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해독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중독의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임상적 의미는 잘 알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다른 질병의 발생에 비해 빈도가 낮아 해독제를 미리 비축하여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은 매우 부족하다. 그러나 이런 급성중독은 개인의 의도적이거나 사고에 의한 발생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고, 화학테러나 화학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일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하여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2013년 8월에 시리아에서 발생한 sarin 가스 공격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 화학전 대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1].
1980년대 중반부터 급성중독의 경우 필요한 해독제의 확보가 어렵다는 보고들이 나오기 시작하자[23], 각 나라들은 해독제의 활용 현황을 파악하여 불충분한 비축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456]. 그리고 비축해야 할 해독제 품목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급성중독 환자 관리를 체계적으로 운영해온 미국에서 2000년도에 처음으로 이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철저한 관련문헌의 조사를 근거로 논의한 후 16개의 응급 해독제 비축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였고[7], 2009년도에는 좀 더 보완된 24개 해독제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였다[8]. 이 지침에서는 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한 후 즉각적인 투여가 필요한 해독제로 atropine, calcium chloride, calcium gluconate, cyanide 해독키트(혹은 hydroxocobalamin), digoxin immune Fab, flumazenil, glucagon, methylene blue, naloxone, physostigmine, pyridoxine, sodium bicarbonate 등 12가지를 지정하였다. 그리고 내원 1시간 이내에 투여되어야 할 약품으로는 acetylcysteine, antivenin (Crotalidae, 혹은 Crotalidae polyvalent immune Fab), antivenin (Micrurus fulvius ), deferoxamine, dimercaprol, IV ethanol(혹은 fomepizole), octreotide, potassium iodide, pralidoxime 등 9개 품목이 포함되었다. 여기에 1시간 이내에 투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보유하여야 할 해독제로 antivenin (Latrodectus mactans ), calcium disodium EDTA, pentetate calcium trisodium 등 3품목을 추가하였다.
이번 특집에서는 이들 중에서 국내에서 비교적 빈번히 발생하거나 임상적 중요성이 제기되는 유기인제 중독의 해독제인 atropine과 pralidoxime, acetaminophen 중독의 N -acetylcysteine, 시안화물 중독의 해독제, 메트헤모글로빈혈증의 methylene blue, 뱀교상에 대한 항뱀독소 등을 대표적으로 소개하면서, 국내 응급 해독제 비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현실적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해독제들 중 비교적 사용빈도가 높은 일부 품목은 대부분의 병원에서 구비하고 있으나, 많은 부분은 그 빈도가 높지 않아 임상적으로 중요하다 하더라도 대형 대학병원에서조차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구비하는 부담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고가의 해독제인 경우는 유통기한 내에 소비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더욱 더 비축에 소극적이 된다. 더구나 임상독성학 분야의 전문가가 절대로 부족한 국내 현실에서 각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해독제 구입을 설득하는 상황도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제약회사에서 특정 해독제의 생산이나 수입이 중단되는 경우에는 각 병원에서 확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전국의 많은 병원이 사용해오던 메트헤모글로빈혈증 해독제인 methylene blue가 얼마 전에 한동안 공급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던 경우가 좋은 예이다[9].
국내에는 희귀의약품센터가 시장성, 채산성을 이유로 생산이나 수입이 되지 않는 희귀의약품을 직접 수입 또는 관련 업소로 하여금 대행 수입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해독제로는 시안화물 해독키트, dimercaprol, succimer, digoxin immune Fab, methylene blue 등의 매우 한정된 품목만이 공급 목록에 들어가 있다[10]. 그리고 응급 제공체계가 아니므로 실제로 희귀의약품센터에 연락하여 비용 수납의 절차를 거친 후 해당병원까지 배송되는 데에는 수도권이라 하더라도 최소 몇 시간은 소요되므로 이런 방법의 공급으로는 이 분야에서의 현실성은 없다.
국내에서 비교적 사용 빈도가 높은 atropine과 pralidoxime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생산되고 그리 비싸지 않아 대부분의 병원에서 보유하고는 있으나, 화학테러와 같은 대량 환자발생 시 대처를 위한 양으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11]. 한편, 살무사 항독소 같이 국내 생산이 된다 하더라도 고가인 해독제도 있다[12]. 또한 시안화물 중독에 필요한 해독키트나 hydroxocobalamin, digoxin 중독 치료제인 digoxin immune Fab, methanol이나 ethylene glycol 중독에 쓰이는 fomepizole, isoniazid 중독에 쓰이는 IV pyridoxine 등은 고가이며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권고되는 응급 해독제들을 국내 병원에서 비축하게 하기위해서는 희귀의약품센터나 관련 정부부처가 먼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해독제에 대한 공급체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 병원의 해독제 보유현황과 유통기한을 파악하여 관리함으로 소비 정도에 따른 병원간의 해독제 교환을 통하여 유통기한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응급 해독제 중 환자의 내원 시 즉각 투여되어야 하는 약품은 각 병원에 적어도 최소량은 비축되게 하여야 하며, 1시간 이내에 투여가 권장되는 해독제는 가까운 이웃병원에서 배송받는 체계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전국 망의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같은 곳이 거점병원이 되면서 1시간 이내에 배송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거리의 병원들이 그룹을 이루어 운영한다면 가능하다. 거점병원은 그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수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독제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여 보유하고, 각 인근 병원의 해독제 보유 및 사용현황을 관리하며, 요청 시 신속한 배송이 가능하도록 운영한다. 그리고 관련 정부부처에서는 이러한 전국의 거점병원들에 대해 해독제 관리를 감독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본다. 이러한 응급 해독제 관리체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한데, 만일 해독제를 무상공급하자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유상으로 운영하되 각 병원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유통기한 내 소비하지 못한 손실 부분만 보전해준다면 정부 입장에서도 예산의 큰 부담 없이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급성중독과 해독제가 관련된 임상독성학 분야의 시작이 서구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전문가도 많지 않고 해독제 비축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급성중독과 관련된 환자는 다른 나라와 큰 차이 없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이렇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국내 환자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정부와 의료계는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하여 속히 응급해독제의 공급과 관리체계를 수립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