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의료행위나 의학연구가 윤리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지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의료행위나 의학연구에 대한 법적 개입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으며 의사는 다양한 혹은 중대한 법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생이나 수련의가 이러한 법적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법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의과대학이나 수련기관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의사 국가시험 과목의 하나인 '보건의약관계법규'만을 가르칠 뿐이다. 보건의약관계법규는 의사의 신고 의무 등을 강조할 뿐 의료사고와 관련된 민법이나 형법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의학연구를 규율하는 법률도 다루지 않는다. 이는 의사 국가시험 과목으로서의 보건의약관계법규가 의사를 국가의 행정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서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과대학에서 법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가 법학 학위나 법조인의 자격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이 임상의학을 가르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법학 학위나 법조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법교육을 담당하는 것은 이와 비견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에서 이에 대한 약간의 문제의식조차 찾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특집에서는 의사의 법적 책임을 1) 민사책임, 2) 형사책임, 3) 국민건강보험법, 4)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5) 수련의의 법적 책임 영역으로 나누어 소개하여 다양한 법적 위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영역 구성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의사의 법적 책임은 민사책임, 형사책임, 행정적 책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책임과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의 형사책임의 범위는 훨씬 더 넓다. 각종 보건의료법률을 위반하였을 때 징역이나 벌금에 처하는 규정이 많고 이는 의사의 형사책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행정적 책임과 관련하여 국민건강보험법은 중요하다. 관련된 부당이득환수처분과 업무정지처분(혹은 과징금처분)이 빈번히 발생하며 의료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학연구를 규율하는 기본 법률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다. 또한 특수한 집단으로서 수련의에 대한 관심은 중요하다. 이들은 적법한 면허를 가진 의사이면서도 의료현장 경험이 짧아 상대적으로 커다란 법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민사책임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흔하게 문제된다.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고 환자의 손해가 발생하고 과실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의사는 재산적·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또한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아도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면 의사는 정신적 손해(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과실, 손해, 인과관계 및 설명의무의 기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실의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피해자(환자)에게 있지만 설명의무의 이행에 대한 입증책임은 의사에게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더 나아가 통상의 설명의무와 달리 위반 시 전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되는 지도설명의 개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의사의 형사책임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의료사고 시 문제되는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입증책임을 검사가 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민사책임의 개념(과실, 손해, 인과관계)과 유사하다. 오히려 다양한 보건의료법령의 위반이 형사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의사가 피부관리사에게 피부박피술을 시행하게 한 경우 대법원은 의사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부정의료업자 위반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한 사례도 있다[1].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 위반 시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의사면허 취소가 문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의료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문제된다. 부당청구나 허위청구의 경우 부당이득환수처분과 함께 업무정지처분이 내려지거나 5배 이하의 과징금처분이 내려진다. 더욱이 허위청구의 경우 의료법에 따라 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이 내려지고 더 나아가 형법의 사기죄로 기소되어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면 의사면허가 취소되는 등 파급효과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대법원은 과실로 요양급여기준위반을 위반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부당이득환수처분 등 행정처분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 외 임의비급여,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등과 관련된 최근 법원의 판결이 중요하다.
과거 의약품 혹은 의료기기 임상시험은 약사법과 의료기기법으로 규율하였고, 배아연구, 유전자은행 등 일부 의학연구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로 규율하였다[2]. 그러나 2012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전부개정되어 이제 인간대상연구와 인체유래물연구 전체가 법적 규율의 대상으로 확대되었다[3]. 거의 모든 의학연구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받게 됨에 따라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심의와 면제, 피험자 혹은 인체유래물 기증자의 서면동의와 면제에 관한 규정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련의는 통상 인턴과 레지던트를 포함한다. 과거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인턴의 법적 책임을 관대하게 평가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유지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02. 2. 7. 선고 98노1310 판결). 그러나 최근 의료사고 및 보건의료법률과 관련된 수련의의 법적 책임은 전문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수련의에게서 나타나는 작은 의사소통의 장애가 커다란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환자-의사 관계, 의사-의사 관계, 보건의료제도의 측면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법적 문제를 설명하여 수련의 스스로 법적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의사가 의료행위나 의학연구와 관련된 민사책임이나 형사책임, 그리고 관련 법률을 이해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법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의료행위나 의학연구에 대한 현재의 법적 규제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의료전문직으로서의 의사는 의료행위나 의학연구에 대한 윤리적 원칙을 확립하고 그에 합당한 보건의료정책과 관련 법률이 도입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보건의료법률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대안 제시를 위한 연구와 교육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