ‘동료운영서비스’, 비정신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이 함께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하는 ‘동료파트너쉽’그리고 전통적인 정신보건 서비스 기관에 고용되어 일하는 ‘동료직원’이 이에 해당된다[21,22]. ‘동료 지지’는 ‘동료 지지’는 제공받는 정신장애인 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장애인의 임파워먼트 향상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요구된다[18,19].
이러한 정신보건에 관점변화의 요구와 동료지지의 관심 증가로 최근 국내에서는 동료지원가 서비스가 시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23]. 동료지원가란 동료상담, 자조모임 진행과 같은 서비스를 당사자인 장애인이 제공하는 형태로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취업 지원을 위해 2018년도 직무 개념화를 통해 2019년도부터 진행되고 있다[7,23]. 이러한 동료 지지 서비스의 제도화는 궁극적으로 정신장애인의 회복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24].
따라서 동료지원가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하여 지원가들의 활동경험과 요구 사항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반영한 연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료 지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국외에 비하여[24,25] 국내의 연구는 저조한 실정이다. 또한 시행된 기존의 연구의 경우대상자들이 무급이거나 자원봉사로서 일하며, 돈을 받는다 하여도 적은 급여와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불안정했다[11,21]. 따라서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활동하고 있는 정신장애인의 경험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해당 사업의 긍정적인 영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동료지원가 활동을 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임파워먼트 경험을 파악하고자 한다.
연구방법
1. 연구설계
본 연구는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경험을 탐색하고자 질적 사례연구방법을 활용하였다. 질적 사례연구방법은 맥락 속에서 단일하거나 복합적인 특정 사례를 깊이 있게 알고자 할 때 사용되고 있다[26]. 본 연구에서는 3개의 사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맥락 속에서 자세하고 깊이 있는 자료를 도출하고자 한다.
2. 연구참여자
본 연구에 참여한 연구대상자들의 일반적 특성은 Table 1과 같다. 연구참여자는 남성 1명, 여성 2명이었으며 연령대는 30대에서 50대까지였다. 진단명은 모두 조현스펙트럼 장애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발병하였다. 남성을 제외하고 미혼이었다. 그리고 모두 동료지원가로서 활동 전, 사무직이나 식당 업무와 같은 다양한 직업 경험이 있었다.
3. 윤리적 고려
자료수집 전 사전에 연구의 목적, 면담 내용이 녹음되며 도중 언제든지 자유롭게 참여를 중단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수 집된 자료는 익명을 보장하며 연구목적 외에는 사용되지 않을 것과 녹음된 내용은 연구 이후 폐기할 것을 고지한 후 자발적인 동의를 한 대상자에 한하여 시행되었다. 면담 전에는 다시한 번 자발적인 참여의사를 확인했고, 동의를 한 대상자에 한하여 연구의 목적과 의의, 연구 주제와 질문 내용, 익명 보장이 명시된 자료를 서면으로 제공했다. 면담이 종료된 후에는 연구대상자에게 소정의 선물을 제공하였다.
4. 연구자의 준비
본 연구자는 의료기관에서 환자 상담을 주 업무로 하는 정신과 간호사로서 일하고 있다. 또한 간호학 석사과정에서 질적연구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강의, 토론 및 세미나를 통하여 학습하였다. 그리고 해당 연구를 준비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발표된 질적 문헌을 탐색하며 연구에 대한 이해를 해나가고자 했다.
5. 자료수집
본 연구의 자료수집은 2018년 11월에 해당 병원의 낮병원 간호사의 협조 하에 해당 기관 내 프로그램실에서 소규모 그룹 인터뷰로 진행되었다. 인터뷰 시행 전 연구대상자에게 임파워먼트의 정의와 요소를 기술한 자료집을 제공하여 해당 인터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자료수집은 1시간 40분이었다. 또한 인터뷰 전 동료지원가와 담당 간호사가 진행한 정신건강전문요원 강의에 참여해 해당 동료지원가의 인적 사항과 동료지원에 대한 활동의 이해를 높이기 위하여 노력했다.
연구 질문은 지역사회 내 동료 지지활동 경험을 연구하기 위해 작성되었던 하경희[21]의 연구를 바탕으로 구성하였다. 첫번째로는 동료지원가 참여 계기와 현재 하고 있는 업무 내용, 동료지원가로서의 장단점에 대해 질문했다. 두 번째로는 동료지원가 활동 이전과 이후의 달라진 변화와 이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 영향은 어떤 것이 있는지 질문했다. 세 번째로는 동료 지원가로서의 활동 의의와 원동력을 물어보았고, 개선되어야할 점이 무엇인지 질문하였다.
6. 자료분석
본 연구는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해 나타난 정신장애인의 임파워먼트 경험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본 연구에서 시행된 질적 사례 연구에서 사용되는 자료분석방법은 사례 내 분석과 사례 간 분석이다[26]. 따라서 연구자는 그룹 인터뷰 시행 후 연구참여자의 녹음된 면담 내용을 반복하여 들으며 내용을 전사하였다. 이후 전사한 자료를 반복적으로 읽으며 사례 내 분석에서는 연구참여자들의 정신장애인으로서 삶과 동료지원가를 지원하게 된 계기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그 이후 사례 간 분석을 통해 각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를 분석하고자 했다.
연구결과
1. 사례 내 분석
본 연구에 참여자는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로 이를 위해 동료지원가를 고용하고 있는 정신병원의 낮병원에 접촉했다. 해당 정신병원의 낮병원에서는 정부 시범사업이 시행된 이전, 자체적으로 2018년도부터 동료지원가에 대한 이론 교육과 실습과정이 포함된 1년간의 정규 교육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당 연구를 위해 접촉한 총 3명의 정신장애인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연구참여자 A
50대 남성으로 20대 초반 조현병으로 진단을 받고 폐쇄병동 입원치료를 받았다. 치료예후가 좋아 대기업에 취업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정신과 약물 치료를 중단했다. 투약 중단 후 다시 재발하게 되며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폐쇄 병동 입 퇴원을 반복했다. 퇴원 이후 주치의의 권유로 2013년부터 2015년도까지 정신건강센터에서 방문 서비스 프로그램에 2년간 동료지원가로 활동했다. 주 업무로는 센터에 나오지 못하는 정신장애인들을 방문하여 상담하는 업무를 시행했다. 2년여간 업무를 수행했지만 해당 사업이 종결된 후에는 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2016년도부터 다니고 있던 병원의 주치의와 병동 간호사의 권유로 낮병원에서 동료직원으로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일을 했다. 그리고 2018년도 동료지원가 과정을 수료 후 동료지원가로 정식 고용되어 낮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2) 연구참여자 B
30대 여성으로 10대 후반에 조현병 증상이 시작되어 학교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였으나 증상으로 퇴사를 했다. 이후 가족의 권유로 20대 중반부터 정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증상이 호전되면 낮병원을 다니다 악화되면 폐쇄병동을 입원을 반복했다. 낮병원을 다니던 중 동료지원가 제도에 대해 알게 되며 관심을 가지던 도중 주변의 권유와 가족의 지지로 2018년도에 동료지원가 과정에 참여했다. 약 1년동안다니고 있던 병원 내 자회사에 고용되어 매점 업무와 교육과정을 병행하였고 2019년도부터는 동료지원가로서 정식 고용되어 낮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2. 사례 간 분석
3명의 연구참여자들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하여 얻게 된 사례 간 분석 결과는 Table 2와 같다.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하여 3개의 핵심 범주인정신장애인의 ‘개인적 임파워먼트’, ‘대인관계적 임파워먼트’, ‘정치적 임파워먼트’가 도출되었다. 이와 관련된 분석은 다음과 같다.
1) 개인적 임파워먼트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하여 연구참여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대답했다. 또한 활동을 통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신장애인이자 동료지원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① 무력감에서 벗어남
현재의 정신재활 모델은 전문가 중심으로 당사자인 정신장애인을 서비스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간주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4]. 대상자들은 이러한 체계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하여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응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런데 그 경험을 했어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도 할 수 있다. 전에는 그런게 없었죠. 낙담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지내다가, 그런 생각이 드니까 활동적이 되는거죠. 내일을 내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연구참여자 A)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거죠. 아무런, 제가 봤을 때는 예전에는 이 세상에 별로 필요한 거 같지 않다. 나 하나 없어도 이 세상 잘 돌아간다. 가족들만 조금 힘들 뿐이다. 세상은 돌아가는데 있어서 그냥, 아무 그런거 없을 거다. 그랬어요. 그런데 맡을 일을 하고, 책임을 다하고 하니까 필요한 사람이 되었어요. 내가 생산적인 사람이 된다는 건 조금 더 내가 소중해지는 거죠.(연구참여자 B)
A의 경우 동료지원가 경험 이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러나 활동을 통해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 있었다. B의 경우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자신이 소중해지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즉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이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무력감을 벗어나는 경험을 했다.
② 자신감을 가짐
연구참여자들은 직업 욕구가 있음에도 질환으로 인해 입 퇴원을 반복하게 되며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동료지원가로서 직업을 얻고 활동 할 수 있게 되자 자신감을 얻었다.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요. 돈도 벌고 싶고 일도 하고 싶었어요. 직업은 생활을 직업에 맞춰서 하게 되는 거죠. 직업이 없다면 돌게 되잖아요. 센터에 나가서 프로그램을 내가 하기 이전에는 나만의 생활이 없잖아요. 그런데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구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제일 커요.(연구참여자 A)
그때 제가 저는 꼭 직업을 가져야만 했어요. 돈을 벌어야 했는데, 제가 예전에 학교 다녔을 때 배우게 된 근로의 의무를 중시하기도 했고, 집안 사정상 돈도 벌어야 하는데 자꾸 실패하는 거에요. 맞는 일을 찾기가 너무 어렵더라구요. 워낙 힘든 상황이라 일을 잘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기가 어렵기는 했어요. 그래서 계속 자신이 없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알바 수준밖에 안되고 자신감이 많이 낮아졌었는데, 낮병원 다니면서 처음 오티때 들었거든요. 동료지원가에 대해서요. 아 그때 감동받았어요. 아 내가 경험한 것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에는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싶은데 자신감이 많이 낮았어요. 스펙이라 그러죠. 이력서 한 줄 더 넣을 수 있는거 그런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봤을 때는 나에게 동료지원가가 가장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적재 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시스템이 정해져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그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며 포용해주면서 잘 살수 있게끔 해주는 시스템이 너무 좋았어요.(연구참여자 B)
A의 경우 동료지원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며 규칙적인 생활을 가지게 되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B에게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감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정신과적 증상으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직업이 없는 자신에 대해 낮은 자존감과 가치 없음을 느끼던 도중, B는 낮 병원을 다니며 동료지원가 제도를 알게 되었고 ‘감동을 받게 되었다. B는 자신이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정해진 동료지원가 과정을 통해 이전에 느꼈던 무가치감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③ 나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함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해 연구참여자들은 다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신과적 증상이 혼자만의 경험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며 위안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질환으로 인해 재발하거나 증상 악화로 업무를 할 수 없는 자신을 이해하게 되며 환자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다.
회원분들이랑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아 정신증이라는게 보편적인 현상이구나. 나한테만 일어나는 특별한 경험인 건 아니구나. 그렇게 느껴요. 그러면서 위안을 느끼죠. 위안을 많이 받아요.(연구참여자 A)
내가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뭔가 불안해하고 마음적으로 초조하고 그랬는데, 조금 그런 것 들을 많이 내려놓게 됐어요. 일단 그런 것 들이 내가 너무 힘드니까, 내가 이 일을 장기적으로 해야 하니까요. 직업 안에서 일하다가 힘들 때가 있어요. 근데 인정하게 됐어요. 그런 굴곡이 있는 것을 받아들였어요. 내가 이렇게 힘들다가도 잘 지낼 수 있겠구나, 이렇게 잘 지내다가도 힘들 수 있겠구나. 인정하게 되면 마음이 편해요. 아주 편해요. 하하.(연구참여자 C)
A의 경우 동료지원가로서 다른 정신장애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환청이나 망상이 혼자서 겪는 것이 아님을 알게되어 위안을 얻었다. C의 경우 완벽하거나 우수한 환자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자신이 ‘굴곡이 있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위안받음과 굴곡을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은 혼란스럽기만 했던 정신 질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해 연구참여자들은 이들의 고유 업무를 규정하고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제도가 정립되지 않는 초기 단계에서 이들은 정체성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통해 치료진이 아닌 동료지원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뭐지 나는 지금 치료진인가? 그러면 나는 이걸 다 갖춰야 하는데, 그런게 엄청 부담되거든요. 근데 동료지원가니까 부담이 덜하죠.(연구참여자 B)
일단은 동료지원가로서 정체성을 찾는 일? 전 동료지원가 과정이 설립되기 이전부터 일했잖아요. 그때는 전체적인 것을 다 알아야 한다.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고, 야근도 같이 하고, 같이 했는데 그럼 내가 치료진인가? 그럼 내가 이런 역할을 계속 하나? 나는 동료지원가로 왔는데, 도대체 동료지원가라는건 무엇일까?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죠. 지금은 찾았어요. 저는 동료이자 친구로서의 역할이고, 무엇을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동기부여를 하는 거고, 치료진으로서 완벽하게 무언가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고 그런 부담감으로는 못해요. 이야기 그런걸 들어주고 그리고 내가 이런 일을 도와주고 싶을 때는 다른 자원을 찾아보고 내가 치료진으로서 생각하면 너무 힘들거든요. 내가 그 분의 회복 여정에 같은 인생 여정에 같이 뛰는 페이스 메이커 같은 보폭으로 뛰어주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해요.(연구참여자 C)
연구결과 동료지원가는 정신 보건 서비스의 이용자이자 제공자로서 정체성의 문제를 겪는 것으로 보고되었다[25].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혼란감에서 자신의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서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B는 동료지원가와 치료진을‘구분’하는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었다. C의 경우 2018년 동료지원가 과정이 신설되기 이전에는 낮병원의 동료직원으로 고용되어 일을 했었다. 동료직원은 다른 정신 전문가와 같은 업무를 시행하기 때문에, C는 다른 일반 직원들과 같이 일하다 동료지원가로 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한 혼란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감을 겪으며 동료지원가로서의 자신은 일반 치료진이 아닌 ‘페이스 메이커로서 동료 정신장애인의 회복의 길을 같이 뛰어주는 동반자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2) 대인 관계적 임파워먼트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개인적인 임파워먼트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관심으로 이어졌다. 증상에 몰두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동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이전과 달리 가족에게 자기 주장을 명확히 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① 고립에서 벗어나 동료에 대한 관심을 가짐
정신질환은 초기 성인기에 발발하며 망상과 환청과 같은 정신과적 증상으로 인해 대인관계의 위축과 같은 사회적 고립을 겪는다[27]. 연구참여자들은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해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고립된 세계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제가 상담했던 분 중에 한 분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건 담당 사회복지사분도 모르는 이야기였어요. 그 사람과 내가 가까워진 것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이 참 좋더라구요. 그리고 여기 와서도 회원들과도 상담을 하면서 그 분들이 저를 믿고 상담을 해주시는 것에 대해서 아주 고마움을 느꼈어요. 내가 이런 증상이 있다. 그리고 조언을 얻으시더라구요. 그게 좋았어요. 느낌이 더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런게 있죠. 주치의에게 이야기 하는건 약을 올릴까봐 말을 잘 안하는데 그걸 감춘다기 보다는 열어서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잖아요. 아주 고마워요. 이런 활동을 하기 전에는 관심도 안 가졌죠. 주변에 관심을 돌리는게 참 큰 것 같아요.나중심에서 벗어나서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그게 큰 변화 에요.세계가 나 위주였는데,그 세계가 허물어지는 거죠.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고 그게 아주 큰 발전이에요.(연구참여자 A)
동료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어요. 막연하게 그냥 잘 됐으면 좋겠다 했는데, 아끼는 정도는 아니었어요.(연구참여자 B)
A는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나 중심의 세계가 허물어지게 되었다. 허물어진 세계에서 A는 이전에 관심을 느끼지 못했던 타인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상담을 통해 동료의 이야기를 듣게 되자 고마움을 느꼈다. B 또한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주변 동료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② 가족을 향해 자기주장을 함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가족에게 의존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28]. 따라서 가족의 의견에 대해 정신장애인들이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개인적인 힘을 가지게 된 정신장애인들은 가족의 주장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아버지한테, 너 그냥 생산직 들어가라고, 저 같은 경우에 그렇게 이야기하면 다 그렇게 살아가게 되거든요. 뭔가, 저는 솔직히 말해서 서비스직이 맞긴 맞거든요. 근데 이제는 말하죠.(연구참여자 B)
아빠가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WHO 협력센터에서 일한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고, 우리 딸이 WHO협력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구나 어깨가 올라갔어요. 그런 과정 안에서 제가 강해졌어요. 예전에는 가족의 분위기를 보며 눈치 보고 아빠 위주로 행동하고 아무것도 못했는데, 지금 사회복지 공부를 하며 쉬고 있는데, 아빠가 사회복지 따라 했거든요. 근데 내가 아빠 나는 사회복지사가 아니고 동료지원가야 나는 이거 꼭 할 거야 하고 주장했어요.(연구참여자 C)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주변의 권유로 동료지원가를 지원했다. 그러나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가족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변해갔다. B의 경우 자신에게 생산직으로 일할 것을 권유하는 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C의 경우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의견을 모두 수용했었다. 하지만 동료 지지 활동을 하며 아버지가 지원가가 아닌 다른 일을 권유할 때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 정치적 임파워먼트
동료지원가 경험을 통해 연구참여자들은 제도의 발전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필요성에 대해 인식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영향을 끼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① 동료지원가 제도의 법제화 필요성을 느낌
현재 2019년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서는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공일자리 사업 추진 방안으로 동료지원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초기 시범 단계로 관련 제도는 미비하며, 교육 지침과 근무 특성과 같은 구체적인 사업 방향은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7,23].
인터뷰를 통해 이들은 정규직으로 고용되었기 때문에 직장에 대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단기적인 사업으로 시행된 동료지원가 활동에서 비정규직으로 활동하다 일자리를 잃었던 경험을 가졌던 A의 경우 고용 안정과 제도화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계속적으로 일을 못하고 기한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힘들죠. 그리고 이걸 다 못하는 거 아니에요. 지속적으로 그게 힘들어요. 그래서 여기에서는 정규직이잖아요. 그게 중요하죠. 2013년도에는 한 3~4주 교육만 받았는데 수박 겉핧기 같은 상황이었죠. 지금 이 과정은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연구참여자 A)
2년이 지나고서도 계속 성장을 하고 있는데 그걸 막아 놓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게 다 사라지는 건데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성장할 수 있는 이런 과정이 다른 곳에서도 폭넓게 이루어지고 정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연구참여자 C)
A의 경우 동료지원가 활동을 한 적이 있었으나, 해당 사업이 종료되며 일자리를 잃었던 경험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일을 못했기 때문에 힘들었으며 교육 과정 또한 미비해 아쉬움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C의 경우 다른 곳에서 동료지원가 활동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점을 인식하며 정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길 원했다.
논 의
임파워먼트는 정신장애인의 회복을 위한 요소이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임파워먼트 향상에 있어 동료 지지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는 탈원화를 추구하며 정신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방안의 형태로 ‘동료지원가’가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국내의 동료지원가에 대한 연구는 저조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존 연구의 경우 직업이 아닌 자원봉사로서 활동하는 대상자를 인터뷰하거나, 적은 대상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기에 한계가 있었다[11,21,29]. 따라서 본 연구는 현재 정규직으로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심층적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행되었다. 본 연구를 통해 나타난 결과와 이와 관련된 논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결과 동료지원가 활동은 정신장애인의 임파워먼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Lee [30]는 억압받는 개인이 임파워먼트 과정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연구대상자들은 동료지원가라는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기존의 정신보건 체계에서 느끼던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에 대해 환자이자 동료지원가라는 직업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할 수 있었다. 자기 인식을 통한 개인적 임파워먼트를 통해 이들은 이전과 달리 주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가족의 요구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인관계 임파워먼트를 가지게 되었다. 대인관계 변화는 동료지원가제도의 정착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법제화와 홍보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정치적 임파워먼트로 이어졌다..
둘째, 동료지원가 활동을 얻게 된 임파워먼트를 통해 정신장애인들은 회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대상자들은 동료지원가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신과적 증상으로 비롯된 불안감에서 벗어나 굴곡을 인정하며 강점에 집중하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직업을 가지게 되며 자신의 삶을 가지게 되며 ‘통제감을 얻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이는 회복의 하위 요소인 임파워먼트의 하위 요소인 ‘개인적 책임감,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음, 강점에 집중함에 포함된다[17]. 따라서 동료지원가활동이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동료지원가 활동은 안정적인 고용 아래에서 실현될 때 임파워먼트가 가장 크게 발휘된다. 동료지원가에게 시행된 기존의 연구의 경우[11,21] 동료와의 긍정적 관계 발달을 보이며 개인적 임파워먼트와 대인관계적 임파워먼트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해당 제도의 정착화와 사회적 변혁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임파워먼트로 발전되지는 않았다. 해당 연구들의 경우 대부분의 동료지원가는 봉사활동과 같이 무급이거나, 월 2만원이라는 적은 급여를 받았는데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과 급여 상태가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임파워먼트 실현을 위하여 정신장애인이 동료지원가로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범사업의 활성화와 이에 따른 논의를 통해 시행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인터뷰 대상자의 수가 3명으로 그 수가 적으며 단일 기관에서 시행되었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한계점이 있다. 따라서 향후 다양한 기관에서 동료지원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서비스를 받는 정신장애인의 연구 또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동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 이용자가 대체적으로 만족감을 표현했으나 25명중절반이 넘는 정신장애인(52%)이 별로 만족하지 않음(8%)과 보통(44%)이라고 응답했기 때문이다[30]. 동료지원가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하여 다각적인 측면에서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결 론
본 연구는 동료지원가로서 일하는 정신장애인의 임파워먼트 경험을 탐색하고자 시행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지원 활동을 통하여 개인적, 대인관계적, 정치적 임파워먼트를 얻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동료지원가의 장점을 조명해 해당 시범사업의 효과성을 파악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한다. 첫째, 임파워먼트는 정신장애인의 회복에 결정적인 요소이므로 동료지원가 활성화와 고용 안정을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동료지원가 제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장소에서 지원 활동을 하는 정신장애인들의 경험과 해당 서비스를 받는 동료 장애인들의 경험과 같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