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List > J Korean Med Assoc > v.57(2) > 1042772

허 and Heo: 국가와 사회가 바라는 의사의 역량과 역량강화 방안

Abstract

The foundation of medical practice is the doctor-patient relationship. Before the implementation of National Health Insurance in Korea, it was not easy for patients to access doctors, and the doctor-patient relationship was immature. This study aims to describe doctors' social competency and determine measures of its strength in Korea. The current status of research on doctors' social competency in Korea and other countries was reviewed. There is recognition that Korean doctors have confidence in their medical knowledge, but their leadership in the health care sector and society is insufficient. A survey of citizens' expectations regarding doctors' social competency shows that they are not satisfied with their doctors' communication, and feel their doctors have not fulfilled their leadership duties as influential members of society e main reason for respondents' dissatisfaction was the doctors' pursuit of profit. They expected that the quality of care would increase if doctors' social capabilities were strengthened and both the doctors themselves and the government were to participate in capacity building. The preferable approach to reinforcing the social ability of doctors is to include medical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 in the medical education curriculum. Then, medical students can grow as good doctors and effective leaders. Several reports from outside Korea have confirmed this. Doctors need to recognize that the concept of health is broad, encompassing societal factors as one of the determinants of health. In conclusion, the effort of the community as a whole is needed for strengthening the social competence of doctors in Korea.

서론

의료는 기본적으로 의사와 환자의 사회적 관계로 구성되며 어느 사회에서나 공익적 성격을 지닌다. 국가와 사회는 의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동시에 특별한 직업윤리와 공익성의 실천을 기대한다. 계급론적 관점에서는 의사를 의료기술을 통해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로 폄하한다[1]. 이 관점은 의사의 진료로 환자가 건강해지는 것을 '노동 능력의 회복'이라고 본다. 그러나 의사들의 진료행위 전체를 이와 같이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소규모 자영업 직업군으로 발전해왔다. 건강보험제도 실시 이전에는 많은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쉽게 찾아가지 못하였고 의사와 환자 관계도 크게 성숙되지 못하였으나 국가 주도로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고 의료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의료기관 이용이 보편화되었다. 그에 따라 의료의 사회적 관계는 의사와 환자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국가와 의사,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의사와 환자 관계는 이에 종속되는 양상을 보였다[2].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의사의 진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체계에서는 국가와의 협상을 통한 보상 수준이 중요시되었다. 환자들이 직접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에서는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현재 비급여 진료 영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피부과, 성형외과, 치과 등에서 진료의 질과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서비스가 개발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전국민 건강보험제도에 의해 의료기관 접근성이 높아진 환자들은 과거처럼 거주지 주변의 익숙한 동네의사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의료기관을 방문하면서 자유롭게 의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의사는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낮아졌다. 현재 진료를 받고 있는 환자가 언제든지 다른 의료기관의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의식도 축소되었다.
환자의 의료쇼핑 행태와 의사의 일회성 진료의 가속화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회복은 더 어려워졌다. 의무적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들은 의료기관 이용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였다. 합리적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의료기관과 의사의 선택권을 보장받은 의료소비자는 질병의 경중과 무관하게 대형병원과 유명 의사를 찾아가게 되는 행태로 변화하였다. 상급종합병원에 경증환자가 집중되고 동네의원은 감기환자조차 대형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상위 5개 상급종합병원 환자 중 30% 이상이 지방 거주자라는 사실에서 우리나라 의료자원이 서울과 대형병원에 집중되어 있으며 지방과 소규모 의료기관에는 의료공동화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의료법의 골격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에서, 의료자원의 심각한 편중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 노력은 거의 성과가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사적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대다수 의료기관은 경쟁에서의 생존전략으로 진료환자의 수를 늘리게 되고 이것이 '3분 진료'로 고착화되면서 의사와 환자 간 신뢰의 기반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현재와 같은 건강보험제도와 의료 인프라가 왜곡된 상황에서 의사와 환자와의 신뢰회복은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한 의사들이 지속적인 주장에 대해, 국민과 언론은 의사들이 이익 확대를 위해 국가와의 협상의 주도권을 가지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 폄하한다.
국민은 의사들이 의료의 질을 높이는데 적극적이라고 체감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보험료 인상의 정책 추진에 동력이 찾지 못하고 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 기반은 점차 취약해지고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활성화 된 민간의료보험의 규모는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이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의료양극화는 점차 심화되고 국민통합이라는 건강보험제도의 근본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바라는 의사의 역량은 '의료의 공익성' 문제로 수렴된다. 보건의료제도와 의료 인프라의 왜곡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의사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가 될 수도 있다. 한편, 건강보험을 비롯한 보건의료제도를 바꾸면 의사와 환자의 신뢰 회복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의료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 즉 국민이 바라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은 무엇이며 이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인지 검토하고자 한다.

의사의 사회적 역량

1. 사회적 역량의 정의와 의료현실

'역량'의 사전적 정의는 '우수성과자에게서 관찰되는 행동양식' 또는 '일을 할 때 우수한 성과를 창출해내는 데 필요한 요소들의 집합체'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초 하버드 대학교 사회심리학자 맥클랜드가 제시한 것으로, 지능보다 역량이 사회적 성취도를 더 잘 반영해준다는 개념으로 경영학이나 교육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3].
의사의 '사회적 역량'이란 의료기술은 물론 진료환경에서의 갈등사례를 해결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의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의사의 사회적 역량은 일반적인 의료기술능력 이상의 광의의 개념이다[4].
히포크라테스로 상징되는 의사의 정체성은 인간에게 헌신하는 미션에서 출발하였고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5].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은 슈바이처, 체 게바라, 노먼 베순, 허준, 이제마, 장기려, 이종욱, 이태석 등과 같이,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에게 의술을 베푸는 '좋은 의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높은 지위와 부의 축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하고 이러한 노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좋은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의과대학 학생들의 희망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의사의 모습과 현실 의사의 모습 간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국민이 바라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이 무엇이며 이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한국 사회에서 의사의 사회적 역량

우리 사회에서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깊이 의식하지 않았으며, 그에 필요한 능력도 함양하지 못하였다고 평가 받는다. 의학 전문지식에는 자부심이 있으나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보건의료계와 사회 전체의 지도자로서 책임의식과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전문영역의 기술자로 전략해버렸다는 인식이 만연하다[6].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전문가인 의사들에게 사회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의사를 인술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인식하는 인술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현행 의료제도의 틀에 그대로 현실화하기에는 제도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체계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가 바라는 의사의 역량과 이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3. 사회가 바라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

2013년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 사업 보고서 '의사 전문직의 사회적 역량강화를 위한 연구과제 도출 및 지원전략 기획연구'에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에 대한 일반 국민의 기대와 만족도 조사 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의사의 사회적 역량에 관한 인식을 조사한 것으로 전국의 만 1969세 국민 600명을 대상으로 지역·성·연령별 인구비례 할당 방법에 따라 현대리서치가 2012년 12월 15일~20일에 무작위(random gigital dialing) 컴퓨터 활용 전화조사(computer aided telephone interview)한 내용으로 95% 신뢰수준에서 허용오차±4.0%p에 응답률은 16.5%였다[7].
이 조사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을 8가지 측면에서 제시하고 그 만족도를 측정하였다. 즉, 의사의 일반적 인성(좋은 성품), 의사의 직업윤리, 환자·보호자와의 의사소통 능력, 사회(언론 등)과의 의사소통 능력, 사회지도층으로서의 리더십,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성, 법률 등 사회제도에 대한 지식, 타인의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 등 8가지 영역별로 의사의 사회적 역량에 대해 1-5점 척도로 조사하였다.
응답자들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에 만족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환자·보호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은 3점 이하로 나타나 일반 시민들이 의사의 의사소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으로서의 리더십 역량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무성에 대한 평가에서도 '보통'보다 못한 평가를 내린 점도 주목된다. 지역사회와 유리되고 국민보건의 이슈에 참여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영업자와 유사하게 운영하고 있는 개원의사에게 지역사회 봉사와 국민보건문제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유효하다.
불만족의 이유 중에는 '지나친 영리 추구'가 가장 많았다. 이는 의료제도를 포함한 의료 인프라 전반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고는 극복되기 어려운 문제이다. 다음으로 많은 응답은 '설명을 잘 안 해 줌'이었다. 이 부분은 의과대학 교육과정과 임상실습 및 수련과정에서 경험하는 역할 모델 등 다양한 경로의 학습과 체계적인 교육과정 강화로 개선이 가능한 영역으로 판단된다.
사회적 역량 증진의 이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전망하였고, 사회적 역량이 증가되면 의료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었으며, 의사에 대한 신뢰가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비교적 높았다. 그러나 사회적 역량의 증진으로 인한 의료비 절감 여부에 대한 응답은 다소 낮았다. 이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 강화가 의료의 질과 신뢰와 같은 주관적 지표의 개선에는 영향을 주지만, 의료비 절감과 같은 실질적 지표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은 사회적 역량 증진을 위한 자원 마련에 잠재적인 위험요소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회적 역량 증진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높게 응답하였으며, 역량 증진을 위한 책임은 '의사 개인과 단체, 정부 모두에게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즉, 국민들은 의료인의 문제를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책임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가 의사의 사회적 역량 강화를 위해 지원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보통' 이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의사 개인과 의사 단체 및 정부가 각각 어떤 역할을 맡으며 어떻게 공조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의사의 사회적 역량강화 방안

1. 의사의 사회적 역량강화를 위한 기반

모든 사회적 가치는 인간관계 속에서 비롯되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의 기본은 소통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의업에서 지식과 기술보다 더 강력한 핵심 역량은 소통능력일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진료를 끝내야 하는 우리의 진료실 환경은 소통에 커다란 장벽이 아닐 수 없다. 단시간에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방안을 찾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건강과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증을 가진 환자들은 극도로 불안하며, 소통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의사의 사회적 역량의 일부라고 보았을 때, 소통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노력과 더불어 소통이 가능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 즉 양방향의 노력이 같이 필요하다[8910].
임상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다. 그러나 건강은 자연적·사회적·문화적 환경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건강을 다루는 의학의 범위를 치료의학에 한정하지 않고 예방의학, 인문의학, 사회의학 등 포괄적인 영역까지 확장하여야 한다.

2. 의학교육에서 사회적 역량에 대한 의사들의 인식

의과대학 학생들은 최신 의학지식으로 잘 무장되어 있으나 정작 자신이 하고 있는 의학 공부와 수련이 자신과 환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6].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에서 따뜻한 의사, 인간미 넘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내용이 미흡하다. 이는 과다한 학습 분량 탓이기도 하고, 또 그런 덕목이 훈련으로 획득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교육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의사에게 필요한 인간미도 교육을 통해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전환되었고,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인문사회의학 계열의 과목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의과대학에서 이런 내용을 교육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11].
인문사회의학 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무엇이고 어떤 목적을 가져야 의미가 있으며, 의사로서 궁극적으로 지향하여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확고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12]. 이런 교육을 통해 의사로서의 삶이 보람과 의미가 있으며 사회 지도자로서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질병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보건의료와 관련된 사회 문제를 성찰하면서 존중 받는 의사로 성장할 수 있다[131415].

3. 의사의 새로운 역할에 관한 논의

세계보건기구는1996년 보고서에서 의사의 역할을 전통적인 개념인 '돌봄 제공자'인 동시에, '의사결정자, 의사소통자, 지역사회지도자, 관리자'라고 규정하였다[16].
2000년 한국의과대학장협의회는 '21세기 한국의학교육계획'에서 "의사는 기본적인 의학지식과 술기를 가지고 의료현장에서의 문제해결 능력과 전인적 관점에서 질병예방과 건강증진을 수행할 수 있고 의료와 관련된 인문, 사회과학적 지식과 관리능력을 갖추며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회지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바람직한 의사상을 제시한 바 있다[17].
2003년 세계의학교육협의회(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는 세계보건기구와 연계하여 '의과대학 인증 및 의학교육의 질적 표준화 지침 설정' 연구에서 의사의 역할이 단순한 의료행위뿐 아니라, 윤리, 전문직업성 및 사회적 책무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을 수립함에 있어 '의사의 역할'에 대한 정의나 규정은 필수적인 것이다[18].

4. 미국의 '21세기 의사상' 및 의과대학 사례

미국의과대학협의회는 1984년에 '21세기 의사 상(Physi-cians for twentyfirst century: the general professional education for physicians)'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21세기 미국 의학교육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보고서는 그 동안 미국의학교육이 생의학적 관점에 국한되었던 점을 비판하고 21세기 의사에게 요구되는 자질로서 인문사회의학 함양을 강조하고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인문사회의학 교육과정은 인문사회의학의 주제들을 임상 전 필수 교육과정으로 하고 의료윤리와 프로페셔널리즘, 학문으로의 의학, 사회의학과 국제보건 입문, 보건정책, 의사와 환자 관계 등을 다루고 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서는 의학의 사회적 맥락으로서 건강, 질병,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행동적, 경제적 요인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19].

5. 독일의 '의학교육 개선을 위한 지침서' 및 의과대학 사례

독일은 1992년 '의학교육의 개선을 위한 지침서(Leitlinien zur reform des medizinstudiums)'를 발간하여 의학교육의 목표와 미래의 의사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제시하였다. Humboldt 의과대학에서 인문사회교육은 문제 중심 통합교육과정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 교육과정은 모듈을 통해 모든 관련 분야를 수평적으로 통합하여 전체적인 주제를 다루고 기초의학과 임상교육의 구분을 없애고자 노력한다. 또한 의학사, 의료윤리, 사회학, 인류학, 보완대체의학 등의 분야 강사들이 초빙되어 학생들에게 인문사회의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19].

결론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이 바라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은 의료체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 관계와 이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제도, 의료 인프라 등을 면밀히 파악한 상태에서 의사의 사회적 역량을 논의하고 역량강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의사와 관련된 최근의 언론보도는 불법 리베이트 수수, 교통사고나 장애판정과 관련된 허위진단서 발급, 성추행 사건 등 부정적인 측면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의사면허는 환자들의 질병과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배타적인 독점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가 함의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전국 의과대학 학생 1,07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의하면 의과대학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의사의 집단 이익에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중요성을 인지하며, 전문적 이념이나 임상적 심성, 직업윤리에 대한 인식은 입학 당시의 생각이 졸업 때까지 큰 변화 없이 일정하다[20]. 의사 전문직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인문학적 자질을 갖춘 성숙한 의사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사에게 사회는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성을 요구한다. 또한, 건강의 결정요인으로 사회적 영역까지 확장된 관점을 가진 의사를 양성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정의한 '건강'은 다른 권리들과의 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을 나타낸 것이다. 국제연합은 1966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사회권 규약을 구체화하였고 사회권 규약 12조에서는 건강권을 '성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라고 하였다[21]. 사회권 규약의 가맹국이 이 권리의 실현을 위해 취해야 할 조치에는 '사산율과 영아 사망률의 감소, 어린이의 건강한 발육을 위한 대책, 환경위생 및 산업위생의 개선, 전염병, 풍토병, 직업병 및 기타 질병의 예방치료 및 억제, 질병 발생 시 누구나 의료와 의학적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의 조성' 등이 포함된다고 규정하였다[22].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고 이를 기반으로 의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의사의 사회적 역량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인력 양성의 전체 과정에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어야 하며, 의학교육과정에 의학철학, 의료윤리학, 의료인류학 등 인문사회의학 분야에 대한 소양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23].
국가와 사회가 바라는 의사의 역량강화를 위해 제도 개선과 국가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외부 환경의 변화만으로는 어렵다. 의사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의사의 사회적 역량강화를 위해 의사들의 고유 업무 영역에서의 정치화를 제안한다.
의사들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의사가 되는 것 뿐 아니라, 동료, 선배, 후배 의사들과 간호사 등 동료 의료인들에게 의사전문직의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의료기관은 다양한 직종이 같이 근무하는 공간이다. 진료비나 건강보험 수가 등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해서 새로운 환자들의 입원 및 치료과정에서 사망하는 환자 등 생로병사의 문제,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간병인 등의 의·식·주와 일상이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실질적인 권위를 인정받으면서 정치를 훈련하고 경험하는 것이 의사 정치화의 첫 출발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병원을 넘어 사회에서의 의사의 정치세력화의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의사들이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중요하다.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의사들의 입장을 알리는 홍보 활동과 더불어,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하는 의료전문직 내부의 성찰을 기반으로 자율규제가 가능하도록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실제로 건강보험제도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설계된 건강보험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해 의사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어떤 방법이 더 적절한지에 대해 전문가로서 집단지성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을 비롯한 보건의료제도의 개선, 의학교육과정의 개편, 의료인력 양성과정에 대한 공적 지원 확대가 선결되어야 한다. 의사들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의료기관에서의 정치화의 훈련과 자율규제를 위한 제도화 추진 등이 필요하다. 전문직업인으로 의사들이 집단지성의 잠재력을 통하여 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가 의사들에게 바라는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강화하고 실천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Peer Reviewers' Commentary

대한민국 의사들의 좌절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이 훼손되고 있고, 사회와 환자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자율성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사회적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사회적 역량이 있어야 환자 및 사회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바람직한 의료제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의 사회적 역량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의료에서 매우 근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주제이다. 저자는 인문사회의학 교육의 강화, 의료인력 양성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 의료기관에서의 정치화의 습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리: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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