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체제통합국이란 일정기간 서로 다른 국가로 존재하다가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하나의 국가 및 체제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1]. 실제로는 독일, 베트남, 예멘과 같이 분단되었던 국가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사한 개념으로는 체제전환국이 있는데 이 개념은 체제를 이루었던 이념적 가치의 패러다임 변화(흔히는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를 의미하며 실제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과거 사회주의국가였다가 지금은 자본주의체제로 변환되어 있는 동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체제통합국 사례
1. 베트남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갈라져 있던 베트남이란 나라가 통일한 시점은 1975년이다. 이미 약 40년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월남 파병 등 적극적으로 개입했었던 베트남 전쟁의 기억 때문에 장년층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베트남 통일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북베트남이 중심이 된 사회주의 방식의 통일을 이루었던 베트남에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관계는 오늘날 한반도의 남북한 관계와 유사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사례를 통해 남북한 의료통합에 적용할 교훈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베트남 정부가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체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
비록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한다고 해도 주민들을 위한 사회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효율적이면서도 경험이 쌓여 있는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베트남 당국이 인정한 결과로 해석된다. 따라서 베트남의 건강보험 도입과 추진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결과는 한반도 통일 이후 북한 지역 보건의료체계 구축방향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2. 예멘
예멘은 오랜 기간 동안 지배체제를 이루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제압되는 변화를 겪은 나라이다[3]. 그러다가 1962년에 이르러 군사혁명을 통해 북예멘에 자본주의 체제인 예멘아랍공화국이 세워졌으며 영국령으로 남아 있던 남예멘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67년에 사회주의 체제인 예멘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수립되어 분단되었다. 1970년대 당시, 북예멘과 남예멘 사이에는 끊임없이 국경분쟁이 일어났고 관계는 악화되었었다. 1990년 5월에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과 남예멘의 알아타스 대통령은 남북예멘의 통일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공식국호를 예멘공화국으로 결정하면서 남북예멘이 각각 50:50으로 권력을 배분한다는 원칙에 따라 행정부와 의회·군부의 통합을 추진했다. 하지만 통일국가 선포 이후에도 정치적인 불안정이 계속되면서 최근에는 아랍을 휩쓸었던 '자스민혁명'의 영향으로 대통령이었던 살레가 2012년 1월에 미국으로 망명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듯 통일 이후에도 국가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었던 예멘의 사례는 통일이라는 대의 명제가 정치적 안정을 동반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국민의 삶은 더 열악해질 수 있다는 사례에 해당된다. 실제로도 예멘의 2010년 보건지표를 보면 기대수명이 65세에 불과하고 1,000명당 5세 이하 어린이 사망률이 77명에 이를 정도로 낙후된 상태이다[4].
3. 독일
제2차 세계대전이후 패전국의 지위로 전락한 독일은 영국, 프랑스, 미국, 구소련과 같은 그 당시 강대국에 의해 서독과 동독(동쪽 5개 주)으로 분단되게 된다. 그 이후 1990년 통일에 이르기까지 통일 과정의 주요 경과는 다음과 같다[567].
첫째, 아데나워수상을 중심으로 힘의 우위 정책이 지배하던 시기인 할슈타인 원칙의 시기(1949-1963), 둘째, 빌리 브란트 수상을 중심으로 화해 교류 정책이 중심이 되던 시기인 동방정책의 시기(1969년 이후), 셋째, 동서독 정상회담(1970년), 넷째, 동서독 기본조약(1972년), 다섯째, 동서독 보건협정(1974년), 여섯째, 독일 통일(1990년)로 말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시기 구분에서 보듯이 동서독은 통일되기 전부터 보건협정을 먼저 체결하였고 이는 통일과정에서 어느 분야보다 보건의료 분야의 교류가 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국민총생산은 5배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으며, 인구규모 면에서도 서독과 동독은 약 3.7배의 차이를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와 북한은 명목 국민총소득에 있어 28배가량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인구면에서도 우리나라는 북한에 비해 2배 정도이다[89]. 한반도의 통일과정이 더욱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독일의 사례는 통일 전 보건협정과 같은 인도적인 차원의 교류·협력이 통일 과정 및 통일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 이후의 여러 보건지표들은 1990년 통일 이후 거의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구동독과 구서독 지역주민들 간 격차가 해소되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10].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연령표준화 심장질환의 사망 건수는 1990년대 초 통일 직후에는 구동독지역이 구서독지역에 비해 성별로 큰 격차를 보이다가 2007년에 들어서 그 격차가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Figure 1) [10].
인구 10만 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률에서 통일 직후에는 구동독지역 주민들(특히 남자)의 사망확률이 구서독지역 주민들보다 매우 높게 유지되다가 최근에는 그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Figure 3) [10].
Figures 1,2,3에서 보듯이 대표적인 만성질환인 심장질환이나 자살, 손상과 같은 건강수준 지표들이 통일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동독과 서독지역 주민 간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통일 과정뿐 아니라 통일 이후를 고려한 체계적인 보건의료지원체계 구축 방안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체제통합국가인 베트남, 예멘,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통일 그 자체가 많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사회주의국가로 1975년 체제통합이 이뤄진 후 한동안 혼란을 겪다가 1990년대 이후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되며 경제발전이 이뤄지면서 최근에는 보건의료개혁 과제를 다뤄 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베트남 정부 관계자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을 방문하며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제도를 벤치마킹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2]. 북한, 쿠바 등의 국가중심적 계획 시스템에 의한 보건의료체계보다는 사회보험의 원리를 받아 들여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제도를 학습하는 모습은 향후 통일 이후 북한지역의 보건의료제도 구축 방향에 대한 커다란 시사점을 도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멘의 경우 1990년 통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혼란 등으로 인해 보건의료시스템은 물론이고 국가 전체의 운영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그 결과 보건 관련 지표는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4]. 감성적인 통일이 아닌 체계적 준비와 전략에 입각한 통일국가의 건설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에도 동서독 정부 당국 간 보건협정 등 보건의료분야에서 상호 인도적 교류협력이 가능한 상태가 이미 조성되었고 1990년 통일 이후 서독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로 급속히 재편되었다. 통일 직후에는 그 이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사회 혼란이 있었으며 보건의료체계도 예상했던 것 보다 너무 빠르게 동독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서독지역 중심의 체계가 구축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었다[11]. 하지만 현재의 남북한 격차보다는 적은 약 1/5 수준의 경제적 격차, 상대적으로 낙후된 구동독지역 인구수의 적음 등에 힘입어 구동독지역과 구서독지역간의 격차는 점차 줄어들면서 오늘날의 통일독일이라는 세계 최강대국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자살률, 심장질환, 상해율 등의 보건지표에서 보듯이 통일 직후 구동독지역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유지되었던 상황이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상당부분 격차가 해소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결 론
이러한 체제통합국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한반도에서 통일이라는 과제와 그 중에서도 보건의료부문에 대한 준비는 가혹할 정도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러할 때 일수록 통일 이전 독일의 경험처럼 남북 간 인도적 지원 차원의 보건의료부문 교류 협력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며 단지 통일 전까지의 전략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 상당기간을 내다보며 구체적인 설계를 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Peer Reviewers' Commentary
본 논문은 체제 통합국들인 베트남, 예멘, 독일 3개국의 체제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보건의료체계 변화 동향과 보건지표의 변화에 관한 고찰을 토대로 하여 남북한 통일 후 보건의료체계 통합과정에 대한 시사점을 기술한 논문이다. 향후 남북한 간 관계 개선과 통일 과정에 대한 전망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당위론적 측면에서도 남북한 보건의료체계 통합을 위한 외국 사례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생활환경 개선과 건강수준 향상을 통한 통일 준비 노력과 활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인도적 차원의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 협력과 단순한 협력을 넘어서 남북한 보건의료체계의 통합에 관한 시사점을 모색하고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이론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논문이라고 판단된다.
[정리: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