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과 번영은 남북한 국민의 범위를 넘어서는 중요한 인류사적 과제이자 염원이다. 최근 북한 핵실험 등과 관련하여 보이고 있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관계의 확대는 평화적 통일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 정권의 등장,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열강들 간 복잡해진 국제관계는 한편으로는 파국적 상황의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통일의 가능성도 커지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통일은 국내외 정치적 변화로 인해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갑작스럽게 올 수도 있으며, 비록 통일과정이 비교적 평화적으로 이루어 진다해도 분단 후 60년간 극히 다른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 속에서 지내온 남북한의 통합과정은 불가피하게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 문제, 동독지역의 시장경제화의 문제,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서독의 법과 제도를 동독에 이식하고 동독의 잔재를 처리하는 문제,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동서독 주민 간의 심리적 갈등이 심각한 정치, 경제, 사회문제들을 야기하였다. 특별히 사회적 차원에서 분단 상태에서 축적된 다른 경험과 생활태도, 사고방식, 세계관이 경제적 불평등과 결합하여 상호간 이질화를 증폭시켰고 구체적으로 지역갈등, 권위주의의 강화로 인한 문제, 세대 간 갈등 및 청소년 비행의 증가, 계층 갈등과 같이 기존 문제가 연장 또는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가치관과 규범의 혼란, 동서독 주민 간의 적대감, 빈부격차의 확대, 정치적 갈등, 여성문제 등 통일이 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1].
통일과 같은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구소련의 붕괴 후의 양상이 보여주듯 감염병의 증가, 환경오염 등 다양한 보건학적 문제들을 야기했으며, 궁극적으로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였다[2].
사회안전망의 신속한 구축은 통일 후 혼란을 최소화하는 핵심적인 정책이다. 동구권이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붕괴 직후 사회 각 분야에서 벌어진 일들과 국제사회의 경험을 고찰한 Cha 등[3]의 연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실증적 근거를 제시한다. 특히 사회안전망 구축에서 보건의료부문의 의료안전망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급격한 체제전환을 겪는 국가의 경우, 주로 1) 병원과 진료소의 재가동, 2)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재교육, 3) 기존 보건자산의 상세조사, 4)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교육훈련 등에 주력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보건의료부문은 에너지와 안전보장 이상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특별히 주민들의 이동에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통일시 예상되는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견고한 의료안전망의 구축이 핵심적인 정책과제이다.
통일 후 북한의 의료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통일의 혼란과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매우 방대한 내용을 포함하므로 여기서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과정을 전제로 북한지역을 중심으로 한 의료안전망 구축 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 수립원칙, 구축방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의료안전망이란?
사회안전망은 실업, 질병, 노령, 빈곤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사회안전망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의료안전망은 '사회안전망의 하나로 특별히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1차 의료안전망은 건강보험, 2차 의료안전망은 의료급여제도 및 일부 사회서비스, 3차 의료안전망은 의료비지원제도와 긴급지원사업 등과 같은 제도로 구분할 수 있다(Table 1) [4]. 이러한 구분은 일차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문제를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해결하고, 빈곤으로 인해 건강보험의 기여금을 부담할 수 없는 이들은 사회부조제도인 의료부조(현재 남한의 '의료급여'제도)를 통해 해결하고, 이 두 가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례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가진 긴급지원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통일 시 의료안전망 구축방안
통일 시 북한지역의 의료안전망 구축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가정이 필요한데 바로 통일의 방식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이다. 통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따라 의료안전망의 구축방식도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다. 통일의 방식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많이 있지만 첫째,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둘째, 통일과정에서 남한, 북한, 국제사회(미국, 중국 등)가 얼마만큼의 권한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셋째, 통일 시 남북한의 사회, 경제, 문화적 격차와 차이가 얼마나 될 것인지, 넷째, 남, 북한과 국제사회가 통일에 대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이들 주요 요인들이 어떨지에 따라, 더 나아가 이들 요인들 간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수많은 통일 시나리오가 만들어 질 수 있는데, 이들 모든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의료안전망 구축을 설계하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중 비교적 실현가능성이 높고 바람직한 통일방식으로 여겨지는 전제 상황을 나열해 보고, 이러한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북한지역 의료안전망 구축방안을 살펴보았다.
이후 의료안전망 구축안은 전쟁과 같은 남북한 극단적인 갈등 속에서 이루어지는 급격한 통일방식과 30년 이상의 장기간의 평화적 공존시기를 거치는 경우와 같은 양극단 상황을 배제하고 1) 5-10년 내외 기간 동안, 2) 남북한이 극단적인 갈등 없이 상당한 수준의 평화적 분위기 속에서 통일의 과정이 진행되고, 3) 이러한 과정에서 남한이 상당한 주도권을 가지지만 일정 정도 북한의 협력과 국제사회의 상당한 지원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통일 직후 남한과 북한지역 주민의 상호이동은 최소화하는 것으로 가정하였다. 주민이동의 규모와 속도는 의료안전망 구축에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반대로 빠른 시간 내에 안정적인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혼란스러운 대규모이동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시기적으로는 3단계로 단계적으로 의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하고 궁극적으로 현재 남한의 의료안전망 구조라 할 수 있는 의료보험, 의료부조, 긴급의료서비스라는 3단계 의료안전망 구축 후 기존의 남한 체계와 통합하는 것으로 설계하였다. 하지만 최종적인 통합이 이루어지는 시기의 의료안전망은 현재 남한의 의료안전망이 가지고 있는 급여수준의 제한과 같은 한계를 발전적으로 극복하는 것으로 상정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각 단계 마다 적용범위, 급여범위,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재정 및 관리운영체계라는 하부구조 모형을 제시하였다.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운 통일과정이 될 경우, 대규모 난민들의 발생과 이주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체계가 필요할 것이나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1단계: 초기 긴급대처
이 시기는 통일직후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신속히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의료안전망을 구축하여 운영하는 시기이다. 대상은 북한지역 전 주민이며, 이들에게 제공될 기본의료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일차보건의료서비스로 알려져 있는 주요 보건문제와 그 예방 및 관리방법에 대한 교육, 식량공급의 촉진과 적절한 영양의 증진, 안전한 식수의 공급과 기본적 위생, 가족계획을 포함한 모자보건사업, 주요 전염병에 대한 예방접종, 지역 토착병의 예방과 관리, 흔히 볼 수 있는 질병과 외상의 적절한 치료, 필수 의약품의 공급, 심신장애자의 사회 의학적 재활서비스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중증, 응급환자에 대한 서비스가 우선 필요할 것이다. 또한 산전, 산후 진찰과 법정예방접종의 무료실시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1단계 의료안전망의 구축이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할지라도, 북한주민 중 취약계층으로 분류하고 있는 어린이, 노인, 고아, 결핵환자, 장애인 등을 포함한 약 610만 명에 대한 추가적 지원정책이 필요할 것이다(Table 2) [5].
이 단계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의료안전망 제공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하면 마련할 수 있는가이다. 통일 초기 북한 주민의 기여금을 재원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남한의 재정능력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신속하고 견고한 의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의료안전망 구축 및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최소화하고 북한주민들의 동요를 줄이 위해서는 기존 북한의 의료안전망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따라서 북한 의료안전망 인프라의 양과 질, 가동수준과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통일정부의 운영역량이 중요할 것이다. 1990년 초부터 시작된 이른바 '고난의 행군'으로 상징되는 경제침체로 인해 사실상 기존 북한이 천명해 오고 있던 '무상치료제', '예방의학중심', '호담당의사제'는 붕괴수준에 다다르고, 환자들은 자기가 필요한 의약품과 치료재료를 장마당에서 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재원의 부족, 남한 전문인력의 북한 이동과 단기간 내 병원설립의 어려움, 더욱이 50년 이상 지속되어왔던 국영의료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북한의 의료서비스의 관행을 통일 직후 남한 식으로 일거에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존 북한의 서비스전달체계, 관리체계를 최대한 복구하고 보건의료인력 등 의료안전망 관련 전문인력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재교육을 통해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이 과정에서는 신속하게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공급시설, 장비에 대한 복구와 보건인력에 대한 교육, 훈련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2007년 WHO보고서에서는 리 단위 병원 및 종합 진료소가 7,237개, 전체 병상 수 209,276개, 병상수당 인구 114명, 인구 만 명당 병상 수 187.6개로 보고하고 있다[6]. 2009년 WHO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은 133개의 병원이 중앙 및 도에 있으며, 군단위에 601개의 2차 의료기관이 있으며, 6,263개의 진료소 및 종합 진료소가 리 단위로 설치되어 있다[7]. 1단계에서는 이들 의료인력과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비와 시설이 낙후되어 일차보건의료 관련 시설과 응급의료시설을 중심으로 우선 복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단계: 의료안전망 구축
2단계 의료안전망 구축의 목표는 남한과 유사한 의료안전망 체계의 구조적 틀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에 의해 의료서비스가 보장되는 인구는 초기에는 매우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머지는 의료부조에 의해 서비스가 제공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초기 의료보험의 대상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일정규모 이상의 공무원, 공공, 민간부문 기업노동자가 될 것이다. 남한의 경우,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와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경험을 북한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제공은 기존 국영의료체계의 형태로 제공되는 것이 상당기간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점차 민간부문 의료공급자들이 생겨나고 이를 위한 국가의 지원도 이루어지겠지만 그 속도는 북한지역 구매력의 성장 속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의료보장의 급여범위는 일차보건의료와 중증, 응급서비스를 기본으로 하겠고 점차 이 이외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급여수준을 높여나가게 될 것이지만 이는 재정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높여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급여수준 결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적어도 남한과 동일한 수준의 의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면서도 비용이 급속히 증가하지 않도록 해야 하므로 의료서비스 공급분야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지원이 상당기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북한 보건의료부문의 전문인력 교육체계를 개편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11개의 의과대학이 있으며 여기에서 의사, 약사 등을 양성하고 있다. 또한 각 도당 1개 이상 설치되어 있는 의학전문학교에서는 중등보건일군 즉, 준의사, 준의, 준약제사, 조제사, 보철사, 안마사, 간호원, 조산원 등을 양성하고 있다. 상이한 교육체계, 내용, 전문인력 분류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여 남북한 통합적 보건의료인력을 양성하는 작업이 이 시기에 진행하여야 할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3단계: 남북한 의료안전망 통합
3단계는 사실상 남북한의 의료안전망이 구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통합되는 시기를 말한다. 이 때 의료안전망은 현재 남한 의료안전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즉, 낮은 보장수준, 제도 간 연계부족, 의료사각지대의 존재 등과 같은 문제점들을 발전적으로 극복한 형태의 의료안전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8].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안전망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조건은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이 가져야 할 조건과 마찬가지로, 1) 보건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주민의 건강수준을 높이고, 2) 적절하고 질 높은 진료를 제공하며, 3) 비용절감을 통해 진료의 지속가능성과 시행가능성을 높이는 제도이어야 한다[9].
의료안전망의 대부분의 역할을 사회보험인 의료보험이 담당하고 극빈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부조는 현재 남한의 3%보다 적도록 빈곤층의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의료보험이나 의료부조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하며, 이 두 가지 제도가 보장하지 못하는 긴급한 보건의료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긴급의료서비스는 전자의 역할이 충실화됨에 따라 그 역할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0년 한국 국민의료비 중 가계부문 지출비율은 3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국가들의 평균수준인 20.1%보다 약 1.6배 높고,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구비율도 2.96%에 달한다[10]. 적어도 통일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시점에서는 통일 한국 의료안전망의 보장수준이 OECD 국가평균 이상을 상회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국영체계로 운영되던 북한의 의료전달체계와 민간위주로 운영되던 남한 체계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공공-민간의 파트너십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Table 3).
정책과제: 효과적인 북한의료안전망 구축을 위한 과제를 중심으로
통일 후 빠른 시간 안에 효과적인 사회안전망의 구축 차원에서 의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사회 혼란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수준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첫째, 무엇보다 다양한 통일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의료안전망의 구축을 위해 필요한 실효적 원칙들을 수립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1) 현재 북한지역 의료안전망 제도를 그대로 사용할 것인지, 전면적으로 남한식으로 교체할 것인지, 2) 기존 북한 의료안전망의 인프라는 인적 자원을 포함하여 얼마만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것인지, 3) 통일 시 북한 의료안전망의 설계, 관리, 모니터링, 조정 등의 행정기능은 누가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4) 남한이나 국제사회의 자원은 얼마나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통일시 사회보장정책의 통합원칙과 관련하여 Chang [11]은 남북한 사회보장정책 통합이 이념의 포괄성, 제도의 완비성, 급여의 적절성, 보장의 안정성 등의 요소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의료보장제도와 관련하여 Bae [12]는 정치적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통일 후 남한 사회보장의 문제점들도 함께 극복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의료접근성의 평등화, 의료급여의 포괄성과 비용부담의 균등성, 북한 지역의 지원을 통한 서비스의 동일 수준 확보, 의료보장관련 참여제도를 모형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기존의 논의에 비추어 의료안전망의 통합에서도 1) 기존 관련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2) 전 주민에 대한 일차보건의료 및 일차의료와 같은 기본서비스와 응급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제공하며, 3) 특히 취약한 계층에 대한 추가적 조치를 포함하고, 4) 이러한 과정은 남북한, 국제사회의 긴밀한 협력 하에 진행하도록 한다는 것을 포함하는 원칙하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의료안전망 구축과정은 식량, 에너지, 복지 등 다른 사회안전망 구축작업, 더 나아가 인구, 노동, 경제, 문화정책 등과 유기적인 연계를 가지며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통일 이전에 남북한 의료안전망 관련 분야의 교류확대를 통해 상호이해를 높이고, 남북한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통일 후 의료안전망 구축비용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구축안을 마련하기 위해 통일 이전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별히 최근 경색국면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가 가지는 비정치적, 인도주의적 특성은 남북한교류를 재개하는데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인도주의적 보건의료부문 지원과 전문가교류를 활성화하면서, 전문용어를 비롯한 상호 제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해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건의료 또는 사회(의료)안전망과 관련한 '남북교류협력기술지원단(가칭)'을 구성하여 지속적인 정보수립과 정책개발을 진행하고 추후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경우에는 이를 '남북공동협력위원회'로 격상시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남북교류 과정에서 국제규범과 국제개발 경험의 활용, 국제적 네트워크의 구축 등이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의료안전망 관련 협정의 체결이다. 동서독은 통일이 되기 전인 1974년 '보건협정'을 먼저 체결하였다. 주요 내용은 상대편 지역 방문 중 발병 시 의료지원, 비상업적인 의약품 교환, 선물 소포 가능한 의약품 발송 등이었다. 이러한 전례를 참조하여 남북한 간에도 통일 이전에 의료안전망과 관련한 협정을 우선적으로 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Cho [13]는 남북 간 보건의료정보 교환, 남북 간 공동방역 협조체계 구축, 남북 간 상호 왕래자에 대한 의료편의제공, 보건의료 관련 국제기구에서의 공동보조 및 협력에 관한 내용 등을 포함하는 '남북보건의료협정(가칭)'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남북한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다른 의료안전망 관련 법령들을 상호호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개정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북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와 의료안전망을 포함한 북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모니터링과 대응 매뉴얼의 개발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은 2002년 7.1조치로 부분적 시장경제를 수용한 이래 시장적 요소들이 확대되고 있고, 개성공단과 경제특구의 지정, 금강산관광의 시행 등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합영법', '외국인투자기업 노동규정', '금강산관광지구 노동규정',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등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복지제도관련 법령과 규정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북한 내 정책변화를 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통일 후 의료안전망 구축 매뉴얼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의료안전망의 전달체계인 보건의료체계와 관련하여 Moon [14]은 주치의 등록제 확립, 공공의료체계의 강화와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 제고 그리고 민영화, 양한방 의료전달체계의 통일성 모색, 북한의료체계의 효율성 모색을 제안하였다.
다섯째, 의료안전망의 구축에 있어서 재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인 전문 인력의 확보이다. 이는 단시간 안에 양성되기 어렵다는 점과 기존 의료안전망 관련 전문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남한과 북한 의료안전망 관련 전문 인력의 상호인정 및 재교육, 훈련과정 등을 사전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전문용어의 통일과 관련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전문 인력 간의 상호교류 등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남북한 보건의료 인력의 자격인정문제와 관련하여 이와 관련하여 Park [15]은 1) 북한의 정규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급 이상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자로 통일 한국 의료법이나 보건관리에 대한 교육을 마친 후 소정의 시험에 통과한 경우에 국한하여 의사자격 허용하고, 2) 나머지 의사는 한지의사 형태로 현지의 직위를 인정하고 국가시험 지원자격 부여하며, 3) 북한 정규의학대학을 졸업하고 중앙급 이상의 병원에서 의사3급 이상인자, 각 의학대학의 상급교원 이상인자, 그리고 준박사 이상의 학위를 소유한 자에 대해 전문의 자격을 인정하자고 제안하였다. 현재 북한이탈 의사인 경우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시행하는 절차에 따라 면허시험을 통과한 경우에 의사 자격을 허용하여 2011년말까지 33명이 의사면허시험을 치루고 그중 23명이 통과하여 면허를 취득하였다[16]. 아울러 통일 시 빠른 시간 안에 의료안전망 구축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국제적 네트워크 능력과 남북한 의료안전망 관련 지식과 행정능력을 보유한 관련 전문 인력의 지속적 육성도 필요하다.
결 론
통일시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사회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며, 이 중에서도 의료안전망의 구축은 핵심적인 요소이다. 더욱이 의료부문의 비정치적이고 인도주의적 성격은 남북경색국면에서 평화로운 교류를 시작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통일과정에서 실효적 의료안전망을 조기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의료안전망 구축 시 필요한 중요한 결정원칙들을 마련하고 이에 기초한 구체적인 구축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으며, 남북한 격차해소, 교류활성화, 지속적인 연구와 모니터링, 관련 전문 인력의 확보 등의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치·사회·경제·문화정책 및 다른 사회안전망 구축과 긴밀한 협력 하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공적으로 구축한 의료안전망은 한반도 통일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Peer Reviewers' Commentary
이 논문은 남북한 통일을 전제로 통일 직후부터 북한 지역 의료안정망 구축 방안을 제 1 단계 초기 긴급 대처, 제 2단계 의료안전망 구축, 제 3단계 남북한 의료안전망 통합으로 나누어 제안하였다. 저자는 통일 이전에 남북한 의료안전망 관련 분야의 교류 확대와 협력사업을 통해 상호이해를 높이고 통일에 대비한 공동 활동을 벌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양한 통일 시나리오에 따라 통일 이후 북한 내 의료안전망 구축 내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논문에서 기술하고 있는 단계별 모형은 향후 통일을 대비한 정책수립에 충분히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료 안전망 구축 모형을 구현하는 데는 남한의 재정능력과 국제사회의 지원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에 따라 얼마나 재원이 필요하고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추후 정밀한 추산이 필요하다.
[정리: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