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일이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 그 자체가 고결한 일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환자는 의사가 자신의 건강과 목숨을 다루는 동안 얌전하게 자기 몸을 내맡기는 수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가 윤리적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 의사에게 안심하고 치료를 부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환자가 없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다.
전통적인 의료윤리는 개인의 덕성과 고결함을 기초로 하고 있다. 중국 오(吳)나라에 동봉(銅棒)이라는 명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들의 경우 대신 살구나무를 심도록 했다. 결국 그의 집은 살구나무로 가득 찼다. 이 사람은 나중에는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이 고사 때문에 행림(杏林)은 의원이나 의학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의술이 발전하면서 역설적으로 이런 형태의 진료는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치료의 개념도 음식조절과 양생에서부터 적극적인 투약과 수술로 바뀌었으며,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각종 시약과 장비를 동원해야 한다. 약도 더 이상 천연약재가 아닌 제약회사의 개발품을 사용하게 되어 이제 행림식의 운영방식은 더 이상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이렇게 개인의 고결함을 기초로 한 전통적인 윤리관은 자본의 세례를 받으면서 급격히 흔들리게 되었다. 다른 어느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의사 개인도 자신이 제공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사회적인 성공의 척도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성공 따위는 무시해도 좋았던 전통적인 윤리관을 보완하여 이제는 경제와 같이 가는 새로운 윤리관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어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개인의 덕성과 고결함에 기초를 둔 윤리관을 가지고 있는 노년층(편의상 노년층이라고 한 것이지 단순히 나이에 따라서 이렇게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자본주의에 적합한 윤리관을 가지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장년층, 그리고 학교에서 새로운 서구식 윤리를 교육받은 청소년층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혼란스러운 것이다. 서로서로 다른 세대가 발을 딛고 서있는 바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사회의 통합을 이룰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럴수록 명문화된 의사윤리지침은 더 중요하게 된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만 의존하면서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없다면 이를 하나의 적문직업군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각자가 자기 좋을 대로만 한다면 의사에 대한 신뢰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현재의 의사윤리지침은 2006년에 개정된 것이며 그 이후로 일어난 많은 변화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사라고 하는 전문직의 이상을 표현하며, 의사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의사윤리강령과 지침의 개정에 착수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개정안을 내놓게 되었다.
이 특집은 의사윤리강령과 지침의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역사를 돌아보고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Kim 등[1]은 “의사윤리지침 및 강령의 연혁과 개정내용”에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 및 강령의 제정과 개정의 역사를 소상하게 살피면서 윤리관의 변천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개정안의 각 항목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그 안에 어떤 뜻을 담고자 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번 개정안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이라고 하겠다. Kim 등[1]은 특히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이번 개정작업은 의학전문직업성에 근거하여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업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의료윤리지침과 강령이 우리나라 의과대학생 의료윤리교육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의료윤리지침을 검토하여 의료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지속적인 개정작업을 하여야 할 것, 이렇게 만들어지고 개정되는 의료윤리강령과 지침을 의사 내부에 광범위하게 공유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Kim [2]은 “의과대학에서의 의료윤리교육”을, Yoo 등[3]은 “졸업 후 윤리교육”을 맡아서 각각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별히 이번에 개정하는 윤리강령과 지침을 활용한 교육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졸업 전 교육뿐만 아니라 졸업 후 교육의 목표와 방법, 평가 등에 관해 자세히 고찰하고 있다. Kim [2]은 의과대학에서 의료윤리교육의 목표와 방법에 대해 상술하면서 의료윤리교육은 그 내용이 광범위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교육내용을 부단히 개정하는 작업을 해야 하며, 의과대학에서 시행한 의료윤리교육 내용은 졸업 후 교육에 연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Kim [2]의 주장대로 대한의사협회에서 시행하는 연수교육은 의과대학의 의료윤리교육과 연계하여 이를 심화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
Yoo 등[3]은 “졸업 후 의료윤리교육”에서 면허 취득 후 의사들은 의료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실제 환자와 관련된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접하게 되므로 졸업 후 윤리교육이 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졸업 후 의료윤리교육의 구체적인 목적을 밝히고 있다.
전문가 집단의 직업윤리는 동시에 법적 규율의 대상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 Park [4]은 “의사윤리지침과 관련 법률”에서 의사윤리지침과 현행 법령과의 관계를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다음, 설명의무 관련 지침의 법적 측면, 환자의 비밀보호 관련 지침의 법적 측면 등 해석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항목별로 상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번에 개정되는 의사윤리지침의 각 조항들과 현행 법률을 대조 정리하여 회원들에게 배포함으로써 임상현장에서 쉽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윤리강령과 지침을 내놓는 이유는, 옛 것을 폐기하고 새 것을 따르라는 주문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버리고 협회의 지침을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덕성과 고결함, 그리고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윤리, 이 양자를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하여 의사들에 대한 타율적 규제가 이루어지기 이전에 의사들 자체의 자율정화로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유지시키자는 것이다. 새 윤리강령과 지침은 이제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와 상임이사회의 승인, 그리고 대의원총회의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통해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를 확보하며, 의사들의 긍지와 자존감이 높아지는 계기가 마련될 것을 기대한다.
References
1. Kim OJ, Park YH, Hyun BG. Development of the codes and guidelines of medical ethics in Korea. J Korean Med Assoc. 2017; 60:8–17.
2. Kim JH. Medical ethics education in the medical school curriculum. J Korean Med Assoc. 2017; 60: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