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This article examines the nature of professional self-regulation and clarifies its basis. Traditionally, the western principle of self-regulation has been grounded in social contract theory. However, we argue here that this very analysis results in a weak moral foundation, and it often causes regulatory capture. In support of this argument, we clarify the structure of self-regulation from utilitarian and social contract theory perspectives. We show conclusively that this structure has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failure of professional self-regulation. We thus present an alternative view of the nature of self-regulation from Rawlsian theory. We maintain that genuine self-regulation of a community requires grounding not only in social contract theory, but also an appropriate moral philosophical theory.
정치적인, 또는 법률적인 차원에서의 자율규제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기업들의 이윤추구 행위들은 법률에 의해 규제되고 있지만 이러한 사회적 규제망은 고도로 전문화된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에 의해 무력화되기가 매우 쉽다. 게다가 그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더 많고 더 복잡한 또는 더 세밀한 법률적 보완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끝이 없는 악순환에 빠지는 듯이 보인다. 영국 자본주의 초기 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은 100가지에 불과했지만 몇십 년 뒤에는 수천 개에 이르는 세밀하고 복잡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이는 모든 면에서 실패한 규제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는 법적인, 행정적인 규제와 함께 개별 업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정 노력은 바로 '자율규제'라는 이름으로 개념화, 제도화 되었으며 가장 절실하고 심각하게 요구되는 자율규제의 영역은 바로 전문직이다.
전문직업성이 가지는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자율규제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전문직업성과 자율규제의 관계에 대한 적실성 있는 개념 정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또한 자율규제의 무수한 실패 사례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행정적 또는 구성원들의 인식적 수준에서 논의될 뿐, 자율규제의 논리적 또는 철학적 근거에 대한 정리 또한 미미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우선 자율규제에 대한 통상적인 개념이 사회계약론적 토대에서 유래한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다음으로 이와 같은 논의로부터 공리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토대에서 자율규제를 해석하고 설정하는 것이 자율규제의 실패, 즉 자율규제의 포획 문제를 초래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임을 밝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으로 새로운 자율규제의 철학적 토대가 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자율규제의 새로운 철학적 토대가 사회계약적 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층위의 도덕 철학적 이론이 함께 뒷받침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자율규제란 일반적으로 조직화된 집단이 그 구성원의 행위를 스스로 규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규제는 통상적으로 피규제 대상이 되는 행위자가 단체를 조직하고 이러한 단체를 통해 스스로가 지켜야 할 규범 등을 제정하며 이를 위반하는 단체 내의 행위자를 스스로 점검하고 제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23]. 일반적으로 자율규제는 모든 영역에서 환영받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요청된다. 간략히 말해서, 자율규제는 특정 영역에 있어서 시장의 조정 기능이 실패할 경우, 이를 바로 잡으려는 사법기구의 대응이 적절하지 못하고 투입되는 비용이 너무 클 때,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자율규제가 협약적인 공적 규제보다 더 효율적이거나 값싼 비용을 지불하는 수단일 경우에 정부 기관의 전통적인 규제보다 비교 우위를 점유한다[4].
한편, 자율규제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양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점은 간과되기 쉽다. 자율규제의 형식은 규제 권한이 규제 대상(단체)에게 위임되는 것에서부터 사업자와 기타 시민 영역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화되어 관리되는 규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들 사이에 놓여 있다. 또한 이러한 형태들은 규제의 강도, 주체, 범위를 통해 보다 세밀하게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4]. 한편 이러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한국적 현실에 맞는 자율규제의 원리들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의 사회적 제도가 그 사회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정치, 경제, 문화, 도덕적 관념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5].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자율규제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라는 핵심 논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율규제의 일반적인 필요성을 포괄적인 의미에서만 다룰 것이다.
그동안 전통적인 방식의 규제는 일반적으로 명령 통제적 규제의 형태를 띄어왔다. 명령 통제적 규제는 법규, 행정명령 또는 지시 등에 기초한 강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방해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금지 또는 제한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정부 주도의 규제 방식은 정부가 개인이나 여타 단체가 준수해야 할 행위를 규정하고 제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전통적 명령 통제적 규제는 다음과 같은 특징과 한계를 가진다[3]. 첫째, 구체적인 규칙이나 행위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규제자와 피규제 대상의 협력을 요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명령 통제적 규제 하에서는 규제자와 피규제자의 관계가 밀접해져 규제자가 피규제자에게 포획되기 쉽다. 게다가 정보나 자원 측면에서 규제자가 피규제자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클수록 포획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규제 포획과 관련된 규제 실패는 다음 절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것이다. 둘째, 과잉 규제의 문제에 취약하다. 자본주의 초기 영국의 광물산업에 대한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법률은 초기에는 100가지에 불과했지만 몇십 년 뒤에는 수천 개에 이르는 세밀하고 복잡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이는 모든 면에서 실패한 규제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셋째, 규제 집행에 있어서 피규제 대상의 창조적 순응 및 규제 회피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이는 곧 자율규제를 통한 전문성과 효율성의 확보 노력으로 귀결되며, 따라서 행정적인 규제와 함께 피규제 대상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제 전통적인 공적 명령, 통제 규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율규제에 대해서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자율규제가 요구되는 맥락은 "1) 시장의 실패, 2) 이것을 바로 잡으려는 사적 영역의 법 기구가 적절하지 못하거나 너무 고비용일 때, 3)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자율규제가 협약적인 공적 규제보다 더 나은(값싼) 방법일 때"와 같은 세 가지이다. 본 논문은 Ogus [4]를 따라 이 중 "3)" 항목에 집중하여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자율규제자는 전통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이유에서 공적 규제보다 낫다고 여겨진다. 첫째, 보다 전문적인 적합한 규제를 할 수 있으며, 규준을 해석하고 형성하는데 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 이로 인해 때로는 보다 혁신적일 수도 있다. 둘째, 감시와 제재 비용이 저렴하다. 셋째, 규준을 개정하는 비용이 저렴하다. 이것은 자율규제자의 규칙들이 공적 규제 체제보다 덜 형식적이라는 전제가 요구된다. 넷째, 관리비용이 저렴하다. 관리비용을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에 세금이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자율규제의 필요성 논변은 매우 유용하고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대 사회가 공리적 효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자율규제의 경제적 가치를 통해 그 필요성을 사회의 각 주체들에게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철저한 경제적 논리는 공리주의적 접근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우리는 위와 같은 자율규제의 필요성 논변에서 공리 극대화 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율규제를 사회계약론적으로 바라볼 경우, 한편으로 양측면의 계약 당사자들에게 스스로 규제 제도를 도입하고 준수하도록 설득하는 차원에서 유용한 공리적 효용성을 통한 자율규제의 필요성은 매우 강력하고 유용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자율규제의 실패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인정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자율규제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제도라는 점이다. 여타의 산업과 달리 일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회 영역에 있어서 자율규제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관료 집단이 가진 전문성은 의료나 법률에 관한 고도로 특화된 전문 영역에 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 주도의 공적 규제는 이러한 영역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며 비실효적인 성과를 거둘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적 규제의 영역에서 별도의 전문가들을 양성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의 방에 냉방기와 난방기를 동시에 틀어놓고 온도를 조절하는 것만큼이나 비효율적이다. 여름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동으로 즉,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냉방기이다.
전문직은 높은 수준의 숙련된 지식이 필요하다. 세계의학연맹(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에 따르면, 전문직이란 오랜 연구가 필요한 지식과 술기가 확장되고 전문화된 집합체를 말한다. 또한 그러한 지식과 술기의 집합체는 일반 대중에게 충분히 설명하거나 그들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매우 복잡하고 심오하다[6]. 따라서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 전문직을 규제할 때 현실적인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를 예로 들자면, 의사의 자율규제 단체를 떠난 정부 주도의 공적 규제는 의료인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에 제공해야 할 건강과 복지에 대해서 정확하고 적절한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예컨대, 특정 전염병이 유행하는 경우 관료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규제들이 필요하고 어떠한 행위들이 통제되어야 하는지 의사의 도움 없이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문직 규제는 자율규제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직의 자율규제는 그 필요성이 전문직 자율규제 단체가 가지는 공적 이익의 차원에서 공리주의적인 정당화를 거친다. 물론, 항상 이와 같은 공공선 또는 공적 이익에 의해서만 실질적인 전문직 자율규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 절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전문직 종사자들 또한 하나의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들이기 때문에 종종 자율규제는 사적 이익의 필요성에 의해서 추동되기도 한다. 어쨌든 전문가 집단은 그들이 속한 사회에 의료에 관한 건강과 복지, 후생을 제공해야 하며,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전문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 사회는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보수와 지위를 보장하며 의사 면허의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독과점을 인정해준다. 즉, 전문직은 자신의 자율성을 사회와의 계약을 통해 확보한다[7]. 전문가들의 자율규제는 전문가들이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기술 수준을 유지하고 기술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보다 적절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수단이 된다. 말하자면,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율규제라는 특권을 통해 여타 직업 종사자들과 구분된다. … 자율규제 단체는 전문직업성을 대표하고 형식적으로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전문직업군으로 인식된다. 단체는 그에 속한 구성원들을 징계하고 통제하는 권한을 가진다. 전문가는 자율규제라는 수단을 통해서 보다 높은 직업적 수준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89]."
한편, 일반 대중들은 규제라는 것의 본성과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는데 종종 혼란을 겪는다. 그들은 때로 규제라는 것을 명령, 통제 그리고 처벌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규제는 규제자와 피규제자와의 엄격한 분리를 전제로 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율규제의 필요성과 구조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또한 자율규제의 구조와 필요성에 있어서도 그들은 사회계약론적 관점에서 전문가 집단과의 계약 당사자로서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그들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윤리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에서의 부적절성이 발견되면 그들에게 주어진 자율권을 박탈하고 더 많은 감시와 더 강한 처벌을 위한 입법적 절차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민주적 질서 아래 놓여있는 한, 전문직업의 자율규제는 일종의 공적인 선물인 것이다. 자율규제는 민주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1]. 문제는 자율규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규제의 본성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제도를 마련하는데 있다.
앞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문직 자율규제를 분석하는 하나의 중요한 틀은 사회계약적 관점이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사회계약적 관점에서의 자율규제의 분석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 고찰해보자.
홉스(T. Hobbs)의 "사회계약"에 기초한 정치 이론은 그의 심리적 이기주의를 이해해야만 잘 연구될 수 있다. 홉스는 자연 상태(natural state)라고 부르는 하나의 가상적 상태를 고안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 [10]에 따르면, 마치 자연세계가 운동에 의해서 산출되듯이 인간 세계도 기계적으로 자기 이익이라는 요인에 의해 움직인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또한 이기적인 본성을 가진다. 그런데 사회가 구성되기 전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서로 개인 대 개인으로서 마치 전쟁과도 같은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하게 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력, 즉 왕(군주)이 이러한 상태로부터 벗어난 생존(평화)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있어서 절대 권력(절대 군주)의 필요성은 자연 상태의 야만성과 폭력성 때문이었다. 자연 상태, 즉 사회 구성 이전의 원시상태는 결코 참을 수 없는 무지막지한 생태를 갖고 있어서 합리적인 인간들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을 절대 권위에게 복종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로크(J. Locke)에게 있어서 자연 상태란 전혀 다른 것을 의미했다. 비록, 로크는 홉스가 제시한 자연 상태라는 방법론적 장치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용했다. 로크는 "시민 정부에 관한 두 가지 논고(Two treatises on civil government)" [11]에서 소위 왕권신수설로 불리는 그 당시 지배적인 이론을 논박하는데 할애하였으며, "시민 정부의 진정한 확장과 목적에 관한 에세이(An essay concerning the true original extent and end of civil government)" [12]에서는 시민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완전하고 온전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가장 적합하게 보이는 바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으며 타자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온전히 보장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모두 할 수는 없다. 물론,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할 정부나 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는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게 자연법에 의해 구속된다. 따라서 로크에게 있어서 자연 상태는 홉스의 생각처럼 곧 전쟁 상태인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계약의 핵심적 동인은 바로 사유 재산(권)이다. 사회계약은 이러한 사유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계약이었으며, 자연법에 의해 보장되어야 하는 자연적 권리이다.
루소(J. Rousseau)에게 있어서 자연 상태는 홉스의 '개인 대 개인'의 개인주의 모델을 따르는 것이었지만, 단지 개인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그가 "부부 중심의 소규모 가족사회(conjugal society)" 라고 부른 가족 단위의 작은 공동체로 구성된 모델을 따른다. 가족이라는 사회는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 구성된다. 또한 그것은 도덕에 의한 것이지 정치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회계약은 이러한 가족의 구성원들 중의 대표들이 개인으로서 서로 모여 이룩하게 된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e on the origin and foundations of inequality among men)" [13]을 통해 자연 상태를 평화롭고 열정적인 상태로 나타내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떨어져 살고 있으며 얽매이지 않고 살아간다. 그들의 소박한 욕구들은 거의 모두 자연에 의해 쉽게 충족된다. 인구는 많지 않고 자연은 풍족해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단순하고 도덕적으로 순수한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동정심이 넘쳐서 타인을 해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변화가 생겼다. 인구가 증가하자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서로 모이고 또 공동체들로 서로 모여서 살기 시작했다. 노동의 분화와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여가 시간을 선물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들을 타락시키는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연 상태에서는 필요한 재화들은 충족 되었지만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있지 않았다.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등장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계급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루소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약속, 즉 사회계약은 개개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인민을 형성하기로 동의하는 것이다. 인민이라는 것은 그저 산술적으로 개개인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사회 토대가 되는 하나의 단위이다. 자연 상태에서 누렸던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집단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이러한 권리들을 집단적인 단체로, 즉, 새로운 인민에게 넘겨주는 것이 바로 사회계약이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이라는 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 스스로를 하나의 단일체로 형성하고 모두의 좋음, 즉 선을 지향하기로 동의할 때 생겨난다. 개인의 의지가 개인의 이해를 좇아 형성되듯이 인민의 일반적인 의지는 공공의 이익을 좇아 형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상호적인 의무가 형성된다. 즉, 주권은 그것을 생성시킨 개개인들의 좋음을 약속하고 개개인들은 마찬가지로 전체의 좋음을 추구할 것을 약속한다. 루소는 이러한 이론이 바로 민주주의를 함축하고 있다고 여겼다.
루소의 관점은 자율규제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홉스 식의 사회계약 모델에 의거한 자율규제의 분석이 갖는 한계점을 탐구하는데 있어 루소 이론이 갖는 홉스 이론과의 대척점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홉스 식의 사회계약 모델을 자율규제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계약의 이해관계에서 계약 당사자 개개인들의 이해들, 즉 그러한 개개의 이해관계들의 집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러(JG Stiggler)의 "공공 선택(public choice)" 이론과도 부합한다. 또한 그러한 관점으로부터 규제가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할 수도 있다. 공공 선택 이론에 따르면, 정부와 같은 공공성이 강조되는 집단도 이기적인 개인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 개인적 본성을 공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의 각종 규제들은 공공선을 지키기에는 취약한 약점을 가진다. 더구나, 자율규제의 경우에는 계약의 이해 당사자들 간의 관계가 경쟁적이고 경합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14]. 즉, 전문가 집단은 보다 많은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전문지식과 술기를 이용할 확률이 높다. 반면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전문가 집단의 독점적 권한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 의료 제도에 있어서 자율규제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시민 영역 스스로 그러한 자율규제 단체에 편입되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국 자율규제 집단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상황은 전문가와 시민이 모두 승리하는 방식이 아닌 모두 잃게 되는 방식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반면에, 루소는 사회계약의 당사자로 개개인의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자들의 단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루소는 특별히 인민으로 불리는 개인들의 추상적 집합체를 상정한다. 이러한 인민에 의해 발현되는 의지가 "일반 의지"이다. 개개인이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듯 일반 의지는 모두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와 같은 루소의 계약 조건을 전문직의 자율규제 계약에 대입해보자. 자율규제라는 계약의 양쪽 당사자는 각각 개인의 합리적인 이기심이 아닌 일반 의지 차원의 공공선을 위해 계약을 체결한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영역의 개별적인 직업인으로서 계약을 조정하고 승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로 그들이 속한 전문가 단체의 일반 의지를 통해 계약을 체결한다. 만일 그 전문가가 의료인이라면, 의료 행위를 통한 의료 단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율규제에 임할 것이다. 이것은 홉스의 관점에서 보는 '협약 당사자의 이익의 극대화'와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진다. 홉스 식의 설명에 따르면, 한 전문가가 자신이 속한 규율 단체의 규율을 따르기로 마음먹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속한 자율규제 단체가 그 모집단인 사회와 맺는 계약에 있어서도 그에 따르는 동기는 전적으로 그것이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의 극대화다. 하지만, 루소의 관점에서 보자면, 개개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단체를 형성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추상체를 형성하는 것이며,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지언정 단체의 규율이 단체의 공공선에 부합한다면 이에 기꺼이 따를 책무가 생긴다.
자율규제와 관련하여 루소의 생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롤즈의 정치, 철학적 분석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롤즈는 루소의 일반 의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을 제기한다. "1) 일반 의지는 누구의 의지인가, 2) 일반 의지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인가, 3) 무엇이 공공선을 가능하게 하는가?" 롤즈의 해명을 따라 루소가 말하고자 한 일반 의지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해보자[15]. 롤즈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일반 의지란 모든 개개의 시민들이 정치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의지이다. 이는 개별 시민의 사적 의지와는 구별되는 것이다. 일반 의지는 그 사회의 정치적 기본 구조를 결정짓는 성격의 원초적 계약에서 발현된다.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일반 의지는 심의적 이성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서 개별 개인들이 시민으로서 갖는 의지이다. 즉, 개개인들은 심의적 이성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심의적 이성은 모두의 자기 보존과 보편적 행복, 공공선 등을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서 그들 공공의 이익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는 것들을 의지한다. 일반 의지는 공공선의 관념의 관점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는 심의적 이성이라 할 수 있다. 공공선은 공공이익에 의해 구체화되는 것이다. 구체화된 공공선은 시민들이 그들의 공통의 이익을 획득할 수 있도록 가능하게 만들어주거나 지원하는 사회적 조건 등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이 없다면 공공선도 일반 의지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 유대와 일반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통의 이익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간략히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율규제의 일반적인 구조적 본성을 홉스 식의 사회계약론에 의거하여 이해할 경우, 자율규제의 계약 당사자들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다. 또한 공공 선택 이론에 따라 규제의 공적 영역에까지 그러한 관점이 적용된다면, 집단이나 단체 또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를 공유한다. 이러한 형식의 사회계약론적 자율규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통상적인 자율규제 개념은 그 형태와 양식, 그리고 심지어 동기부여의 차원에서도 사회계약론적 모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둘째, 자율규제에 대한 사회계약론적 분석은 내재적으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홉스와 달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개인을 자연법의 구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도덕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계약은 일반 의지를 통해 개개인의 지위를 넘어선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율규제의 전체적인 측면에서 "자율성"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사회계약이론의 측면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나, 자율규제의 "규율성"은 루소와 같은 도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간상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율규제는 전문성, 효율성, 적응성 측면에서 직접적인 정부규제보다 유용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자율규제의 도입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율규제는 절차적인 공정성이나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율규제가 정부규제를 대체하고 그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율규제 시행에 있어서 공정성 및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인 설계와 뒷받침이 요구된다. 자율규제 단체는 겉으로는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율규제 단체가 가지는 공공선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공공성 또는 사회적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는 자율규제가 유효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만드는 제재수단이 효과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한국 사회의 전문직 자율규제는 그 집행을 보장하는 안전장치가 매우 미흡한 측면이 있다. 자율적으로 합의된 규칙이나 협약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의 제재 방책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율규제는 그 기준이 모호하거나 작위적일 경향이 강하고 집행 또한 실질적이지 않고 처벌도 상대적으로 가벼워서 온정주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16]. 다비스(M. Davie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자율규제의 중요성을 역사적, 맥락적 연구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자율규제가 성립하지 못한 배경을 지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근의 상황들로 인한 자율규제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자율규제의 실패에서 규제 포획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왜 제대로 규제를 하지 못하는가? 규제 포획 이론은 정부가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에서 규제를 가하려 할 경우, 전문가 집단이 관료들보다 더 높은 관련 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전문가 집단의 입맛대로 규제를 만들게 된다고 주장한다. 스티글러의 공공 선택 이론에 따르면, 이기적인 합리적 개인 모델은 경제(시장)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흔히 공공의 복리를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공 행정 등의 분야에도 이러한 이기적인 합리적 개인 모델은 적용되어 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만일 규제의 권한이 입법부에 있다면, 규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입법부에 최대한의 로비를 펼칠 것이다. 입법부 역시 하나의 합리적인 이기적 개인으로 간주되므로 이러한 로비에 의해 규제대상의 편익에 따른 규제를 입안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은 곧바로 지대 이윤을 보장해주고 강화해 주는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정치인들과 관료들도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인 이기적 행위자에 불과하므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의 편익을 제공하려는 경향성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여러 산업,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에 대한 규제에 있어서 포획 현상은 일반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더하여 '합리적 무시 이론'이 결합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예컨대, 잘못된 규제제도를 개선하고 새로운 규제제도로 대체하기 위한 비용이 현행의 잘못된 제도로부터 발생하는 손해를 감수하는 것보다 클 경우 규제를 고치고 대체하는데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이러한 시장에서의 경쟁을 따르지 않는 정치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지대 추구 행위는 정부 주도의 면허제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아닌 이익집단이 스스로 공급을 제한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중세 유럽의 길드(guild)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세 유럽 도시의 상인과 수공업자들은 이익단체인 길드를 조직해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특권을 지켜나갔다. 야간 작업을 금지하기도 하고 제품 가격을 통제하기도 했으며 장인의 지위도 세습화했다. 변호사협회, 의사협회 등 이해 당사자 그룹이 각자 면허정책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현대판 길드'에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이 경우 이익집단은 당연히 사회의 후생보다 자기 집단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은 지대 추구 행위를 나타내는 직업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이들의 숫자는 바로 한 사회 지대 추구 행위의 강도를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본 논문은 자율규제의 본성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자율규제의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자 하는 일차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율규제의 본성은 사회계약론적으로만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자율규제의 사회계약론적 구조가 결코 적절하지 않다거나 또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율규제의 구조를 사회계약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어떤 형이상학적 근거에 의해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규정하거나, 엄숙한 도덕주의에 입각하여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규범적 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율규제의 새로운 구조를 제시하려는 시도는 매우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인간은 어떤 점에선 여전히 합리적 이기심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실천적인 차원에서 공리주의적이고 자유주의(개인주의)적인 사회계약이론이 여전히 영향력 있는 자율규제의 틀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데 동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사회제도와 마찬가지로 자율규제라는 사회 제도 역시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는 계약 이전의 근본적인 관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즉, 자율규제의 심층적 차원에서 이러한 구성원들의 정의관에 의해 규율되는 부분에 대한 논의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규제 대한 철학적인 탐구와 숙고를 배제한 채, 단지 사회계약적 이론만을 통해 자율규제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앞서 언급된 자율규제의 어두운 면이 실질적인 위협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공리주의적 원리를 따르는 자유주의 사회계약론적 관점에서 자율규제의 자율성이 자율규제의 실패와 맺는 관계를 살펴보자. 자율규제의 자율성은 규제의 주체가 전적으로 규제 대상과 일치할 때 최대가 된다. 특정 전문영역을 규제하는 규제 주체가 그 영역의 전문가들로 순수하게 구성될 때 자율규제의 전문성과 효율성은 극대화되며 자율적 규제가 성립한다. 한편, 사회계약에서 말하는 계약의 당사자들은 효용의 극대화 원리를 따르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 또는 개인들의 집합체다. 즉,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와 계약을 맺는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율규제라는 제도에 합의하며, 이들로부터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회의 여타 구성원들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율규제라는 제도에 합의할 것이다. 공공 선택 이론에 따르면, 심지어 정부와 같이 공공성이 강한 집단의 경우에도 자기 이익 또는 자기 집단의 이익에 따른 선택을 한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자율규제의 두 당사자들인 시민사회 영역과 전문직 자율규제 단체의 합리적 선택에 공공선이나 공공의 이익이 고려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조야한 견해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율규제의 주체는 자기들의 최대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사회와 계약한다고 보아야 한다.
전문직 규제는 고도의 전문성으로 인해 외부의 감시가 제한적이다. 또한 전문 영역의 지식은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다분하다. 이는 상당한 노력이 투여된다 하여도 극복할 수 없는 계약 당사자들 간의 정보 격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공리주의는 특정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를 토대로 하는 결과주의적 이론이다. 따라서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특정 행위들이 가져올 결과들을 사전에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행위자에게 있다는 것을 미리 전제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견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공리주의 이론가에게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인간적 약점으로 간주할 수 있는 미래 예측의 한계성은 전문직 자율규제의 측면에서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예컨대 의료 영역의 경우 자율규제에서 계약 당사자들 간의 계약 이해관계에 대한 정보 격차는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서 자율규제의 구체적 규범들이 어떻게 작용할 것이며,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은 매우 어렵고 피상적 수준에 머무를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계약의 당사자들 중 한편은 효용성의 극대화 원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인 관점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일반 시민들은 자율규제의 범위는 최소화하고 집행력에 있어서는 최대화를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정반대 차원의 단점 또한 노출된다. '합리적 무시 이론'에 따르면, 사회 구성원들은 전문가들이 가하는 사회적 피해를 오히려 무시할 만한 충분한 합리성 또한 갖고 있다. 즉,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자율규제의 협약에서 최대한의 보수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규제 포획의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이 증대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문가 집단에 의해 공정하지 못한 규제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것을 대체하거나 수정함으로써 손해를 보는 사회 구성원의 수가 너무나 막대하여 오히려 공정하지 못한 규제에 의한 손해를 감수하는 비용이 규제를 고치는 비용보다 적다고 생각된다면 규제를 고치는데 소극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옳다면, 전문직 자율규제는 곧 논리적으로 규제 실패를 의미한다. 자율규제의 주체들은 적당한 지대 추구를 합리적 목적으로 설정할 수 있거나 설정해야 한다. 만일 그렇다면, 전문직 자율규제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주체들의 지대 추구에 의해 자율규제의 실패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런 추론이다. 게다가 규제의 실패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적 비용을 가져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문직과 그들의 봉사를 제공받는 일반 시민을 포함하는 사회는 어느 정도의 규제 실패를 용인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공리주의적 배경 하의 자유주의 사회계약론적 자율규제의 분석은 겉으로 보이는 유효성과는 달리 적절한 철학적 기반으로 작용할 수 없다. 자율규제의 근본적인 토대가 그저 사회계약론적 관점에서만 주어진다면, 우리는 계약의 협약 당사자들에게 적절한 규제 실패를 피할 방책을 마련할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의 남은 부분에서는 자율규제의 도덕 철학적 토대를 보완하기 위한 한 접근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도덕 이론에서의 사회계약 이론(contract theory)은 사회계약론(contractarianism)과 계약주의(contractualism)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계약론은 도덕의 규칙들이란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합리적인 자기 이익에 호소해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하며, 사람들은 저마다 그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계약주의는 도덕규칙들은 교섭협상에서 옹호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계약주의는 사회계약론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도덕을 계약에 의거하여 설명하고 있다[17]. 한편, 본 연구에서는 사회계약 이론들 중 정치 철학적인 담론뿐만 아니라 도덕 철학적 영역에서도 논의되는 지평을 가진다. 따라서 이후 이루어지는 논의에서 사회계약 이론은 도덕 철학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도덕 철학적 사회계약 이론들 중에서도 롤즈에 의한 분석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롤즈의 계약주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계약주의는 도덕 원칙들이 타당하기 위해선 그것이 그 계약의 모든 당사자들 또는 그 계약이 성립되는 교섭 상황에서의 교섭 주체들 모두에게 수용될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롤즈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8]에서 초기의 규칙 공리주의자적 면모에서 벗어나 약속을 지키는 책무성은 단순히 계약의 문제가 아니며 정의의 문제라고 바라보았다. 그에 따르면, 약속의 책무성은 정의 이론에 의해 근거 지워지는 것이며 그러한 정의의 원칙들은 '원초적 입장'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숙고를 통해 도출되는 것이다. 원초적 입장에서 주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있어서 제한을 받는다. 즉, 소위 '무지의 장막'은 계약과 무관한 정보들을 모두 차단한다. 이러한 원초적 상황에서 주체들은 우선 사회의 기초 구조를 이루는 구성 원리를 선택한다. 사회 구조의 구성 원리들은 넓은 의미에서 사회의 기초 제도들을 정의롭게 조정하여 배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에게 있어 상호간의 규칙들이 선택되는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맥킨타이어(A. MacIntyre)와 샌델(M. Sandel) 등은 롤즈의 무지의 장막의 가정을 비판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구의 자식이며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구체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무지의 장막과 같은 개념은 극도로 추상적인 것이어서 그 의미가 무색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지의 장막은 전문직 자율규제에 있어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보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회계약적 관점에서 자율규제의 계약 당사자들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은 심각한 제도적 안정성의 결함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애초에 무지의 장막을 따르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지킬 수만 있다면 이러한 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1920].
롤즈는 약속의 책무성을 여타 사회 제도적 책무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 즉, 약속이란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덕적 행위라기보다는 사회적 필요에 의해 계약된 제도적 인공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약론적 관점은 기존의 사회계약 이론들과는 달리 계약들이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리'에 의해 지지될 경우에만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으로 바라본다. 만일 그렇다면 사회계약은 제도를 만들지만, 단지 계약론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제도들은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즉, 권리, 자유, 기회 및 소득과 재산의 분배에 관한 제도들과 같은 사회의 기본적 제도들의 조정을 통해 보다 원초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며, 이에 의해 지지받는 제도만이 우리에게 그 제도에 따를 책무성을 온전히 부여할 수 있다. 한편 '공정의 원리'는 한 개인이 제도에 의해 부여받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다. 롤즈에 따르면, 그 제도는 정의로운 것이어야 하며, 그러한 제도의 결과에 대해서 행위 주체가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공정의 원리가 충족된다. 이를 토대로 어떤 하나의 약속 또는 계약이 공정의 원리를 충족하려면 어떤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는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롤즈는 약속의 책무성 또한 제도의 책무성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롤즈는 이를 위해 세 가지 이론적 요소들을 도입한다. 첫째, 약속의 규칙은 그 약속이 자발적 동의와 수행에 의해 이루어졌는가의 문제이다. 둘째, 성실한 약속의 개념은 그 약속이 정의로운 것인가의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충실성의 원리는 계약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한 정의로운 약속에 있어서 그것이 규정하고 제재하는 행위들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임승차의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세 가지 이론적 요소들을 한데 묶어 간략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자발적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정의로운 약속의 경우에,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제도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임승차이며, 따라서 공정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18]
지금까지의 논의가 옳다면, 우리는 롤즈에 있어서 공정의 원리가 여타의 기존 사회제도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궁극적인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의 제도는 그것이 단지 자발적으로 제도적 계약 당사자들에 의해 따르기로 승인되었음을 통해서 그 자체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 하부적 제도(계약)는 계약 이전에 원초적 입장에서 공정의 원리에 따라 기본적인 사회제도적 배치가 숙의 결정되고, 그에 따라 선택된 이후에 비로소 그것이 정의로운 제도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시금석이 마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잣대로 미루어보아 그것이 정당할 경우, 그리고 그것에 따른 계약을 자발적으로 승인한 경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즉, 자율규제와 같은 제도적 계약도 그것이 그저 계약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 합의에 의해서만 오로지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계약 이전에 공정으로서의 정의 원리에 의해 권리, 자유, 기회 및 소득과 재산의 분배에 관한 기초적 사회 제도가 조정된 이후 그에 따르는 정의로운 계약일 경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계약 당사자들은 그러한 계약에 따를 의지를 제대로 발현할 수 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근본적인 자연적 의무는 정의의 의무이다. 이 의무는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정의로운 사회제도를 따르고 지지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너무 많은 부담이 지워지지 않는 한에서 아직 성립되지 않은 더 나아간 정의로운 질서를 추구하도록 한다. 따라서 루소의 입장과 같이 우리가 원초적 상태에서조차 도덕적 또는 자연법적 의무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사회제도에 대한 정의의 원리를 따를 의무는 선(先) 계약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다. 롤즈는 바로 그러한 직관을 통해 루소의 '일반 의지'에 해당하는 '공적 이성'에 따르는 정의의 원리가 선제되지 않는 사회계약은 제도의 안정성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라 예견한다. 롤즈의 표현대로 "만약 사회의 기초 구조가 정의롭다면 또는 모든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합당할 만큼 정의롭다면, 모든 사람들은 기존의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자연적 의무를 지닌다[21]." 이는 곧 정의의 원리에 따르지 못한 사회 제도는 그것이 자발적 합의에 근거했다 하여도 그것을 기꺼이 따를 책무성을 우리에게 온전히 부과하지 못함을 암시한다. 결론적으로, 롤즈는 계약 이론적 한계 속에 자연적 의무를 가둬두기 보다는, 그의 원초적 입장이라는 가설적 상황을 전제로 자연적 의무가 사회적 계약을 지키려는 책무보다 더 중요한 또는 우선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 절에서 우리는 롤즈의 정치 철학적 그리고 도덕 철학적 관점에서 사회계약 이론의 한계를 자율규제의 차원에서 규명해 보았다. 만약 우리가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과 같은 정의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그저 사회계약론적 합의만으로 자율규제의 규범들을 만들고 이를 강제한다면 실질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자율규제의 철학적 근거는 계약 이전 단계에서 주어져야 한다. 이는 곧 자율규제를 둘러싼 계약 당사자들이 홉스 식의 합리적 존재가 아닌 일반 의지를 통해 공공선을 추구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여야 함을 가리킨다. 물론 이와 같은 대략적인 그림은 너무 이상적인 낙관론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롤즈는 분명 현실주의적인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주의자이지 이상적 낙관론자가 아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자세한 논의는 매우 중요할뿐더러 절실해 보이지만, 한정된 지면으로 인해 다음의 연구로 미루고자 한다.
자율규제는 그것이 민주적 질서 아래서 이루어지는 한, 일종의 공적인 선물이며 민주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비록 전문직 자율규제가 잘못된 동기에 의해서, 편향된 근거지움에 의해서 또는 인간적 한계에 의해서 본래의 취지를 잃고 규제 포획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지만 전문직 자율규제 그 자체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제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사회 영역에 있어서 자율규제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자율규제에 대한 주도적인 논의 방향을 따르는 공리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회계약적 관점에 의존하여 전문직 자율규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규제 포획과 같은 해결하기 어려운 실천적인 문제들을 초래할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비록 자율규제에 대한 사회계약적 관점이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주도적인 관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적 이론과 접근법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롤즈의 정의의 원리를 통한 사회 제도의 선 계약적인 정당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본 논문은 전문직 종사자를 전문직단체 스스로 규율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때 어떤 이론적 근거를 갖는지에 대한 철학적 비판의 글이다. 저자들은 우선 자유주의적 사회계약론으로는 자율규제를 정당화할 수 없음을 논증하고, 그 대안으로 롤즈의 정의론에 근거한 도덕철학을 제시하고 있으며, 공동체를 위한 진정한 자율규제는 사회계약론적 관점만이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제도를 위한 윤리이론, 즉 도덕 철학적 근거가 주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의 의의는 전문직업성과 자율규제의 관계에 대한 적실성 있는 개념 규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자율규제의 논리적 근거 또는 철학적 근거에 대한 정리를 새롭게 시도하는 중요한 논문이라는 점에 있다.
[정리: 편집위원회]
Acknowledgment
This study was supported by the Research Institute for Healthcare Policy, Korean Medical Association in 2015 (2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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