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List > J Korean Med Assoc > v.55(8) > 1042609

김 and Kim: 의료공급체계의 파괴적 혁신을 위한 제언

Abstract

In March 2011, after a series of discussions, the Korean government released a basic plan for functional reestablishment of medical institutions. However, the policy has ended up reestablishing the functions and roles of medical institutions without considering the advance of medical technologies and the emergence of new forms of providers. The advances of the medical knowledge and technologies enable the provision of lower-cost, higher-quality, more accessible healthcare services. Therefore, the reestablishment of medical institutions' functions needs to be done on the basis of medical technology advancement. In this article, policy suggestions and managerial implications for healthcare service providers are discussed based on disruptive innovation. It is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discussions on the healthcare delivery system of Korea.

서 론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에 대한 논의 끝에 보건복지부는 2011년 3월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의료기관간 경쟁의 심화, 부적절하고 비효율적인 진료,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환자들의 의료쇼핑 등의 현상으로 나타난 의료전달체계의 붕괴와 국민의료비의 증가, 만성병 관리체계의 부재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을 위해 강제와 규제 방식이 아닌 자율과 선택을 보장하면서 필요한 제도를 마련하고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서 환자와 공급자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하여, 선택의원제, 대형병원 쏠림 현상 완화대책, 면허신고제 등 의료자원 관리체계 선진화, 전문병원제도 도입, 상급종합병원의 연구기능 특화 등을 내용으로 개선안을 발표하였다[1]. 이번 대책에는 그동안의 논의에서 의료공급체계의 개선을 위한 정책 대안으로 제시되었던 병상 신증설 규제, 수가제도의 변화, 주치의 제도의 도입, 의사인력 양성체제의 변화, 의료기관에 대한 소비자 정보 제공 제도화, 의원급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 등[234]은 포함되지 않았다.
의료공급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많은 논의 끝에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방안의 모습이 구체화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방안이 도출되기까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의료공급형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판단된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나노, 바이오, IT 등과의 융합은 소비자의 의료이용 행태는 물론 의료공급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것'이고, 'IT 기술의 발달로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 및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지는 U-헬스 구현이 가능할 것[3]'이라고 한 연구자가 전망한 것을 제외하면 의료기술에 대한 고려를 발견하기 어렵다.
의료가 발전해온 역사를 보면 의료기술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서 의료서비스 공급조직과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기능과 역할은 계속 변화해 왔다. 의사를 중심으로 제공되던 의료서비스가 병원을 중심으로 제공되는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의료기술의 발전, 특히 수술기법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세기 들어서 세균이론이 등장하고 소독기술의 발전, 마취기술의 발전 등으로 시작된 의과학의 급격한 발전은 가난하고 돌볼 사람 없는 사람들이 인생을 마감하러 가는 곳에 지나지 않던 병원을 진단과 치료의 중추적인 의료기관으로 변모시켰다[5]. 그 이후 병원은 의료기술의 발전과 의료서비스 제공의 핵심 기관으로 거듭났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의료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높아지자 의료인의 전문화 경향이 심화되었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전문과목도 등장하게 되었다. 진단과 치료를 위하여 점점 복잡하고 고도의 성능을 구비한 장비가 개발되면서 의료제공의 중심이 의사 개인에서 병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반면 최근에 와서 몇몇 의료장비의 소형화가 나타나면서 병원에서만 이용되던 투석기, 인공호흡기 등을 개인의원이나 가정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의료기관의 원형처럼 자리잡고 있는 의원과 병원이 처음부터 그렇게 존재하고 기능했던 것은 아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의료기술의 등장과 함께 질병의 진단과 치료방법, 적절한 의료서비스 공급기관의 모습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최근 의원, 병원으로 구분하는 형태와는 다른 모습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의료공급 조직들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 건강검진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조직도 있고, 영상판독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도 있으며, 미국의 경우에는 대형 쇼핑몰에서 간호사(nurse practitioner, 극히 제한된 영역에 대해서 의사의 지도 없이 독자적으로 진료행위를 수행하는 간호사)가 간단한 진료를 수행하는 형태도 나타났다. 처방이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질병과 치료에 대한 상담은 온라인 상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로봇수술의 등장은 원격조언(telementoring)뿐 아니라 원격참석수술(telepresence surgery)까지 가능하게 하여 공간을 초월한 의료공급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6].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형태는 역사적 발전 속에서 기술과 사회적 제도가 연결되어 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료기술이 더 발전하고 그에 토대를 둔 새로운 의료공급 형태를 모색하는 중에 미래의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급 형태가 더 낫다고 판단하여 수용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관이 출현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진행된 의료공급체계의 개선에 대한 논의에서 의학지식의 발전과 기술 발전의 영향,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새로운 형태의 의료공급 조직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문제이다. 현재 존재하는 형태의 의료기관이 활동한 결과 의료공급과 이용을 둘러싸고 여러 형태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 창의성과 혁신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관이 출현할 여지를 허용하고, 이들 중 가장 적절한 조직이 선택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이 글에서는 의료의 기술적 변화와 이에 기반을 둔 사업모델 및 조직형태의 변화를 고려한 의료공급체계의 개선을 위한 정책의 방향과 기존 의료기관의 대응방향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파괴적 기술혁신과 의료공급모델

2010년 10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Christensen 교수와 두 명의 의사가 공동으로 쓴 책[7]이 '파괴적 의료혁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소개되었다. 감당할 수 없이 증가하는 미국의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료공급모델이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주장에 대해서 파괴적 혁신 이론에 토대를 두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파괴적 혁신이란 단순하고 저렴한 기술이 복잡하고 비싼 기존 기술과 사업방식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대부분의 기술혁신은 기존의 기술과 사업방식의 틀 속에서 개선과 발전을 모색하는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의 형태를 띤다. 현재보다 빠른 인터넷, 더 높은 연비, 더 정밀한 해상도의 추구 등이 바로 존속적 혁신의 사례이다.
어느 기술이든지 기술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높은 기술 발전의 초기 단계에서는 기술의 성능과 신뢰성을 기준으로 하여 경쟁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제각각 성능과 신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성능향상 경쟁이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을 넘어설 때 발생한다. 최고의 성능을 요구하는 일부 하이엔드 계층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성능향상 경쟁이 지속되어 제품 내지 서비스가 대부분의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수준을 상회하게 되면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낭비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시장의 상황이 되면 단순한 기능과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업체가 등장하여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할 수 있다[8]. 기술의 발전이 성숙기에 이르러 대부분의 시장참가자가 기본적인 성능과 신뢰성 기준을 충족시키는 단계가 되면 성능과 신뢰성은 더 이상 경쟁의 토대가 되지 못하고 비용과 편리성을 토대로 한 경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Figure 1) [7].
최근 우리나라의 의료기관들은 점점 더 고도의 중증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전문인력과 장비, 시설을 갖추는 경쟁을 하고 있다. 즉 성능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이 질병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나 치료방법의 표준화 및 장비에 체화된 정도에 관계 없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의원에서 해결 가능한 일을 종합병원에서 해결할 경우 시스템 전체의 효율은 떨어진다. 전문성이 낮은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투입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발병기전과 효과적인 치료방법에 대한 지식의 발전 단계는 질병에 따라서 매우 다른 단계를 보인다. 우울증이나 알레르기와 같이 질병의 발병기전이나 효과적인 치료방법에 대한 지식이 잘 정립되어 있지 못한 질병이 있는가 하면, 패혈성 인두염이나 골절, 제1형 당뇨병과 같이 발병기전과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명확한 질병도 있다. 다제내성 결핵은 질병의 발병기전은 분명하지만 효과적인 치료방법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복부대동맥류나 충수염은 질병의 발병기전에 대한 이해는 완전하지 않지만 확진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분명하다.
환자가 갖고 있는 건강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처방하면 되는지가 분명한 경우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문제의 원인이 분명하지 않고 처방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라면 종합병원 이상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즉, 환자가 당면하고 있는 건강 문제의 성격에 따라서 적절한 의료서비스 공급 모델이 달라져야 한다. 질병의 원인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혹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여러 검사를 통하여 질병의 원인을 탐색하고 시험적인 치료를 통하여 질병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질병의 기전과 치료방법이 잘 알려진 경우라면 실수 없이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인력과 장비, 시설로 충분할 것이다. 잘 알려진 치료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위험하여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라면 전문가의 개입 수준이 높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낮은 수준의 전문가에게 맡겨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수준의 전문가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기술이 표준화된 정도와 장비에 체화되는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한편, 수술과 같이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의료개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있는가 하면 오랜 기간의 투약과 생활습관의 변화가 요구되는 질병이 있다. 생활습관의 변화가 필요한 질병은 의료적 개입이 요구되는 질병을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사업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만성질환의 경우에 생활습관의 변화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고, 그 만큼 의사 지시에 대한 환자들의 순응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만성병 관리를 위하여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지속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의사를 지정하는 것은 꼭 필요한 방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Mayo Clinic에서는 병원의 통제된 환경 속에서 지켜지던 행동을 일상적 생활 속에서도 지켜지도록 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던 중 인터넷을 통한 상담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으며[9],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행동을 모니터링하고 패턴을 분석하여 해야 할 운동이나 교정할 습관을 알려주는 사업도 이미 나타났다[10]. 동일한 질병을 지닌 사람들은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정보 교류를 하고 있는데, 이는 서로 격려하고 감시하면서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데 필요한 동기를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예를 살펴 보면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방안으로서 병의원을 중심으로 한 구상을 넘어서 확장된 지역사회 네트워크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방안의 구상도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파괴적 혁신 이론이 의료공급체계에 주는 시사점

의료기관들은 지금까지 경쟁적으로 점점 더 고도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하면서 병원의 성능과 신뢰성을 향상시켜 왔다. 현재 의료서비스 공급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의료기관의 모습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질환에 대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한 전문인력과 장비 및 시설을 갖추고 있는 병원과 일반의 의원, 전문화된 영역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병원 및 전문의 의원으로 대별된다. 하나의 조직 안에서 다수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복잡성이 높아지게 되고 효율을 높이기 어려워진다. 전문화한 병원들은 좁은 분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 복잡성의 수준이 낮고 그 만큼 효율을 높일 수 있다[11].
환자들은 최고의 전문가와 기관을 선택한다고 해도 추가적인 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최고의 성능과 신뢰성을 지닌 의료기관을 최선의 대안으로 여기고 선택하여 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료비는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의료비의 증가는 의료서비스 공급자들의 유인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환자들의 의료이용이 비용효율적이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들이 비용에 민감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안을 포함한 수요 측의 혁신이 동반되지 않으면 파괴적 혁신의 실현은 불가능하다[12]. 의료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 이용자들의 비용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기 위한 수가 및 보험제도의 수정이 필요한 것이다[13]. 환자들의 비용효율을 고려하여 의료이용을 결정하도록 하는 수요자측 개입을 통해서 의료비용을 통제하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다른 어떤 영역보다 성능과 질이 최우선의 선택기준이 되는 의료분야에서 비용과 편리성을 경쟁의 토대로 삼은 혁신과 사업모델이 선택 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변화가 공급조직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과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의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과제를 고려할 때 의료공급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의료공급시스템을 구상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 파괴적 혁신 이론이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정책적 시사점

의료공급체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의료공급체계의 개선을 위한 목표에 대한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 미국 의학연구원(Institute of Medicine)에서는 국민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효율적이고 공평하며 환자중심적인 의료서비스를 적시에 제공하는 것은 의료공급체계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라고 했다[15]. 우리의 경우에 여러 이해당사자가 공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료공급체계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 바람직한 모습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후에야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처럼 서로 자기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만 논의가 전개되어서는 힘의 향배에 따라서 끊임없이 논란만 지속될 뿐이다.
둘째, 의료소비자에게 의료기관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제공을 제공하여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도와야 한다. 건강보험 때문에 소비자가 비용을 고려한 구매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비용이 덜 드는 공급방안 으로 유도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정부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가 비용대비 효능과 효과가 좋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구성하여야 한다.
이뿐 아니라 의료의 질적 측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소비자가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4]. 양질의 서비스는 장기적으로 의료이용을 줄여 비용절감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질환에 따른 치료성과를 의원 급까지 포괄하여 발표할 수 있어야 한다. 의원의 치료성과가 병원이나 대형병원과 비교하여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기 전에는 대형병원 선호현상이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셋째, 의료공급형태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현재의 주어진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기술과 사업방식을 적용한 모델이 나타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각 주에서 관장하는 Medicaid(저소득층 가구와 의료취약 개인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의 의료급여와 유사하며, 연방정부의 최소 기준을 토대로 주 정부가 재량권을 가지고 운영하기 때문에 주 별로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주별로 다양한 보건의료시스템을 시험해볼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Kaiser Permanente, Intermountain Healthcare와 같은 통합의료시스템(integrated delivery system; 급성기병원, 장기요양시설, 재활시설, 외래진료시설 등이 수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의료공급체계)들이 여러 형태의 의료서비스 공급모델을 도입하여 시험하고 있다. 책임의료조직(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인 Medicare 환자를 진료할 때 개업의사, 병원, 기타 의료공급자가 자발적으로 연계하여 진료함으로써 비용의 절감을 유도하고 절약된 비용의 일부를 참여한 의료공급자들에게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오바마 의료개혁과 함께 시작되었다)[16]과 같은 획기적인 모델의 개발과 도입에는 이와 같은 경험이 배경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의료공급형태가 출현할 여지가 크게 제한되어 있어서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창의성과 혁신이 필요한 것은 의료시스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업방식이 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의료기술의 적용에 있어서 일정한 조건 속에서 사용하면서 결과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조건부 허용'의 방식[17]을 의료공급모델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는 정부가 주도하는 모델에 대해서 시범 사업의 형태로만 이루어졌지만, 민간의 영역에서 출현할 수 있는 여지도 허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의료공급체계가 국가가 주도하는 영국 식의 중앙계획시스템이 아니고 민간에 의해서 주도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의료서비스 방식이 다양하게 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가장 적절한 방식이 선택되도록 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의료서비스의 내용이나 공급형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모습은 기술적인 가능성 뿐 아니라 사회적인 수용 가능성에 의하여 달라질 것이다.
넷째, 전문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의료기술의 표준화와 장비에 대한 의존도 증가는 의료서비스의 제공에서 전문가가 개입할 여지를 줄인다. 즉, 전문의가 하던 역할을 장비의 지원을 받는 일반의나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의료인이 하던 일을 환자 본인이나 일반인이 수행하도록 할 수도 있다. 특히 지역사회 속에서 건강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독거노인이 적기에 의료이용을 할 수 있도록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나 노인들이 넘어져서 다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도록 '쓰레기 수거일에 맞추어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같은 일상생활을 보조하여 낙상과 골절의 위험을 피하도록 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18]. 자조모임과 자원봉사는 중요한 의료자원이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생활습관의 변화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만성병 관리에 중요하다.
다섯째, 다빈도 질환 중 질병의 발병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효과적인 치료방법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활발해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기술의 개발은 효과적인 의료서비스 공급을 제공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현재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높아서 상급종합병원과 같이 많은 전문가와 고가의 진단 및 치료장비를 필요로 하는 질병에 대해서 질병의 원인과 변화 과정이 명확하게 규명되고, 그러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면 훨씬 효율적인 치료와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수행은 상급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에서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2. 의료공급자에게 주는 시사점

의료공급체계를 구성하는 의료공급자들은 지식과 기술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를 주도하거나 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여러 의료기관들은 각기 다른 기회와 위협요인을 지니고 있다. 의학지식의 진보와 기술 및 장비의 발전으로 인하여 각 수준의 의료서비스 공급기관과 인력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의 수준이 달라지고 있다. 진단과 실행, 환자 생활습관의 변화 등은 서로 다른 종류의 문제이고,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업모델은 서로 다르다.
인슐린의 발견과 함께 당뇨병의 치료방법은 크게 발전했다. 당뇨환자 중에서 인슐린으로 관리되는 1형 환자 군과 그렇지 않은 2형 환자 군이 있다. 1형 당뇨환자의 경우에는 환자 본인이 직접 인슐린을 주입하면서 병을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의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2형 당뇨환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 1형 당뇨병과 같이 표준화된 지식의 적용이 가능한 경우에는 심지어 환자 본인에게 상당한 수준의 판단을 위임하고 있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를 보면 80년대에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3일 정도의 입원기간을 필요로 하던 수술이었지만, 수술기술의 표준화가 진행된 현재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입원 없이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력교정술의 경우에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장비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훨씬 짧은 시간에 술기를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술시간도 단축되었다. 로봇수술의 등장은 복강경수술에 비하여 동일한 수준의 수술능력을 갖추는 기간을 훨씬 단축시켜 주었다. 치료영상기술의 발전은 기존에 외과 영역으로 여겨지던 시술을 비외과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고, 앞으로 그 영역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비침습적 수술기술의 발전은 입원의 필요성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기존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만 가능하던 수술이 상당 부분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도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적절한 의료공급조직이 변화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정형화해서는 안 된다.
의원은 병원에 비하여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격 측면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능과 서비스에 대해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성능과 신뢰성을 중심으로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 가격과 편리성은 우위요소가 되지 못한다. 소비자들이 가격과 편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점은 성능에 대해 서 기본적인 신뢰를 갖게 된 이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질병에 대한 연구의 진행에 따라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진료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확대될 것이고, 그 만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다룰 수 있는 질병의 영역은 확대될 것이다. 진단기술의 발전과 영상장비의 소형화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단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고, 이는 앞으로 의원급 의료기관이 현재 병원급 의료기관의 영역을 잠식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현재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다루어지는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를 훨씬 더 편리하고 값싸게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편, 현재 의원급 의료기관의 영역을 파괴하는 의료공급자가 등장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원격의료를 통한 상담이나 진료의 수준은 초기에는 의사를 직접 만나서 제공받을 수 있는 것에 비하면 훨씬 떨어질 것이지만 점차로 향상되어갈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마땅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형태의 서비스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한계를 명확하게 정하고 그에 대해서는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질병이나 의료서비스의 단계에서 전문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즉 특정 질환에 대한 진단 및 치료 중 어느 단계에든지 집중하여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성능향상에 의하여 시장을 잠식당할 위험이 있다. 특히 대형의료기관들은 내부의 복잡성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질환이나 서비스 제공의 단계를 기준으로 하여 비교적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하기보다는 다른 병원 내지 의원과 협력하여 발전하는 상생을 모색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결 론

그동안 우리나라의 의료공급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시도가 많았고, 2011년 3월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는 중요한 진전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현재의 의료공급형태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이들 사이의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의료기관과 그들의 기능은 이들 의료기관이 탄생하던 당시의 환경, 당시의 문제, 당시의 기술을 배경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 동안 많은 것이 변했고,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의료기술(진단 및 치료기술)의 발전, 정보기술의 광범위한 활용, 인구구조와 생활습관의 변화, 질병양상의 변화, 의료서비스 영역의 확대, 의료기관 체인, 전문병원, 건강관리서비스, 인터넷을 통한 의료정보 공급과 정보공유, 타 서비스와 의료서비스의 융합, 검진전문기관, 병의원간 협력 등 다양한 의료공급형태의 등장, 소비자 지식과 의식의 향상 등 변화요소는 매우 많다. 따라서 이제는 이러한 요소를 고려한 새로운 의료공급체계의 모색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파괴적 혁신의 개념을 중심으로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비롯하여, 질병과 치료방법에 대한 연구지원, 다양한 공급형태의 출현을 허용하는 제도적 여유의 제공, 의료전문가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참여시키는 의료공급개념의 확대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정책적 제언을 했다. 이러한 제언이 우리나라의 의료공급체계에 대한 논의 확대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Figures and Tables

Figure 1
Technological progress and the basis of competition (Modified from Christensen CM, et al. The innovator's pre-scription: a disruptive solution for health care. New York: McGraw-Hill; 200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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