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줄기세포가 불러온 총체적 패러다임의 변화
2012년 7월 1일, 10년간 선택적으로 실시하던 포괄수가제(diagnosis related group, DRG)가 2차병원급 이하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학계와 개원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수직적이고 비타협적인 정책이라는 우려 속에 출발한 만큼, 시행 1년을 맞이하게 된 DRG의 초기 평가는 매우 신중해야하고 조심스러운 일임이 사실이다. 필자는, 외과 개원의로서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DRG의 개선된 점과 개선해야할 점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고자 하며 외과적 질환에 치중된 언급이라 해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포괄수가제에 대하여
먼저, 개정된 DRG제도의 개선된 점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개정된 DRG는 수가 구조에서 이전 DRG 제도(선택적으로 시행되던 때의 DRG) 때보다 합리적인 변화를 보였다. 상급 병실료, 초음파 비용, 앰블런스 이송 비용, 자가통증조절장치(patient controlled analgesial) 등을 별도로 산정할 수 있도록 한 것 외에도 평균 2.7%, 야간-공휴일 가산 시 3.5%의 수가가 인상되었다. 응급 야간수술에 대한 가산과 의료기관 종별 인센티브를 차등화하여 이를 상급종합병원과 병원, 의원의 진료비에 반영한 것은, 그간 의료계의 끊임없는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질병군을 다양하게 분류하여 연령과 수술법에 따라 차별화하였다. 탈장수술의 경우, 나이를 고려하여, 9개 질병군에서 21개 질병군으로 세분화되었고, 복강경 탈장수술에 대한 항목을 새로이 신설하여 별도의 질병군으로 분류하였다. 과거의 DRG제도 하에서는 복강경수술에 대한 차별화된 수가가 없어서 의료기관마다 기피했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한 만한 발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요약한다면 개정 DRG는, 선택운영시기 동안 빈번하게 제기되었던 야간수술에 대한 차등 수가 문제를 처음 제도적으로 언급하고 전반적인 DRG질환군의 수가인상을 이뤄냈다. 또한,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신의료기술에 냉담했던 DRG 제도가 치료기술의 다양화를 인정하게 된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가 면에서 개선된 제도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 진료현장에서 환자를 접하는 의료계의 의견을 깊게 반영하지 못한 오류는 곳곳에서 쉽게 드러난다. 이에 개정 DRG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압축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DRG 질환과 복합된 중증 질환에 대한 고려가 없다. 이 문제는 개원가뿐만 아니라 3차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고혈압, 당뇨 등 유병률이 매우 높은 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군에서 DRG 질환이 발생한 경우, 단순한 DRG급 질환만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예를 들어(필자의 실제의 사례), 평소 협심증으로 앓고 있던 77세 여자 환자는, 7일 정도 경과된 천공성 충수농양으로 수술을 시행했으며 수술 후 2일째 흉통으로 응급검사를 시행한 결과, 급성심근경색으로 확인, 응급 관상동맥 스텐트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상기 환자는, "복잡한 상병을 가진 충수절제술 환자"로 분류되어, 심장 관련 시술에 대한 수가를 별도로 인정받지 못했다. 또 다른 사례는, 폐렴으로 입원하고 있던 62세 남자 환자에서 재원 4일째 복통으로 발견된 충수염의 경우이다. 상기 환자의 경우는, 폐렴으로 최소 6일 이상이 경과해야만 DRG 수가와 앞서 진행한 폐렴 치료 수가를 별도로 받을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DRG에 대한 수가만 산정 가능했다. "최소 6일"이라는 제한이 나오게 된 의학적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런 문제가 반복된다면, DRG 영역에서, 중증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기피하는 현상이 필히 발생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또한, 환자의 중증도 계산 방식도 "중증 혹은 중등도의 합병증이나 동반상병 동반"과 "심각한 합병증 및 동반상병 동반"으로 구분하여, 객관적인 구분이 매우 모호하게 분류해 놓았다. 중증도의 판단은 의료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며 수많은 경우의 수들이 도사리고 있으나, 현행 DRG는 이러한 면을 포용하지 못했다.
둘째, "진단이 지연된 경우"는 더욱 수가적 불이익이 크다. 가령, 충수염을 진단하지 못하고 내시경과 컴퓨터단층활영를 시행한 경우는 진단 과정에 대한 수가적 보상을 받을수 없다. 복잡한 합병증이 발생한 상태일수록 진단에 있어 신중함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행 규정대로라면 여러 가지 검사를 할수록 의료기관은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결국 정확한 진단보다는 시험적 수술(exploratory operation)이 더욱 유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거나, 환자를 회피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 될 것이다.
셋째로, 최신 의료용 재료에 대한 수가 보장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1997년, DRG 1차 시범 사업을 실시하던 때, 복강경수술에 대한 보장이 없어 수술의 대중화를 지연시켰던 실수는 현재에 와서도 반복된 양상이다. 25년 만에 복강경술기는 DRG에 반영되었지만, 그 시간 동안 엄청나게 발달한 의료용 재료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다. 대표적으로, 초음파절삭기(ultrasonic scissors)와 자동장봉합기(gastrointestinal a nastomosis)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만 보아도 이러한 상황을 짐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에게 간단한 수술로만 알려져 있는 충수절제술은, 심한 경우 부분장절제 혹은 우측 대장절제술까지 확대될 수 있으며 복강경으로 진행될 경우 기초적인 의료 장비만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외과의들은 초음파절삭기와 자동장봉합기를 사용하나, 현행 DRG 체계에서는 "복잡한 상병을 가진 천공성 충수절제술"로 분류되어 약간의 수가적 추가를 받을 뿐 수술용 재료대의 보상을 별도 산정할 수 없다.
앞서 언급된 세 가지 문제점은, 실제 진료영역에서 심각한 고민거리를 만들어 낸다. 단순히 환자를 피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외과의로서 주된 진료영역을 포기하고 비DRG분야로 진로를 변경할 것인가 아니면 재정적 불안정성을 감수하고 외과의로 살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만들 수 있다. 원형 모델의 오류를 개선하였다고 하나 현재의 DRG 체계는 수정, 보완해야 할 방법적 모순이 산재해 있다. 필자는, 그 이유를 개선 DRG의 공표, 발효 과정에 개원의를 필두로 하는 의료계와 충분한 상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결 론
이제, DRG 시행 1년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남겨진 과제는 끊임없는 토의와 문제 제기로 앞서의 모순을 바로 잡고 시대 조류에 순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수가 체계로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의 주체는 정부-의료계-시민이 공동으로 해야 하며 일회성의 모임이 아닌 장기적인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의료비의 부담을 줄이고 적정 진료를 보장한다는 DRG 본연의 목표은, 우리 의료계 전체의 궁극적 목적이며 이상이다. 같은 목적을 향한 만큼 앞으로 DRG 체계 발전에 상호협력 및 공동연구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