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환자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의료의 질 향상이란 있을 수 없다. 환자안전이란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에게 해를 입혀서 안 된다는 히포크라테스적 선언(do no harm)이다. 안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환자가 안전할 때 의료기관 내 의료진도 안전하다. 그러므로 환자안전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기본 권리이자 존엄성에 관한 문제이다. 2010년 국내에서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안전의 사명으로 의료기관 인증제가 출범하였다. 인증의 목표가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자안전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국내 환자안전가치 실현을 위하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들'과 '중요한 현안'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의료기관에서 안전의 의미
환자안전은 위해가 일어 날 수 있는 환경이나 과정을 개선하는 것이다. 일반 산업의 안전관리는 기관의 재정적 손실을 예방하는데 집중된다[1]. 그러나 보건의료 분야에서 안전관리는 재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환자 진료에 있어서 부정적인 결과까지 포함된다. 의료기관의 안전관리는 환자, 의료진, 직원, 조직의 자산, 재정적 위험 을 모두 포괄한다[2].
의료의 발전이 매우 빠르고, 대량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의료행위의 복잡한 과정과 환경, 수많은 사람의 참여하는 등 의료의 특수성 때문에 의료에서 오류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류(error)가 발생하여도 위해(harm)로 발전되지 않도록 환자안전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과 체계가 필요하다. 완벽한 의료가 존재하지 않듯이 완전한 안전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명제를 갖고, 환자안전을 위하여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의료기관에서 환자안전의 의미 일 것이다(Figure 1).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안전
의료기관 경영자들의 최대 관심은 바로 경영성과이다. 그러나 경영성과를 위하여 지속적인 의료의 질 향상 활동을 잘 활용하는 의료기관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실질적 의미로서 의료의 질 향상 활동을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환자안전이 경영성과에 도움이 될까? 의료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근본원인을 분석하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를 미리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낼 수 있다. 환자안전보고체계와 사례분석을 통한 예방체계를 갖추면 자연히 환자안전사고발생이 감소하고 관련된 비용이 감소하게 될 뿐 아니라 의료기관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의료의 질은 전통적으로 임상적 효과(effectiveness)였다. 치료효과가 좋으면 평판이 좋아지고 계획에 없던 재입원율, 급성중증환자의 치료기간이 단축될 수 있다. 환자의 재원기간과 검사 소요시간이 줄어드는 효율성(efficiency)도 적절한 자원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의료의 질에 중요한 항목이다. 이러한 의료가 의료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환자중심으로 모든 환자에게 공평하게 적절한 시간 내에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모든 과정에서 환자안전이 보장되어야 지속가능한 의료의 질이 보장되고 나아가 경영성과로 이어 질 수 있다[3].
환자안전 가치의 변화
전통적인 관점에서 의료의 질 향상이란 최적의 치료효과를 달성하여 양질의 의료를 제공함을 의미한다. 의료 질 향상의 가치를 단순히 치료적 측면뿐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완전한 의료로 가치전환이 필요하다. 다양한 오류와 비효율성, 예방 가능한 합병증, 불필요한 치료 등 환자진료 절차에 있어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에 새로운 가치(역량)를 부여하는 것이다. 문제를 인지하고, 근본원인 분석을 하여, 업무분야를 조직화하고, 간결한 의사소통, 실제 수행된 업무를 관할하는 관리자의 적극적 개입과 성공적인 팀워크가 필요하다. 의료표준을 설정하고 표준에 대한 순응도를 평가하며 표준에 맞지 않는 진료 상황을 발견하고 개선하여, 결국 환자의 진료 과정과 결과에 긍정적으로 반영이 될 것이다[4].
환자안전의 역사
국내 환자안전의 역사는 2010년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 의하여 제정된 환자안전기준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제환자안전기준(International Patient Safety Goals)의 환자안전, 직원안전 범주의 5개 기준 충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여 의료기관들의 환자안전 활동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내 적신호사건 보고체계를 구축하거나 오류를 보고하는 체계는 아직 권고사항에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보고로 인하여 불이익을 걱정할 뿐만 아니라 환자안전 보장을 위한 보고체계에 대한 법적인 보호 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국제보건기구는 2005년 'Patient Safety & Quality Improvement Act of 2005'를 통하여 기밀성이 보장된 자발적 보고시스템을 운영하여 환자안전사건 관리를 권고하였다. 이를 위하여 환자안전기관(patient safety organizations)을 지정 운영하고 patient safety work product에 대한 법적 보호와 국가적인 national patient safety databases의 구축을 권고하였다. 미국은 2002년 첫 번째 National Patient Safety Goals를 공표하였고 적신호사건정책을 발표하여 환자안전이 새로운 역량(competencies)임을 강조하였다[5].
국가별 환자안전 발생 빈도는 전체 입원 환자의 약 3.2%에서 16.8%로 다양하게 보고된다[6]. 국내에는 명확한 보고는 없으나 소비자보호원 또는 소송을 통하여 의료분쟁이 접수된 사건을 통하여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684건에서 2010년에는 3,478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7].
1. 환자안전기구와 환자안전 분석자료
환자안전기구는 규제기관의 역할보다 현장전문가와 함께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향상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수많은 환자안전자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울러 환자안전기관에 제공되어 환자안전평가시스템(patient safety evaluation system)에서 만든 자료, 환자안전 활동을 위해 환자안전기관이 만든 자료, 환자안전평가시스템에 공식적으로 있는 자료 등에 대하여 기밀성과 보안 특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환자안전기구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환자안전 관련 프로토콜, 가이드라인 등 제시, 환자와 의료기관 종사자를 위한 환자안전 관련 교육, 환자안전 전문가 교육, 의료기관 경영자를 위한 환자안전 관련 교육프로그램, 환자안전 개선활동 자문 및 컨설팅 지원, 전국적인 환자안전 수준 및 현황 파악, 표준화된 환자안전사건 보고서 제공, 환자안전 관련 모니터링, 분석 후 권고 개선안 개발, 제시 및 보급, 환자안전보고시스템 운영, 환자안전 관련 대국민 홍보 등에 대하여 새로운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안전 보고체계: 오류로부터 배우는 시스템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일례로 1070년대 한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참여하는 의료진은 평균 2명 안팎이었지만, 2000년 들어 약 15명의 의료진이 관여하게 된다. 더 많은 의료진의 참여로 인하여 의료진간 소통문제 발생 가능성은 수십 배 증가한다. 아주 작은 오류라도 보고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근본원인을 찾아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환자안전보고체계의 핵심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대형사고 발생을 매우 성공적으로 감소시킨 항공우주산업에서부터 출발하였다. 미국 NASA의 Aviation Safety Reporting System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항공안전 관련 문제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보고에 대하여 비밀을 보장해주며, 처벌을 하지 않는 보고체계를 통하여 파악한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해결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항공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환자안전 보고체계의 목적은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보고체계에는 보고를 촉진하기 위하여 가시적이며 유용한 반응과 방법이 포함되어야 한다. 보고체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자료분석 및 조사결과를 사용하여 시스템 개선안을 만들고 전파하는 것이다. 덴마크,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캐나다 등에서 다양한 형태의 환자안전 보고체계를 국가 또는 비정부기구가 운영하고 있다. 보고체계의 대전제는 보고의 결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환자, 보호자 및 기관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류를 시스템으로 보지 않고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오류로 인한 위해는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개인에 대한 문제 해결 방식은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착각하게 되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고 미래에 더 많은 제 2의 피해자가 양산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보고자 또는 기관을 문책할 권한이 있는 기관과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보고가 활성화되어 대량의 자료가 쌓이게 되면 임상진료 상황을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가 보고된 사건들을 분석하여 권고안을 마련하고 보고자에게 심각한 위해가 일어날 수 있는 사항에 대하여 자료를 배포해야 한다. 이것이 발생한 오류로부터 배우는 체계(learning from defects: reporting and learning system)이다. 하지만 권고안은 개인성과보다는 체계, 과정 또는 제품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6].
환자안전 보장 활동: 인증문화의 확산과 신뢰문화
의료기관에서 환자안전문화는 최상의 안전을 바탕으로 최상의 질적인 의료를 제공하여 건강관리를 위한 최선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의료계와 관련된 다양한 주체들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한다. 환자안전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관련된 개인이나 의료기관을 문책하거나 처벌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의료기관을 신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예방대책을 찾고 지속적으로 노력할 때 환자안전문화가 성립될 수 있다. 선진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 매달 보안성이 있는 환자안전사건 통계를 발표하는 이유를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의료기관의 자발적인 보고와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위하여 환자안전 관련법을 제정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안전활동을 위하여 수집된 자료에 대하여 법률적 근거로 삼지 않아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일어난 사고가 나면 늘 '누가,' '어느 병원'에만 관심이 있다. 이제부터는 '왜,' '무엇이' 로 관점을 옮겨야 할 때이다. 사람의 실수에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가 중요하고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환자안전에 관한 시각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료기관과 국민을 대상으로 꾸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환자안전은 의료공급자뿐 아니라 의료소비자의 인식재고와 상호소통을 통하여 완성되어 간다. 의료소비자인 국민, 정부, 국회, 시민단체, 노조 등과 의료공급자인 의료기관과의 원활하고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을 위해서는 환자안전과 관련된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할 때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환자안전과 관련된 자료가 수집된 적이 없어 무엇을 어떻게 예방할 것이지 지속적인 노력은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환자안전문제 관련 보고체계를 통한 자료수집, 자료분석을 통한 재발방지 대책수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결과를 환자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의료기관이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또한 그 결과를 공급자뿐 아니라 소비자,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캠페인 등을 시행하는 등의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올바른 환자안전문화가 구축되었다 할 것이다. 이러한 환자안전활동은 제도나 정책적 지원과 의료기관 자체의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8].
1. 제도나 정책적 지원
국가 차원의 법률, 정책 및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법적으로 환자안전 보고체계에 대한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러한 자료를 활용함에 있어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를 전담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한 것이 절실하다. 환자안전 전담 기구에서 환자안전 관련 표준적인 프로토콜 및 매뉴얼 제작, 환자안전 개선 활동에 대한 기술적 지원, 환자안전활동에 대한 국가 차원의 법적 제고 및 보호, 의대나 대학원의 정기 교과과정이나 전공의 수련과정에 환자안전교육, 국가 차원의 기관 간 환자안전활동 및 사고의 경험, 정보 공유, 의료기관 인증제도를 장려하고, 국가적 환자안전사건 전문가의 분석, 환자안전 관련 전문교육기관 지원과 전국적인 환자안전 보고시스템 필요하다.
2. 의료기관 차원의 환자안전 활동
의료기관 자체적으로도 '환자안전과 의료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관심과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환자안전을 위한 체계화된 교육과 책자, 안전도구, 비디오 등 다양한 자료의 개발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러한 일을 수행할 능력을 갖춘 '질 향상 활동 전담자, 인증전담자, 안전전문가' 등의 육성이 필요하다. 보고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환자안전 문화를 정착화 시켜야한다. 이를 위하여 최고책임자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료기관의 책임자가 직접 참여하는 환자안전라운딩, 환자안전 챔피언 및 우수 부서 포상, 전 직원이 함께 하는 환자안전의 날 개최, 안전문화인식도 조사, 환자안전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환자안전지킴이 활동, 각종 세미나 및 워크숍 개최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환자안전의 국제적인 가치: 국제적 표준으로서의 환자안전
환자안전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표준이다. 의료기관 운영에 있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체계이다. 의료기관은 국제적인 의료의 질과 환자안전을 보장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국제적인 인증기준에 의거한 인증제도에 참여가 절실하다.
국내에서 의료관광이 활성화 될수록 외국인 환자에 대한 환자안전사고가 점차 늘어나고 분쟁이 증가 할 것이다. 외국인 환자에 대한 분쟁은 한국 의료의 질적 저하 문제로 비화 될 수 있다. 환자안전의 가치는 국내에서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공동의 가치임을 인지하고 국제 기준에 맞는 환자안전 문화 조성에 제도적 및 법적인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환자안전과 리더십
의료기관에서 환자안전이 경영성과로 이어지기 위하여 필수적인 요건은 강한 리더십이다. 환자안전은 비용만 많이 들지 병원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성공하는 리더는 일차적으로 환자안전을 위하여 안전보고체계를 수립하여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한다. 안전이 곧 최상의 의료 질로 이어질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 비용 효용성과 의료재원의 효율성을 증대시켜야 할 뿐만아니라 의료기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환자안전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이자 필수 조건이다.
결론
국내 의료기관은 환자안전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부분 급성기 병원의 역량은 진료에 집중되어 있다. 현실은 진료 외에 다른 곳에 투여할 만한 역량도 여건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최고경영자는 환자안전이 진료에 있어 의료의 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경영성과로 이어 진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사회 분위기가 성장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며 달려 왔다. 이제는 성장을 하는 가운데 무시했던 안전을 돌아 볼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병원들도 얼마 전까지 그다지 안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은 안전한가? 무엇이 환자안전을 위협하는가? 어떻게 환자안전을 보장하여야 하나? 환자안전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등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