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A theoretical study advocated for alleviating the worker's responsibility of burden of proof to establish the causality of an occupational disease, since such a responsibility is unfair to the worker. The recent judgment has adopted some of these arguments for alleviating the worker's responsibility of burden of proof, and the judgment is significant since it is the first Supreme Court decision to recognize the causality of occupational diseases. The judgment expressly confirms that it is more proactive to recognize the causal relationship between work and certain diseases, and to provide compensation for industrial accidents to employees who are exposed to harmful substances at all times. In addition, the judgment also confirms that coverage of industrial safety and health risks is in accordance with the original purpose and function of the industrial accident insurance system, which aims to share risks through public insurance.
산업과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위험을 일으킨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산업혁명을 거쳐 기계화된 생산구조와 대규모 사업장이 출현하면서 노동 계급은 산업재해란 사회적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초기 노동 계급은 산업재해에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었다. 이 위험으로부터 근로자의 소득 상실을 막고 노동시장으로의 재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보장 제도가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이다. 같은 취지에서 우리나라도 1963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을 제정하였다.
산재보험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하여 산업재해로부터 모든 재해 근로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구조와 기술의 변화에 산재보험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 그 보호 범위에서 재해 근로자들이 배제되는 사각지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면, 그때마다 근로자들은 낯선 작업환경에서 불완전한 안전장치에 의지하여 생산과정에 참여하곤 한다. 그 근로자들은 신체·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불명확한 생산원료에 노출되고, 일부 근로자들은 그 작업환경과 원료가 야기하는 질병 등 산업재해를 입게 된다. 예컨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석면의 경우, 국내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석면 취급 사업장에 대한 유해환경 연구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 초반에야 석면 취급 근로자의 질병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는데(부산지방법원 2012년 5월 10일 선고 2008가합21566 판결), 석면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던 사이에 석면을 취급하던 많은 근로자들이 폐암 등 질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이렇게 새로운 산업 또는 작업 과정이 야기하는 질병을 어느 범위까지 산재보험 제도의 보호 범위로 포착할 것인지는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한다는 산재보험법의 입법 목적(제1조)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이다.
산재보험법 제37조 및 판례 법리에 의하면,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 해당 여부는 업무수행성(업무수행 중의 재해)과 업무기인성(업무에 기인한 재해) 두 가지 요소로 판단하는데, 업무기인성의 인정은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유무에 따라 좌우된다. 이때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재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근로자 측이 부담한다. 판례는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본다(개연성 이론, 대법원 1992년 5월 12일 선고 91누10022 판결 등). 그 설시만 보면,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 경우에도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개연성이 입증되면 충분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쉽지 않고, 이로 인한 증명부담은 근로자 측이 업무상 질병 소송에서 겪는 주요한 어려움 중 하나이다.
인과관계 증명의 어려움은 특히 생산 원료 및 작업 환경의 유·무해성 여부가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신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유해성을 의학지식이 없는 근로자들이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에 주목하여 일부 연구자들은 근로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1].
이른바 ‘삼성전자 백혈병 사건’으로 불리는 삼성전자 주식회사의 전·현직 근로자들이 제기한 일련의 직업병 소송들은, 법원으로 하여금 산업 구조의 빠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목도하게 하고, 증명책임(부담) 완화론의 수용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위 사건들에서 문제되었던 백혈병이나 다발성 경화증 등 현대형 질병은 그 발생원인이나 기전이 복잡하고, 유전·체질 등의 선천적 요인과, 음주, 흡연, 연령, 식생활 습관, 직업적ㆍ환경적 요인 등의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이 많은데(대법원 2014년 9월 4일 선고 2011다7437 판결 등), 첨단의 의학적·과학적 전문지식을 총동원해도 알기 어려운 질병의 원인을, 자기가 직접 취급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는 근로자가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위 일련의 소송들이 진행되는 동안, 법원이 전통적인 인과관계 증명책임 판단 방식을 신산업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증명책임 완화에 대한 그동안의 논의 내용을 받아 들여 새로운 판단기준을 수립할 것인지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법원은 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판결에서 최초로, 증명책임 완화론의 일부를 수용해서 근로자의 증명부담을 경감하고 비특이성 질환의 업무상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 또 상시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에 전향적으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공적 보험을 통해 분담하고자 한 산재보험 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에 따르는 것임을 명시적으로 확인하였다.
이 글은 위 대법원 판결(이후 대상판결)이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의 인과관계 증명책임(부담)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대상판결의 사건개요 및 관련 산재보험법의 규정, 그리고 관련 판시 사항 등을 설명한다. 그리고 대상판결이 수용한 증명책임 완화론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대상판결이 선고된 후에 나온 판결로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퇴직한 근로자에게 발병한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유사 판결을 증명책임 완화론의 관점에서 보충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원고는 1984년생이고, 고등학교 3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2002년 11월 18일 삼성전자 주식회사(이하 삼성전자)에 입사하였다. 원고는 입사 후 2007년 2월 15일 퇴사할 때까지 천안 liquid crystal display (LCD) 공장(이하 이 사건 사업장)에서 모듈공정(부품을 조립하여 LCD 패널을 완성하는 공정) 중 LCD 패널 검사 작업을 하였다. 원고가 담당한 업무는 조립된 15–19인치 규격의 LCD 패널을 전원에 연결한 다음 손으로 들고 눈 가까이에서 육안으로 관찰하여 색상과 패턴에 불량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원고는 컨베이어벨트로 이동되는 LCD 패널을 1시간당 70–80개가량 검사하고, LCD 패널에 오염된 부분이 있으면 면포에 이소프로필알코올(isopropyl alcohol)이라는 유기용제를 묻혀 닦는 작업을 하였는데, 1일 3–4회가량 이소프로필알코올로 LCD 패널이나 팔레트 등에 묻어 있는 이물질을 닦아내야 했다.
원고는 입사 후 계속해서 위 LCD 패널 검사 작업을 담당하였다. 근무기간 중 업무방식이나 업무환경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3조 2교대(1일 12시간 맞교대 근무가 원칙이었다) 또는 4조 3교대(1일 8시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대부분 1일 1–2시간의 연장근무를 하였다)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상시적으로 초과근무를 하였다. 잔업과 특근은 월 14–40시간이었다. 이 사건 사업장은 모듈공정 전체가 하나의 개방된 공간에서 이루어져 어느 하나의 세부공정에서 유해화학물질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여과되거나 배출되지 않고 작업장 내에 계속 머무르는 구조였다. 그리고 원고의 검사 작업은 화학물질의 열분해산물이 발생할 수 있는 에이징 공정 바로 다음에 하는 것이었다.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일하기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고, 신경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1년 정도 근무한 시점인 2003년 10월경부터 오른쪽 눈의 시각과 팔다리 신경기능에 이상증상이 발생하여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점차 증상이 심해져서 2007년 2월 15일 퇴사하였고, 2008년 9월경 ‘다발성 경화증’으로 확진을 받았다.
이후 원고가 2010년 7월 23일 피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고, 피고는 2010년 8월 4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10월 9일 6일 이 사건 사업장을 방문하여 공정과 작업 내용을 확인하고 동료 근로자와의 면담조사를 실시한 다음 역학조사 결과보고서(이후 이 사건 역학조사)를 작성하여 2010년 12월 28일 피고에게 제출하였다. 그 요지는 ‘원고의 작업조건과 업무내용은 충분히 신체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조건으로 판단되나, 현재 스트레스와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업무관련성을 판단할 만한 충분한 의학적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피고는 이 사건 역학조사 결과를 기초로 2011년 2월 7일 원고에 대하여 다발성 경화증 발병과 원고의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요양불승인 처분(이후 이 사건 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가 이 사건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제5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2. 업무상 질병
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
나.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다.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제34조(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 ① 근로자가 「근로기준법 시행령」제44조 제1항 및 같은 법 시행령 별표 5의 업무상 질병의 범위에 속하는 질병에 걸린 경우 다음 각 호의 요건 모두에 해당하면 법 제37조 제1항 제2호 가목에 따른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1.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유해·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된 경력이 있을 것
2. 유해·위험요인을 취급하거나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는 업무시간, 그 업무에 종사한 기간 및 업무 환경 등에 비추어 볼 때 근로자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인정될 것
3. 근로자가 유해·위험요인에 노출되거나 유해·위험요인을 취급한 것이 원인이 되어 그 질병이 발생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될 것
1심 법원은, 일반적으로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발생·악화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업무에 내재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하기는 어렵다고 설시하였다. 이어 원고가 유해물질에 일부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과로를 하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는 보이지만,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병 또는 악화되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4년 9월 4일 선고 2011구단8744 판결).
2심 법원은, 1심 판결의 이유를 인용하고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업무로 인해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하거나 자연적인 진행 경과를 넘어서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5년 10월 21일 선고 2014누7123 판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다. ① 희귀질환의 한국인 전체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다면, 이러한 사정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②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③ 산재보험의 사회적 기능은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
역학이란 “집단현상으로서의 질병의 발생, 분포, 소멸 등과 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여러 자연적·사회적 요인과의 상관관계를 통계적 방법으로 규명하고 그에 의하여 질병의 발생을 방지·감소시키는 방법을 발견하려는 학문(대법원 2014년 9월 4일 선고 2011다7437 판결)”을 뜻한다. 그리고 역학적 연구는 특정 위험인자와 질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하고, 그 상관관계로부터 인과성을 추론하는 것이다[2]. 일반적으로, 역학적 증거에 의한 인과관계의 증명은 ‘역학적 상관관계의 증명 → 역학적 인과성의 증명 → 법적 인과관계 증명’ 단계로 진행된다[2].
산재사건의 경우에도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에 앞서 역학조사가 이뤄지고, 역학조사 결과는 업무상 질병의 판단을 위한 기초자료로 이용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3조의2는 고용노동부장관이 직업성 질환의 진단 및 예방, 발생 원인의 규명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근로자의 질병과 작업장의 유해요인의 상관관계에 관한 직업성 질환 역학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무상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가 보험급여를 받으려고 근로복지공단에 급여신청서를 제출하면,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역학조사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한다. 또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 또는 급여부지급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이 제기되어 근로자의 문서제출명령신청 등을 통해 역학조사 결과가 현출되는 경우, 법원은 역학조사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거나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대상판결은 비특이성 질병이 문제된 산재소송에서 업무상 질병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자, 역학적 증거를 근로자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삼아 인과관계에 대한 근로자의 증명부담을 경감시킨 판결로서 의의를 가진다.
대상판결은,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질환이 발병하거나 희귀질환에 걸린 근로자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할 때, 희귀질환의 한국인 전체 평균 유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유병률에 비해 특정 산업 종사자 군이나 사업장에서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다면, 이러한 사정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대상판결이 구체적으로 인정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 다발성 경화증은 유병률이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당 3.5명에 불과한 희귀질환이다. ② 원고에게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한 당시 나이가 21세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르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다. ③ 현재까지의 역학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다발성 경화증에 대한 감수성은 유전적 소인과 환경적 소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환경적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하기 위한 촉발요인으로는 유기용제 노출, 주ㆍ야간 교대근무, 업무상 스트레스, 햇빛노출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원고는 이 사건 사업장에서 약 4년 3개월 근무하는 동안 계속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고 1일 근무시간은 9시간에서 12시간에 이르는 등 노동강도가 높았고, 그로 인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도 컸다고 볼 수 있다. 또 원고가 실내 작업장에서 장기간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였으므로 햇빛 노출이 부족하여 비타민D 결핍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이 다수 중첩될 경우에는 다발성 경화증의 발병 또는 악화에 복합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④ 원고는 다발성 경화증과 관련된 유전적 소인이 없고 입사 전에는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대상판결은 위 사실인정을 기초로, 우리나라 전체 평균 유병률과 이 사건 사업장의 유병률 비교 등에 기초한 통계적 연관성을 근거로 삼아 근로자의 증명책임 부담을 경감시켰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판시에 대해서는 역학적 증거에 대한 과거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즉, 과거에도 대법원이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고엽제 피해 손해배상청구 사건(대법원 2013년 7월 12일 선고 2006다17539 판결)이나 자동차배출가스 공해소송(대법원 2014년 9월 4일 선고 2011다7437 판결)이나 담배소송(대법원 2014년 4월 10일 선고 2011다22092 판결) 등에서 역학적 증거를 통한 증명의 법리를 제시한 적은 있었다. 어떤 위험인자에 노출된 집단에서 특정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비율이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지 않은 집단에서 그 비특이성 질환에 걸린 비율을 상당히 초과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이 위험인자에 노출된 시기와 노출 정도, 발병 시기, 그 위험인자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을 추가로 증명하여, 그 위험인자로 인해 해당 비특이성 질환이 유발되었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증명한다는 것이다(대법원 2014년 9월 4일 선고 2011다7437 판결 등). 다만, 대상판결 이전까지는 통계학적 연관성에 관한 역학적 증거가 원고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되어 증명책임 부담을 경감시키고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점에서 대상판결은 과거 판례와 다르다.
그런데 고엽제 피해나 담배소송 등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과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전자가 원칙적으로 불법행위 법리에 기초하여 사인 사이의 책임 소재를 판단하기 위하여 인과관계 존부를 다루는 것이라면, 산재소송은 사회보험 공동체가 재해 근로자가 입은 부상 또는 질병 등을 산재보험법이 보장하는 위험으로 보아 ‘업무상의 재해’의 범주로 포섭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이고, 사회보장의 이념과 보험계리적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산재사건에서는 역학조사 결과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상판결도 사회보험이라는 산재보험의 성격에 주목하여 역학적 증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역학적 증거는 그 신빙성이 전제로 되어야만 증명에 활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산재소송에서도 근로자가 실제로 경험한 업무환경과 역학조사 당시의 업무환경이 다르다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곤 한다[3]. 실제와 조사 시의 업무환경이 다르다는 사정은 역학적 증거의 증명력의 정도를 낮출 수 있다. 대상판결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이 사건 역학조사를 하였을 당시에는 원고가 근무한 때부터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시점이었고 그 사이에 LCD 패널 검사작업을 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이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역학조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원고가 근무하였을 당시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 역학조사에서는 근로자가 위와 같은 작업 과정에서 이소프로필알코올이나 그 밖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수준을 객관적으로 확인·측정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하며 이 사건 역학조사의 미흡함과 방식 자체의 한계를 언급하면서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역학조사 방식 자체에 한계가 있었던 사정이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향후 산재소송에서 역학조사 결과가 증명력 높은 증거로서 근로자의 증명책임을 경감하는 데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사전답사나 동일업무 근로자 인터뷰 등을 통해 조사환경을 당시의 작업환경과 유사하게 맞추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증명방해란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의 증명을 그 상대방 당사자가 방해하는 것으로, 고의 또는 과실, 작위(적극적 행위) 또는 부작위(소극적 행위)로 증거의 사용을 곤란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45]. 판례에 따르면, 증명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증명활동을 방해하는 경우 증명책임이 전환되거나 곧바로 상대방의 주장 사실이 증명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원으로서는 자유로운 심증에 따라 증명방해를 한 당사자에게 불리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2010년 7월 8일 선고 2007다55866 판결).
이러한 증명방해 법리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전문지식의 이해나 증거의 편중이 심한 의료과오소송에서 환자 측의 증명부담을 경감하는 법리로 활용되어 왔다. 대법원은 “의료분쟁에 있어서 의사 측이 가지고 있는 진료기록 등의 기재가 사실인정이나 법적 판단을 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의사 측이 진료기록을 변조한 행위는, 그 변조이유에 대하여 상당하고도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당사자 간의 공평의 원칙 또는 신의칙에 어긋나는 입증방해행위에 해당한다 할 것이고, 법원으로서는 이를 하나의 자료로 하여 자유로운 심증에 따라 의사 측에게 불리한 평가를 할 수 있다.”라고 설시하고, 의사가 진료기록 진단명을 가필하여 원래의 진단명을 식별할 수 없도록 변조한 행위를 증명방해로 보아 의사 측에 불리한 평가를 하는 자료로 삼은바 있다(대법원 1995년 3월 10일 선고 94다39567 판결).
전문지식에 대한 이해의 차이나 증거의 편중이 심한 것은 산재소송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업무상 질병 소송에서 증명방해 법리를 적용한다는 주장은, 사업주가 자료 제출을 거부한 사실 등을 변론 전체의 취지로 고려하여 인과관계 유무를 판단할 때 참작함으로써 증거의 편재로 인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산재소송에서도 사업주가 법원의 석명에 대하여 기록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하거나 작업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질병과 무관한 물질이고 노출수준도 기준 미만이라는 식으로만 답변하는 등(대법원 2016년 8월 30일 선고 2014두12185 판결)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재판에 협조하지 않은 사례는 있었지만, 이러한 사정을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한 대법원 판결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대상판결은 산재소송에서 증명방해 법리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 즉 전통적인 개연성 이론을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학계의 논의를 받아들여 사업주 등에 의한 증명방해를 변론 전체의 취지로 고려함으로써 근로자 측의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경감시킨 것이다.
이 사건 소송에서 원고는 업무 중에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이 사건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진단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와 문서송부촉탁을 신청하였다. 1심 법원은 이를 증거방법으로 채택하였으나, 영업비밀이라는 회사의 주장에 따라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의 현황과 작업환경측정 현황, 안전검사 실시 현황, 누출 시 물질배출처리 시스템 현황, 근로자 건강관리 현황 등에 관한 정보가 삭제된 상태로 자료가 제출되었다. 이를 두고 대상판결은 “이 사건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이 LCD 모듈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 등에 관한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면서 공개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원고가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유기용제 또는 유해화학물질의 구체적 종류나 그에 대한 노출 정도를 증명하는 것이 곤란해졌다.”라고 인정한 다음,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러한 사정을 업무와 질병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봤다.
물론 엄밀하게는 사업주인 삼성전자와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의 행위를 민사소송법상 증명방해로 포섭하기는 어렵다. 소송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이 문서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은 경우도 아니고, 근로복지공단이 원고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문서를 훼손하거나 사용할 수 없게 한 경우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그의 협조 거부를 일방 당사자의 불이익으로 돌리기 어렵고, 특히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은 제3자여서 그의 조사 거부나 지연을 당사자의 증명방해로 취급하기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판결도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 등의 행위를 직접 ‘증명방해’로 명명하지는 않고, ‘문서의 기재에 대한 원고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가 아닌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는 정도의 효과만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민사소송법 제349조는 당사자가 문서제출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때에는 법원은 문서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제350조는 당사자가 상대방의 사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제출의무가 있는 문서를 훼손하여 버리거나 이를 사용할 수 없게 한 때에는 법원은 그 문서의 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행정소송법은 제8조 제2항을 통해 위 민사소송법 조항들을 준용하고 있다).
한편, 이 사건 원심 법원이 형식적 변론주의에 입각하여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고 “원고가 어떠한 유해물질에 어느 정도로 노출되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는 유해물질 노출이 발병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반면, 대상판결은 역학조사 자체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증거로 제출된 자료의 내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과 사업주 등이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서 근로자가 유해화학물질의 구체적인 종류나 노출 정도를 증명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정을 명시하고, 오히려 이러한 사정들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사실로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는 재해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산재보험법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태도이다.
산재보험법 제37조는 업무상 재해의 요건으로 상당인과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 인과관계는 행위자의 예견가능성이 배제된 객관적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한다[678910]. 객관적인 관찰자가 행위 당시 행위자의 사실인식을 기초로 통찰력 있게 판단하였을 때 구체적인 행위의 진행 경과를 예측할 수 없다면 인과관계가 부정되는 것이다[11]. 즉, 보통의 평균적인 일반인이 알 수 있었던 사정과 행위자가 알고 있었던 사실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보통의 평균적인 일반인을 상정하고 그가 예측할 수 있는 경과 범위를 벗어나는 때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소송에서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은 법관이 확신할 수 있도록 고도의 개연성을 밝혀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판례는 개연성 이론을 채택하고 산재소송에서 근로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고 있다. 즉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질병의 원인, 작업장에 발병원인물질이 있었는지 여부, 발병원인물질이 있는 작업장에서의 근무기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또는 그에 따른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증명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대법원 2004년 4월 9일 선고 2003두12530 판결).
위 판례 법리를 액면 그대로 보면 업무기인성과 관련해서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백히 증명되지 않는 경우에도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개연성이 입증되면 충분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 인과관계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의학상 그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아니한, 예컨대 과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의 경우(백혈병, 폐암, 위암 등 각종 암 질환이 대표적인 예)에는 인과관계가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12]. 일반적으로 만연히 과로가 신체의 저항력을 약화시켜 모든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정도를 가지고는 상당인과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12]. 그리고 이로 인한 증명부담은 근로자가 산재소송에서 겪는 주요한 어려움 중 하나이다.
산재소송에 위와 같은 상당인과관계설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근로자의 생활보장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업무기인성의 개념을 보다 넓게 파악하여 산재보험제도의 보호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인과관계를 파악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그것이다[1113]. 위 견해에 대하여는 다시, 인과관계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현재 산재보험법이 명시적으로 상당인과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이상 별도의 인과관계 개념을 설정하기는 어렵고, 다만 상당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위 견해의 내용을 고려할 수 있을 뿐이라는 비판적 의견이 있다[1141516].
대상판결은, 산재보험제도가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공적 보험을 통해 분담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근로자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개선되도록 유인하고 경제·산업 발전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는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산재보험의 사회적 기능이 급여 지급의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규범적으로 조화롭게 반영되어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재해 근로자와 유족의 보호라는 산재보험제도의 목적이나 사회적 기능을 고려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과성을 보다 넓게 인정함으로써 근로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법원 스스로도 대상판결의 의의에 대하여, “산업현장에서 비록 노출허용기준 이하의 저농도라 할지라도 상시적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근로자에게 현대의학으로도 그 발병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희귀질환이 발병한 경우에도 보다 전향적으로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여 산재요양급여를 지급하여야 하며, 이것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산업재해보험보상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17].
대상판결이 선고된 후, 2017년 11월 대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근로자에게 뇌종양이 발병한 것을 산재로 인정하고, 역학적 증거와 증명방해 법리를 활용한 증명책임 완화론을 채택하였음을 다시 확인하였다.
원고 망인은 1980년생이고,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인 1997년 5월 12일 삼성전자에 입사하여 온양사업장 반도체 조립라인의 검사공정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하다가 2003년 7월 15일 퇴사하였다. 원고는 퇴사 후 2004년경 결혼하여 자녀 2명을 출산하고 자녀 양육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중 2010년 5월 4일 뇌종양(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고, 외종양 제거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다가 2012년 5월 7일 사망하였다. 원고의 가족 중 유전질환이나 암으로 투병한 환자는 없었다.
원고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으나, 2011년 2월 7일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결과에 기초해 뇌종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요양불승인처분을 하였다. 원고는 해당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였고, 1심 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하였으나(서울행정법원 2014년 11월 7일 선고 2011구단8751 판결), 항소심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6년 10월 6일 선고 2014누8492 판결).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하였다(대법원 2017년 11월 14일 선고 2016두1066 판결).
항소심 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역학조사에서 고온테스트 기기의 배출가스와 검댕에 어떤 물질이 함유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함에 있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정황으로 참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어떠한 유해물질이 존재하고 그 유해물질과 특정 질병의 발병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 대한 상당한 개연성은 인정되어야 하며, 이러한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은 사정들이나 가능성만으로 막연하게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업자에게 인과관계 부존재의 증명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② 원고가 검사공정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일부 노출되었을 가능성과 3교대제로 근무하면서 지속적인 야간근무나 초과근무 등으로 과로하고 이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그 정도가 망인의 뇌종양을 유발하거나 그 진행을 촉진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 또 삼성전자에 대한 문서제출명령 결과에 따르면 뇌종양을 이유로 보상 신청을 한 사례가 총 27건인 사실이 인정되나, 위 신청자들이 업무로 인하여 뇌종양이 발병하였는지, 그 신청자들이 망인과 동일 또는 유사한 공정에서 근무를 하였는지, 나아가 뇌종양이 망인과 동일 또는 유사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한 사람들에게서 발병한 비율이 이러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서 발병한 비율보다 더 높은지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은 이상,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원고의 업무와 뇌종양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의 업무와 뇌종양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 ① 희귀질환의 평균 발병률이나 연령별 평균 발병률보다 특정 산업 종사자군이나 특정 사업장에서 그 질환의 발병률 또는 일정 연령대의 발병률이 높다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② 이 사건 역학조사는 조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한 것이기 때문에 원고가 근무하였을 당시의 작업환경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원고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에는 역학조사 자체의 한계도 고려하여야 한다. ③ 사업주의 협조 거부 또는 관련 행정청의 조사 거부나 지연 등으로 그 질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이는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 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④ 작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는 경우 개별 유해인자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ㆍ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위 대법원 판결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에게 발병한 뇌종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임과 동시에 대상판결을 따르는 후속 판결로서 의의를 가진다.
첫째, 위 대법원 판결은 대상판결과 같이 우리나라 전체 평균 유병률 또는 연령별 평균 발병률에 기초한 통계적 연관성을 근로자에게 유리한 근거로 삼아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부담을 경감시켰다.
둘째, 역학조사와 원고가 근무할 당시 사이에 반도체칩 검사 작업을 하는 작업환경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는 점, 즉 역학조사 자체에 내재한 한계 때문에 발암물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정이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때 고려되어야 한다고 봤다. 또 역학조사 과정에서 동료 근로자로부터 고온테스트를 마친 후 검댕이 많이 날렸고 고무가 탄 듯한 냄새가 났으며 그 과정에서 유해한 연기와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진술이 있었음에도, 그 원인물질과 노출수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정이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사업주의 협조 거부나 행정청의 조사 지연 등으로 작업환경상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었다면 이를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이유를 일반론으로 인용하며 따르고 있다.
업무와 재해의 인과관계는 재해 근로자의 산재보험급여 수급권의 요건이 된다.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보호가 필요한 재해임에도 인과관계의 증명이 곤란하여 산재보험의 보호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자 제정된 산재보험법의 입법 목적을 무색하게 하거나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산재보험의 이념에도 반할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산재소송에서 인과관계 증명책임은 산재보험 관련 연구에서 중요한 쟁점이었다.
업무상 재해 중에서도 특히 업무상 질병은 장기간에 걸쳐 느리게 진행되고, 근로자 측은 전문 지식이나 관련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현대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는 새로운 질병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산재소송에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근로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어 왔다(헌법재판소 2015. 6. 25.자 2014헌바269 결정). 이는 특히 신기술과 새로운 공정이 적용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과거 판례는 이런 문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점이 있다. 즉, 산재소송에서 상당인과관계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의학적ㆍ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해당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취업 당시의 건강상태, 기존 질병의 유무, 종사한 업무의 성질 및 근무환경, 같은 작업장에서 근무한 다른 근로자의 동종 질병에의 이환 여부 등 간접사실에 의하여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추단될 정도로는 증명이 되어야 한다고 봤던 것이다(대법원 2008년 8월 28일 선고 2007두11801 판결 등).
대상판결은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부담)과 관련하여 과거 판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첨단산업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위험에 산재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서 역할할 수 있는 법리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즉, 대상판결은 특정 사업장의 유병률이 한국인 전체 평균 유병률을 초과하고 있다는 등의 역학적 증거와 사업주 등의 협조 거부 때문에 유해요소들의 종류와 노출 정도를 특정할 수 없었던 사정을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하고, 산재보험제도의 목적과 사회적 기능을 인과관계 판단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사실상 업무상 질병의 인과관계에 대한 근로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였다. 동시에 대법원이 산재소송에서 사업주와 관련 행정청의 협조 거부 또는 지연으로 증명이 곤란해진 것을 근로자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대상판결의 취지에 따라 앞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심사와 산재소송에서 인과관계와 관련한 근로자의 증명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논문은 희귀질환의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밝히기 곤란하더라도 쉽게 인과관계를 부정해서는 아니 된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판결은 근로자가 직업병인지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책임을 완화하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 논문은 새로운 판결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그 연구 내용은 인과관계 판단의 후속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현재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대법원의 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정리: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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