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최근 들려오는 일련의 약물 오남용과 관련된 신문 및 방송 보도를 계기로 약물 오남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2012년도 마약류 심각성에 관한 국민 인식도 조사보고'에 의하면 일반 국민의 83.7%가 우리 사회에서 마약류 및 약물 남용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고하고있다[1]. 흔히 약물 오남용은 적발되었을 경우 법적인 조치를 받게 된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편으로 물질관련 질환(substance-related disorder)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오남용은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 황폐화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사회와의 관계가 붕괴됨과 동시에 범죄와 연결되거나 인명을 손실하게 하는 등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특히 오남용과 관련된 약물을 취급하게 되는 의료종사자들은 이러한 오남용의 유혹에 더욱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불규칙한 병원 생활 속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빠른 판단과 행동을 요구받는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함께, 주변의 약물에 대한 쉬운 접근성은 의료인의 약물에 대한 오남용 위험성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McGovern 등[2]에 의하면 행동치료를 받기 위하여 병원을 찾은 의사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질 섭취 장애로 인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 논문에 의하면 이들 의사들 중 약 52.8%가 물질섭취장애를 호소하며 이중 61.4%는 술이 문제였고 이어서 처방받은 마약류(hydroco-done 등) (26.3%)이었다. 이들 중 한 명의 의사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찾아 왔다. '수술실에 근무하는 의료진의 프로포폴 남용'에 관한 연구에서도 9건의 남용 사례 중 8건이 남용 의사의 의지와 관계없이 남용 현장이 목격되거나 사망으로 인해 알려지게 된 경우이다[3]. 이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인의 약물 오남용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일천하다. 본 특집 논문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약물 오남용 실태에 대하여 돌아보고 특히 의료인의 약물 오남용과 의료환경과의 관계에 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약물 오남용의 현황
약물은 섭취 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초래하는 물질을 뜻한다. 약물 오남용은 약물이 일반적인 용도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약물 중 중독성이 강하고 개인의 건강이나 사회에 미치는 해가 큰 약제들은 사회의 규제를 받게 된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약류이다. 마약류는 제조원에 따라 마약, 향정신성 의약품 그리고 대마로 분류하여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된다[4]. 위의 마약류 외에도 본드나 가스 등의 유해흡입물질과 수면제, 진통제 등의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약제 등을 사용하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약물 남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5].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외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마약 청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검찰청의 마약류 사범 단속 결과에 따른 마약류 사범의 변화 추이를 보면 2000년대 초반 연간 10,000여 명을 유지하던 건수가 강력한 단속으로 인하여 2003년을 기준으로 감소하였다가 다시 2007년 이후 증가하여 9,000명 이상이 유지되고 있다[5]. 이중 마약은 연간 1,000여 건을 유지하다가 2012년에는 582건으로 감소하였다. 이에 비하여 향정신성의약품과 관련된 건수는 2007년 피크를 보인 이후 다른 마약류와 비교하여 꾸준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2010년 이후에는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대마의 경우 1990년대 이후 2000년 초까지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이후 감소하여 최근에는 1,000여 건을 유지하고 있다(Figure 1). 2013년 4월 현재까지의 마약류 사범의 단속 현황 또한 2012년의 현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6]. 이와 같이 다른 류의 마약범죄는 감소하는 가운데 향정신성의약품과 관련된 마약사범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2012년 마약류사범 유형별 현황에 따르면 마약류 사용(투약)과 관련된 적발 건수는 5,082건으로 전체 마약류사범의 54.9%로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중 향정신성약품은 4,258명으로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마약류사범의 직업별 현황으로는 무직이 31.2%로 가장 많았으며 의료업 종사자는 94명으로 전체의 1.0%를 차지하였다. 의료인의 비율은 2001년의 3.26%(152명)에 비하여 꾸준한 감소를 보였다[57].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의 보고에 의하면 12세 이상 미국인의 8.7%인 22,500,000명이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8]. 세계적으로 볼 때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불법적인 약물의 사용 빈도는 성인(15-64세)에서 3.6-6.9%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9].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약물 남용 실태에 대한 세밀한 조사는 흔하지 않다. 이는 상대적으로 약물 오남용의 빈도가 낮아 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중 2004년 약물 남용 인구의 실태 파악 및 유형별 실태에 대한 조사를 위하여 이루어진 '약물 남용 실태 및 의식에 관한 연구'[7]는 전국 7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울산)의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조사대상을 광역시 도시로만 한정해 진행하였다는 단점이 있으나 상대적으로 신뢰가 가는 연구라 할 수 있겠다.
이 연구에 의하면 좁은 의미에서의 약물 남용자 혹은 마약류 사용자(마약류, 향정 및 대마 사용자)는 전체 조사대상자 2,500명 중 63명으로 2.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드, 부탄가스 등의 유해흡입물질을 사용한 적이 있는 사람을 포함시킬 경우는 100명으로 전체의 4.0%, 일반 약품을 환각의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까지 포함한 약물 남용은 116명으로 4.6%를 나타냈다.
한국마약퇴치본부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마약류 심각성에 관한 국민인식도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조사대상자 중 마약류 및 남용 약물 경험 비율은 2009년 8.9%에서 꾸준히 감소하여 2012년 3.9%를 보여주고 있다[1]. 이러한 연구결과는 1999년 이후 마약류사범의 변화 추이와 어느 정도 유사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Figure 1).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현재 우리나라의 약물 남용은 4% 내외가 될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 약물 남용자의 직업별 실태에서 마약류사범에서 무직자가 많았던 것과 달리 판매직이 20.9%, 사무직이 16.5%, 서비스직이 13.9%, 생산직이 13.0%, 학생이 12.2%였고 주부도 12.2%를 차지하였으며 전문직 및 관리직도 8명을 나타냈다[7]. 약물의 첫 사용 연령은 23.5세가 평균이었으나 유해흡입물질의 처음 사용 연령은 17.1세로 가장 낮았고 마약이나 환각 목적의 일반 약물의 사용 연령은 27세 전후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일반인에게서 마약류를 사용하게 된 이유로서는 호기심이 24.6%, 유혹이 23.9%로 나타났다. 이외 중독이나 강압, 영리, 치료 목적 등이 해당한다[7].
의료인의 약물 오남용 현황
최근 여러 나라에서 의사들의 약물 남용과 관련된 보고가 있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과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참고는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약물 오남용과 관련된 연구에 의하면 의사들의 약물 오남용 빈도 또한 일반인과 차이가 없거나 약간 높은 정도로 보고하고 있다[1011]. 그러나 의사들에 있어서 마약이나 벤조디아제핀과 같은 약제의 사용빈도는 일반인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밝혀지지 않은 처방받은 약제에 의한 남용의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높은 비율일 가능성도 있다[12].
우리나라에서 의사들을 대상으로 약물 오남용과 관련된 연구가 이루어 진 것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외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약물 오남용 정도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우리나라 의사들의 약물 오남용 빈도 또한 우리나라 일반인의 약물 오남용 빈도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약물의 오남용은 전공하는 과목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Hughes 등[13]에 의하면 응급의학과와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이 다른 과에 비하여 그 빈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으며 이에 반하여 소아청소년과, 병리과, 영상의학과 등이 낮은 약물 오남용의 빈도를 보였다고 한다. 한편 McLellan 등[14]의 약물 남용으로 치료받고 있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가정의학과(20%), 내과(13.1%), 마취통증의학과(10.9%), 응급의학과(7.1%), 정신건강의학과(6.9%) 등 5개의 전문과목이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의사들 중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는 전체 의사의 약 5.2%를 차지하는 것을 고려할 때[15] 두 배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로 사용되는 약물들 또한 일반인과 차이가 있었다. 2012년 우리나라의 마약류사범 단속결과에 따르면 의료인 마약류사범은 향정신성의약품사범이 많았으며(80.9%) 다음으로 마약사범이 18.1%를 차지하였다[5]. 일반 마약류사범과 비교하여 마약사범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6.2% vs. 18.1%). 이러한 결과는 의료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향정신성의약품이나 마약에 대한 접근이 더욱 용이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의료인 마약류사범의 향정신성의약품 단속 비중은 2003년 약 74.4%에서 2012년 80.9%를 차지하여 증가하였다.
실제 일반 의사들에 의해서 오남용 되고 있는 약물에 대하여는 특정한 약물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미국 16개 주에 걸쳐서 약 84%가 남자인 904명의 약물 남용 의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주 남용 물질은 술이 50%를 차지하였으며 마약이 35.9%, 흥분제가 7.9%, 기타 약제가 5.9%를 나타냈으며 대상의 약 50%가 두 개 이상의 약제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으며 13.9%가 정맥 주사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14].
Hughes 등[13]의 수련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의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남용 물질은 술과 담배 외에 minor opiate (codeine, propoxyphene; 17.6%), 벤조디아제핀(11.4%), 마리화나(4.6%), 코카인(1.1%), major opiate (demerol, fentanyl, sufentanil 등; 1.1%)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는 또 전공에 따라 오남용하게 되는 약물의 종류도 다른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Minor opioid의 경우 가정의학과 및 산부인과에서 주로 남용되고 있는 반면 major opioid의 경우 마취통증의학과와 응급의학과에서 많이 남용되고 있었다. 벤조디아제핀은 정신건강의학과에 의해서 많이 남용되고 마리화나의 경우 응급의학과에서 많이 남용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약물 남용 의사들 간의 비교에 있어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마약을 많이 남용(78.1% vs. 41.7%)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16]. 이러한 결과는 결국 전공과 관련하여 주변에서 주로 다루게 되는 친숙한 약물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약제들 중 특히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사용되는 약물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 약제들은 다른 약제들에 비하여 더욱 강력한 약효를 가지는 경우가 많아 남용할 경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이 남용에 주로 사용하는 약물은 마약으로서 fentanyl (76.6%)이 가장 많았으며 sufentanil (34.5%)도 사용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17]. 이외에 demerol, hydromorphine, morphine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약제재 이외에 투여되고 있는 약제로는 midazolam (37.9%), propofol (20%), ketamine (24.1%) 등의 정맥마취제를 투여하고 있었다. 이외에 sevoflurane이나 nitrous oxide와 같은 흡입마취제를 사용하는 보고도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의 불법적인 마약 및 약제들의 사용은 다른 전문과목보다 3배 정도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18] 다른 한 연구에 의하면 2006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보고된 fentanyl 남용 의사의 75%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라고 보고하고 있다[19].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취 유도 및 진정에 사용되는 프로포폴에 대한 보고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킨다. 2010년 마취통증의학회 평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보고된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프로포폴 남용에 관한 연구'에서 72명의 답변 중 7개 병원에서 총 9명의 프로포폴 남용자를 확인하였다[3]. 이중 의사는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가 4명, 타과 전공의 2명으로 총 6명이었고 이들 9명의 남용자 중 2명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또 다른 마취통증의학과 수련기간 중의 프로포폴 남용과 관련된 연구에서 25명의 발견된 남용자 중 6명의 수련의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20]. 이와 같이 강력한 마약 및 마취 약제를 사용하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은 내과의들에 비하여 약물과 관련된 사망사건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2122].
의료환경과 약물 남용
약물 남용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너무나 다양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특정 약물이 남용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특정 약물에 대해 남용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또한 남용이 진행되는 과정에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2324]. 상당수의 약물 남용 의사들에서 가족력을 발견할 수 있으며 개인의 성격, 동반된 정신질환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25].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요인 외에도 사회적, 환경적 요인들 또한 약물 남용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약물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데 있어서 약물에 대한 호기심이나 주변의 권유 및 약제에 대한 접근의 용이함 등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723]. 앞에서 기술된 바와 같이 마약류 사범에 대한 연구 중 의료인에서 상대적으로 마약의 사용이 높은 것은 이를 통하여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전공과목 별로 사용되는 남용 약물이 다른 것에 대한 설명도 이를 통하여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 약물 남용자들과 비교하여 의사들은 자가처방을 통하여 4-5배 높은 빈도로 진정제나 신경안정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약제에 대한 접근이 쉽다는 것은 사용하게 되는 약제의 종류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약물 남용의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약류 사용자들 중 관리나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26] 마약류사범들이 주로 마약을 사용하는 이유는 즐기기 위해서가 19.6%, 호기심이 16.9%, 성적 만족이 15.4%, 다른 사람의 권유가 13.6%, 스트레스 해소가 13.1%를 나타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약물을 시작하는 초기와는 달리 다양한 이유로, 즉 호기심과 주변의 권유가 중요한 요인이 되나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성적 만족을 위해 혹은 개인적인 스트레스 해소 등을 목적으로 약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의 약물 남용 또한 비슷한 이유로 유지될 것으로 생각된다. 의사 생활동안 약 14%가 술이나 약물 의존성을 경험하게 되는데 가장 빈도가 높은 시기는 본격적인 의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고 5년 이내라고 한다[21]. 의과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신경 안정제를 제외하고 약물 복용의 시작은 의과대학 입학 전에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다[27]. 의과대학생들은 주로 술 이외에 마리화나, 코카인, 신경안정제 및 마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대부분 즐기기 위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레지던트나 전문의의 약물 사용은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서 이거나 혹은 스트레스, 우울증, 분노, 통증 조절 등을 위한 목적인 듯하다.
의사들의 스트레스 요인은 다양하다. 과중한 업무와 만성적인 수면 부족, 고위험 환자 관리의 어려움,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의학 지식, 증가하는 정부의 간섭 등과 함께 개인생활에 있어서 일과 개인생활 간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갈등을 겪기도 한다. 또한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의사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임상에서 환자의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며 꼼꼼하고 완벽함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학 입학 전의 학생 개인의 특성에 기인하는 면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의과대학 교육 및 수련 기간 중 환자를 중심으로 모든 것에 완벽을 요구받고 또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에도 기인한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불평 없이 묵묵히 환자 진료에 임하게 된다. 병원의 의료문화는 완벽을 추가하여야 하고 끊임없이 일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장시간 업무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은 돌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수면결핍 등은 인지장애나 정서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로는 감정적 고갈(emotional exhaustion), 탈인격화(depersonalization), 개인적인 성취감의 결핍(low personal accomplishment) 등을 동반한 허탈(소진, burnout)로 이어지기 쉽다. 또한 결과적으로 우울증을 겪거나 약물 남용을 하거나, 가정생활에 지상을 받을 수도 있게 된다.
Shanafelt 등[28]에 의하면 45.8%의 의사들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허탈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허탈 현상은 직접 환자들을 보는 응급의학과, 일반 내과 및 가정의학과 등에서 많이 발생하고 반면 병리과, 피부과, 일반 소아청소년과, 예방의학 등에서 허탈 현상은 낮게 나타났다. 또한 젊거나 미혼의 경우 위험도가 더 높았으며 주당 근무시간이 높은 경우 허탈 현상이 일어날 위험성이 더 높았으며 의사들은 일반인들에 비하여 허탈 현상의 빈도가 훨씬 높게 나타나며(37.9% vs. 27.8%)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았다(40.2% vs. 23.2%)[28]. 특히 허탈 현상의 빈도가 높은 응급의학과, 가정의학과에서 약물 중독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허탈 증상과 약물 중독의 연관성을 보여 준다.
근무의 형태에 따른 허탈 현상의 빈도도 다르게 나타났다. 대학병원이나 정부기관에 근무하는 의사들에 비하여 이외의 개인병원과 같은 다른 형태의 병원에 근무하는 경우 허탈 현상의 빈도는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29]. 이들은 개인적인 시간이나 휴식의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들었다.
Oreskovich 등[30]의 보고에 의하면 허탈 현상이 있는 외과의사들에 있어서 과음이나 술에 대한 의존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음이나 술에 대한 의존성은 중대한 의료과실을 일으킬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약물 남용과 관련된 증상을 알더라도 의사들은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약물 오남용에 대한 교육이 대학시절부터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의사들은 자신의 오남용이 주변에 알려짐으로 해서 자신이 실직과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하고, 또한 주변의 동료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병원 내 상하관계로 인하여 주변의 오남용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경우도 상당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법적인 부담으로 인해 이를 질환으로 생각하지 않고 범법으로만 생각하게 됨으로 인해 외부로 노출되기를 꺼리게 된다. 이에 따라 의사들의 약물 오남용이 밝혀지게 되는 것은 상당히 진행이 된 이후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결론
의사들의 약물 오남용은 분명한 하나의 질환으로서 자신과 가족들에 대하여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치료하고 있는 환자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이의 예방과 조기 발견, 처치 및 재활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약물 오남용은 개인의 성격이나 동반 질환 등의 다양한 원인에 의하여 초래될 수 있으나 병원에서의 의사에 대한 과도한 업무와 연관된 스트레스로 인한 허탈 현상 또한 중요한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허탈 현상의 증상이 의사들의 반 가까이에서 겪게 된다는 조사 결과는 이의 예방을 위하여 개개인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들의 근무환경의 변화나 의료전달체계의 변화를 통해서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는 이와 연관된 적절한 연구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의료환경에 대한 적절한 조사를 통하여 의료현실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