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List > J Korean Med Assoc > v.57(2) > 1042769

한 and Han: 프랑스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역사·철학적 고찰: 피에르-장-조르주 카바니스(1757-1808)의 의학적 인간학과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

Abstract

Doctor's task cannot be limited to medical practice and research. As a citizen of society, and above all as a professional, doctors should not evade their social responsibilities. This idea was systematically developed and widely diffused throughout Europe by Pierre-Jean-Georges Cabanis (1757-1808). He was not only a doctor, but also a philosopher and a politician who lived at the time of the French Revolution. His philosophy on the nature of medicine and the social role of the doctor is conceptualized in his idea of medical anthropology (science de l'homme, anthropologie). In order to understand why the social role of the doctor was particularly emphasized in and around France, Cabanis' medical anthropology should be analyzed in depth. His medical anthropology is composed of three major domains: physiology, ethics, and analysis of ideologies. The following ideas of his medical anthropology can be identified in the current articles of the French code of medical deontology. 1) Health and disease being a social problem, a social solution should be sought (1.6, 1.7, 1.10, 2.37, 2.44, 2.50); 2) Medical practice is in principle not a commercial service for profit, but rather a public service supported by the government's power (1.12, 1.19, 1.21, 2.55, 3.57, 3.67); 3) Doctors should maintain their professional autonomy by establishing and observing the principles of self-regulation (1.1, 1.5, 1.31, 2.50, 5.109, 5.110). Referring to the historical experience of French doctors, the Korean medical community should also enter into a broad and fundamental reflection on the nature of medicine and the social role of the doctor.

서론

의사의 임무는 진료와 연구로 한정될 수 없다. 의사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전문직으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의사에게 사회적 역할이 필수적인 이유는 의사가 실천하는 '의(醫, médecine)'가 물리·화학이나 다른 생명과학처럼 단순한 자연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醫)는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의학(science médicale, 의과학, 지식), 의술(technique médicale, 의기술, 수기), 의료(pratique médicale,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의 종합으로 정의된다. 참된 의(醫)는 건강을 이상적 가치로 설정하고 질병의 치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실천이 의무로서 부과되지 않는 물리·화학이나 다른 생명과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서양의 문물인 'médecine'을 지칭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학'이라는 표현은 의(醫)에서 지식의 차원만을 강조하는 지나치게 과학주의적인 번역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지식 중심의 과학주의를 피하고자 의철학(philosophie de la médecine) 분야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지만 한자어 '醫'가 'médecine'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으로 권장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는 흔히 의학이라고 표현하면서 의술과 의료가 포함된 의(醫)를 지칭한다. 하지만 개념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요에 따라 의학, 의술, 의료를 구분해 사용하고 이 세 가지가 모두 포함된 총체적 의미로는 의(醫)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의사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으로서의 의료가 의무로서 부과되는 특수한 전문직이다. 그런데 의사가 의료에 의해 효과적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적 환경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발상을 근대 이후에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파한 인물이 바로 카바니스(Pierre-Jean-Georges Cabanis, 1757-1808)이다. 그는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의사이며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다. 그는 파리의과대학의 위생학 교수를 거쳐 임상의학 교수를 역임했고 1796년에는 프랑스 한림원(Institut de France)의 정회원과 하원인 오백인회(Conseil des Cinq-Cents)에도 선출되는 등 의사, 철학자, 정치가로서 모두 인정받았다. 당대 프랑스 최고의 경험론 철학자 콩디야크(Étienne Bonnot de Condillac, 1714-1780)의 제자였던 카바니스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와 같은 백과전서학파(Encyclopédistes)의 철학자들과 더불어 의(醫)의 철학적 토대를 반성했다. 이뿐만 아니라 카바니스는 정치가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과 교류하며 혁명기의 급진적인 정치개혁을 주도하던 트라시(Antoine Destutt de Tracy, 1754-1836)라는 이데올로그(idéologues)의 한 사람과 함께 프랑스 의료의 총체적인 개혁을 추진했다[123].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로 수립되고 전파된 카바니스의 '의학적 인간학(anthropologie médicale)' 이념은 의(醫)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바탕으로[45]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카바니스는 의(醫)의 본질로부터 의료가 상품이 아닌 공공재(公共財, service public)라는 이념을 도출했고 의사에게는 의료의 공공성을 담당해야 하는 임무가 사회적 역할로서 부과되었다. 사실 현대 프랑스 의료체계는 이러한 카바니스의 '의학적 인간학' 이념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예를 들어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모든 의과대학이 국립이고 의(醫)교육은 사실상 무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의료는 공공병원(hôpital public)을 중심으로 제공되고 모든 국민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려야 할 권리를 갖는다. 프랑스는 2010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 중에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 비율'이 최상위권이고 '국민의료비 중 가계지출 비율'은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6]. 무엇보다도 의(醫)교육, 의료체계,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만족도는 EU 국가 중에 가장 높다. 'European Commission 2007'에서 주관한 '유로바로미터 조사(Eurobarometer Survey)'에 따르면 98%의 프랑스 국민이 진료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7].
이와 같은 프랑스 의료 현실은 약 200년 전에 카바니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된 결과이다. 더 나아가 자국의 의료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만족도는 국가, 사회, 대중의 요구에 맞춰 의사가 사회적 역할을 충실하게 해온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분석될 수 있다. 이러한 만족도는 의사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사회적 참여를 강조한 카바니스의 '의학적 인간학' 이념이 없이는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의사의 사회적 역할이 왜 중요시되었고 어떻게 규정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바니스의 '의학적 인간학'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특히 의(醫)의 본질로부터 귀결되는 의료의 공공성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카바니스의 이념은 현대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code de déontologie médicale)'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이 법에 대한 검토도 함께 필요하다.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차원

카바니스는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따라 '건강(santé)' 개념이 개체적 차원에서의 정상적인 생리적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안녕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질병을 정신과 신체가 종합된 정신·신체적(psychosomatique)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질병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차원에서 조망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특정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얼핏 보기에 신체와 정신의 측면에서만 아픈 인간처럼 보이지만 어떤 인간도 사회에서 유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모든 환자는 사회의 측면에서도 앓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영양 및 위생 상태는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기 때문에 의사가 특정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체 및 정신적 측면과 더불어 사회적 측면에서의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영양 및 위생 불량에 처한 환자의 신체적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최고의 약을 처방해 주거나 정신적 측면에서 고통을 경감시켜 주거나 도덕적 측면에서 생활습관의 변화를 요구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카바니스는 신체와 정신건강을 균형 잡힌 식단과 위생적인 생활환경으로부터 귀결되는 상태로 규정하고 바람직한 영양 및 위생 상태는 사회적 차원에서 국가의 개입이 없이 개인의 건전한 생활규범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 치료는 국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건강과 질병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한 카바니스의 사상으로 인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수립된 국민의회의 빈민대책위원회(Comité de Mendicité de l'Assemblée Nationale)에는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의사가 참여했다. 카바니스는 대중의 보건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 및 빈민정책의 수립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의사가 곧 사법관(médecin-magistrat)이어야 한다"는 요구까지 했다[8]. 의사의 임무는 일종의 원조(secours)로서의 의료를 베푸는 기술적인 차원을 넘어 원조의 배분과 관련된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사법적인 행정절차와 도덕적인 차원까지도 담당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제 의사는 공중보건(santé publique)의 감시자를 넘어 시민의 도덕을 감시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8].
신체, 정신, 도덕의 밀접한 관계를 전제로 의사의 권리와 의무가 확장됨에 따라 사회적 측면의 의(醫), 즉 '공중위생(hygiéne publique)' 개념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했다. '의(醫) 혁명과 개혁에 관한 시론(Overview on revolutions and reform of medicine, 1804)'에서 카바니스는 '위생'이 도덕적 성숙을 위해 필수적임을 이렇게 설명했다.
"위생(hygiéne)이란 건강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위생은 의(醫)의 본질적인 부분일 뿐만 아니라 도덕(morale)의 중요한 부분이다. 도덕이란 사실상 삶의 기술인데, 이 기술이 적용되는 주체가 겪을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앎과 이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앎을 갖지 않고서 어떻게 이 기술을 완성시킬 수 있겠는가? 따라서 위생은 해부학과 생리학의 몇몇 간단한 개념들과 더불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체계에 도입되어야 한다[8]."
위생은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의(醫)의 목표를 실현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이고 도덕은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개인이 자연스럽게 성취하는 삶의 습관인 것이다. 따라서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의학지식과 더불어서 위생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카바니스는 도덕교육을 포함한 위생교육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의 필수과목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당대 사회를 두려움에 떨게 한 매독의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위생교육이며 이러한 교육이 가능한 한 일찍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학적 인간학으로서의 의(醫)

사회적 차원에서 정의된 건강과 질병에 대해 의사가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의사는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이를 철저하게 수행해야 한다. 카바니스는 이렇게 중요하게 부각된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인간학(인간과학, science de l'homme, anthropologie)'이라는 이념으로 집약했다[910]. 인간학은 의(醫)의 본질과 의사의 근본적인 역할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개념이며 현대적인 의미로는 '의학적 인간학'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카바니스는 의회에서 자신의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의료 개혁안을 소개하면서 '인간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시민들이여, 나는 오늘 인간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가 인간 지성의 작동방식에 대한 연구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인간 장기의 체계적인 발달이 인간 감정과 정욕(passions)의 유사한 발달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관계로부터 생리학(physiologie), 도덕론(morale), 이념의 분석(analyse des idées)이 우리가 정당하게 '인간학(science de l'homm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동일한 학(科)의 세 분과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귀결된다.… 여기에서 '인간학'은 독일인들이 'anthropologie'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하며 실제로 그들도 우리가 언급한 세 가지 주요 분과를 '인간학(anthropologie)'에 포함시킨다[11]."
의(醫)는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인간에 대해 전인적으로 실천하는 인간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anthropologie'라는 용어는 '의학적 인간학'을 의미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다. 카바니스는 1772년에 출판된 플라트너(Ernest Platner, 1744-1818)의 '의사를 위한 인간학과 세계지식(Anthropology for physicians and the worldwise, 1772)' [12]을 참조했거나 1798년에 출판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Anthropology from a pragmatic point of view, 1798)' [13]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오늘날처럼 'anthropologie'가 '인류학'이라는 협의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이며 유럽에서는 여전히 'anthropologie'가 인류학보다는 인간학으로 먼저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의학적 인간학은 세 개의 하위분야로 구성되며 의사는 이 세 분야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교육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카바니스는 주장했다(Figure 1).
의학적 인간학의 첫 번째 하위분야인 생리학(physiologie)은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인간 신체의 조건과 기능을 탐구하는 분야이다. 18세기에 생리학이란 개념은 물리·화학과 구별되는 의학 전체, 즉 현대 생명과학과 기초의학 전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두 번째 하위분야인 도덕론(morale)은 모든 실천이 보편적이거나 특수한 가치를 지향하고 그러한 가치에 대한 판단에 근거함을 전제한다. 이로부터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으로서의 의료는 그 자체로 이미 가치론적 행위(acte axiologique)임이 귀결된다. 도덕론은 현대적인 학문분류에서의 임상의학과 윤리학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하나의 분과로 간주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의학적 인간학의 세 번째 하위분야인 이념의 분석(analyse des idées)은 이론으로서의 생명과학과 기초의학, 실천으로서의 임상의학을 과학적이고도 윤리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이념을 포괄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결국 이념의 분석은 의(醫)의 궁극적인 토대이며 필수적인 구성요소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이며 현대적인 의미로는 의사학(histoire de la médecine), 의철학(philosophie de la médecine), 의윤리학(éthique médicale), 의사회학(sociologie de la médecine) 등으로 구성된 의인문학(humanités médicales)이 의과학자와 의사에게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카바니스가 의(醫)를 인간학으로 확대 및 개편하려는 목적은 먼저 의(醫)를 구성하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관계를 강화해 인간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의(醫)를 다른 과학과 종합하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확실하게 규명할 시간이 도래했다"[8]고 선언하고는 의(醫)와 다른 과학의 진정한 융합을 지향하는 전형적인 학제적(interdisciplinaire) 연구 및 실천이 곧 의학적 인간학이라고 규정했다. 다음으로 카바니스는 의학적 인간학이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이해를 통해 인간에 대한 배려, 특히 환자에 대한 진료를 좀 더 전인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다. 끝으로 카바니스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건강이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건강을 시민들이 모두 누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고 그들을 도덕적으로도 개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의학적 인간학으로 재정의된 의(醫)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렇게 확장된 의미의 의(醫)를 의사가 올바로 실천하려면 의과대학의 의(醫)교육은 단순히 의학지식과 의술의 전수 이상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야 했다. 카바니스에 따르면 의(醫)교육은 "개인의 발전을 보장하고 실현시키는 데 머물러서는 안된다. 의(醫)교육은 정신의 다른 모든 작용들, 특히 인간의 합리적인 철학과 도덕에 영향을 주어 그것들을 발전시켜야 한다"[14]는 것이다. 의(醫)교육을 통해 의과대학 학생의 철학과 도덕을 발전시키려면 당연히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교육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반대로 인문학도에게는 해부학과 생리학, 즉 기초의학교육이 강력하게 권장된다[15]. 카바니스에게 의학지식이 풍부하고 의술이 뛰어난 것은 훌륭한 의사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진정으로 훌륭한 의사는 철학적 합리성과 도덕적 건전성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환자를 모든 측면에서 배려할 수 있는 의사이다.

의학적 인간학의 최종목표

카바니스가 의(醫)를 의학적 인간학으로 재정의함으로써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개혁하고자 한 주제와 영역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의(醫)존재론(ontologie de la médecine)은 의학, 의술, 의료, 건강, 질병, 위생, 안녕, 인간, 사회, 환자 등 의(醫)의 핵심개념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재정의한다. 둘째로 의(醫)인식론(épistémologie de la médecine)은 의학지식과 경험의 획득 방법을 분석하고 임상추론 및 임상결정 과정을 실증적으로 체계화한다. 셋째로 의(醫)교육(enseignement médical)은 의료행위의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교수하고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과 교육체계를 개발한다. 넷째로 의료제도는 의과대학(교육의 공간), 종합병원(치료의 공간), 실험실(연구의 공간)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그 관계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설정한다. 다섯째로 사회보장제도는 약자와 서민에 대한 '의료보장' 이념(현대 국민건강보험의 전형)을 정당화하고 인본적인 공중보건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격변기를 살았던 카바니스는 트라시와 같은 이데올로그처럼 사회개혁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특히 의료계를 과학적이면서도 인본적으로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카바니스는 보건의료계의 진정한 혁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동시에 세 지평에서 근본적인 변혁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과학의 차원에서 의학의 목표와 방법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했다. 의학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반성, 즉 철학적인 반성을 기초로 의과대학이 독점하게 된 의(醫)교육을 개혁해야 했다. 특히 의(醫)교육의 핵심인 임상실습이 올바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종합병원, 실험실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했다. 이 관계는 한 사회의 공중보건체계의 근간을 이루며 궁극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체제에 의해 완성된다.
이렇게 '의학적 인간학' 이념을 바탕으로 카바니스가 추진한 의학의 사회화와 사회의 의학화는 궁극적으로 일종의 '우생학(eugénisme)'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다. 위생교육을 통해 그는 인류가 생물학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으로도 평등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나가가 그는 이러한 신인류가 프랑스 혁명기의 평등주의 계몽정신과 이성에 근거해 건전한 도덕을 실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마디로 말해 위생은 인간 일반의 본성을 개선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우리 모두가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고 자연은 이미 우리로 하여금 이 일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개인의 총합으로서 우리는 이 과제를 수행해 모든 수단에 있어서 평등한 새로운 인간종(espèce d'égalitéde moyens)을 장기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인간종은 원시적인 유기체와 전혀 다르며 그것의 출현은 [법적이고 사회적인] 권리에 있어서 평등한 계몽적 문명(lumières)과 완성된 이성의 창조와 다름없다[13]."
평등한 새로운 인간종의 창조를 지향하는 의(醫)는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사회적 가치(valeur sociale)'를 가지며 그러한 가치를 추구한다. 카바니스는 의(醫)가 사회 및 정치적 차원에서 한 사회의 역사적 발전단계를 대표하며 의(醫)는 앞으로 점점 더 '인류 발전의 중요한 요인(facteur important dans le progrès de l'humanité)'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16]. 그런데 카바니스는 의(醫)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관해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임상의학의 탄생(The birth of the clinic, 1963)'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료정책이 보다 일관되고 포괄적으로 수행되기 위해 의(醫)는 국가의 차원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의(醫)는 이제 국가적 과제이다. 그래서 메뉴레(Jean-Joseph Menuret, 1739-1815)는 혁명 초기에 국가에 의해 재정 지원이 되는 무상의료제도를 구상했던 것이다[17]."
카바니스는 의학연구의 발전을 보장하고 의료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과제라고 규정하고는 국가 권력이 의(醫)의 실천과 발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구했다[18]. 과학을 넘어 사회와 도덕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의(醫)의 이상은 이제 국가 권력을 활용하지 않고는 실현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 권력이 의(醫)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의료계를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의료계가 환자의 건강을 증진하고 사회의 보건위생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필요함을 인식하고는 이러한 권력을 정당하게 국가에 요구하고 이렇게 위임 받은 권력을 적절하게 활용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국가가 의료계에 강압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라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국가에 참여했다는 말이다. 결국 카바니스 이후로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에서는 의료계와 국가의 상부적인 협조가 모든 의료제도의 전제가 되었다.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에 반영된 의학적 인간학

카바니스의 '의학적 인간학' 이념 덕분에 프랑스 의료계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자발적이고 선도적으로 의(醫)의 사회적 기능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논의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오늘날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에 반영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기본적으로 의료를 공공재로 규정하고 대부분의 의사가 사실상 의료공무원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가 자율규제와 자기정화의 근거로 삼는 의사직업윤리법이 실효성이 적은 의사협회의 윤리지침으로 선포되지 않고 법적인 처벌이 가능한 국가의 공중보건법(code de la santé publique)의 일부로 수립되어 있다. 이 법은 프랑스 의사회 국가회의(Conseil National d'Ordre des Médecins)의 각 지역 대표 54명이 주도하고 의사회 소속의 모든 의사가 참여해 마련되었다. 오늘날의 프랑스 의사회는 19세기 후반에 모든 전공과 소속 기관의 의사(개원의, 봉직의, 의대교원 등)를 대표하는 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23년에 창립되었고 현대적인 의사직업윤리법은 1947년에 제정되었다. 최신의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은 2012년 5월 7일에 개정된 것이며 총 5개 조(titre)와 112개 항(article)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조는 의사의 일반적 의무, 제2조는 환자에 대한 의무, 제3조는 의사 간의 관계 및 의사와 타 의료전문직과의 관계, 제4조는 의사전문직의 실천, 제5조는 기타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카바니스가 '의학적 인간학' 이념을 통해 제안한 의(醫)의 사회적 기능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건강과 질병은 과학을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하는 광의의 사회적 문제이며 따라서 사회적 해결책이 간구되어야 한다. 둘째로 의료는 기본적으로 이윤의 획득을 추구하는 상품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지원이 필수적인 공공재이다. 셋째로 의사는 사회적 차원에서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보건위생을 증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행사하지만 자율규제 원리를 준수함으로써 환자나 국가로부터 자신의 전문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
카바니스의 이러한 '의학적 인간학' 이념은 다음과 같은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의 조항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한 건강과 질병문제

의사는 모든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통해 환자의 고통(souffrance)을 경감시키려 노력해야 하며 정신적으로도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제2조 제37항). 환자의 질병은 단순히 신체적 통증(douleur)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초래하므로 의사는 환자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질병은 사회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며 따라서 사회적 해결책이 필요할 수 있다. 이때 의사는 환자의 상태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혜택을 환자가 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제2조 50항).
의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원조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제1조 제7항) 환자가 건강과 관련된 자신의 권리를 잘 행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제1조 제6항). 만일 어떤 환자가 학대나 가혹행위를 겪었음을 의사가 확인한다면 의사는 가능한 한 그 환자의 동의를 얻어 사직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제1조 제10항). 하지만 만일 그 대상이 15세 미만의 미성년자이거나 신체 및 정신적 상태나 연령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성인이라면 그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제2조 제44항).

2. 상품이 아닌 공공재로서의 의료

의(醫)는 결코 상업(commerce)처럼 실천되어서는 안된다. 직·간접적인 방법에 의한 모든 종류의 광고와 특히 상업시설과 같이 외관을 연출하는 모든 설비와 표시도 금지된다(제1조 제19항). 의사는 법률이 정한 특례조항의 조건 이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영리 목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치료법, 치료기구, 치료제를 배포할 수 없다(제1조 제21항). 다른 의사나 의료기관과의 관계에서도 의사는 경쟁에서 이기려는 목적으로 진료비를 할인하거나(제3조 제67항) 어떤 방식으로든 환자를 유인할 수 없다(제3조 제57항). 따라서 환자에게 세트요금(forfait)이나 예납금(provision)을 요구하는 것은 금지된다(제2조 제55항). 설사 법이 정한 특정한 조건에서 의료행위를 통해 경제적 이윤을 취득하는 것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더라도 의사는 상호간의 기본적인 상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의료는 원칙적으로 상품이 아닌 공공재이므로 경제적 이윤의 추구는 의사의 부수적인 권리이고 일차적이고 주된 의무는 국가가 시행하는 건강보호와 위생교육 활동의 지원이다(제1조 제12항).

3. 자율규제를 통해 전문적 자율성을 유지해야 하는 의사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은 프랑스 의사의 가장 대표적인 자율규제 원리이며 의사회 명부(tableau de l'ordre)에 등록된 모든 의사, 즉 공중보건법 제L.4112-7항이나 국제협약이 규정한 조건에 따라 전문적인 의료행위를 수행하는 의사나 의사직업윤리법 제88항이 규정한 경우처럼 의사를 돕거나 의사를 대신하는 의과대학 학생, 수련의, 전공의에게도 적용된다(제1조 제1항). 모든 의사는 의사회 명부에 등록될 때 지역 의사회 앞에서 의사직업윤리법을 숙지하고 있으며 이를 준수하겠다고 선서하고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제5조 제109항). 의료행위를 하고 의사의 자격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선서와 서약서가 필수적인 법적 요건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래로 의사직업윤리법은 국가가 강제한 법적 요건이 아니라 의료계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수립한 자율규제의 규범이다.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은 상징적인 선언의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프랑스 의사회는 공중보건법 제L.4122-1항에 입각해 의사직업윤리법의 준수를 감시할 책임을 지며 이 법의 위반에 대해 법적 처벌(juridiction disciplinaire)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제1조 제1항). 따라서 만일 의사가 의사회에 의도적으로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보고 또는 신고를 하면 규율적인 처벌(poursuites disciplinaires)을 받을 수 있다(제5조 제110항). 이러한 처벌의 권한은 의료계가 국가의 법적 권력을 위임 받아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것이지 의료계가 국가 권력에 포섭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의사는 국가가 법으로 보장한 직업적 자율성(autonomie professionnelle)을 의사직업윤리법의 준수를 서약한 후에는 어떤 방식으로도 포기할 수 없다(제1조 제5항). 심지어는 의사로서 활동을 하지 않을 때에도 의사는 의사직업의 신망을 추락시키는 어떤 종류의 행위도 하지 말아야 한다(제1조 제31항). 더 나아가 의사는 국가로부터 스스로의 전문적 자율성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침해하는 환자의 어떤 과도한 요구에도 굴복해서는 안된다(제2조 제50항). 이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국가, 사회, 환자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결론

20세기 프랑스 의철학을 대표하는 캉귈렘(Georges Canguilhem, 1904-1995)은 카바니스가 자유주의자, 반신학주의자, 반형이상학주의자였으며 프랑스 실증주의(posi-tivisme français)의 선구자였다고 평가했다[19]. 프랑스 대혁명의 격변기를 살았던 카바니스는 실증철학(philosophie positiviste)의 관점에서 의(醫)의 모든 지평을 변혁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차례로 의(醫)방법론과 의(醫)교육에 이어서 의과대학 및 종합병원과 같은 의료기관의 조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시도했다[20]. 그는 의(醫) 전반에 대한 자신의 개혁안을 궁극적으로 '인간학' 이념으로 집약했다.
인간학으로 정의된 의(醫)에서 환자의 질병과 건강은 개인의 신체·정신·도덕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적 환경과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전제로 이해되어야만 했다. 이 시대로부터 "의(醫)는 치료법과 그것을 위해 필요한 지식의 집대성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 의(醫)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homme non malade)'에 대한 경험과 '모범적인 사람(homme modèle)'의 정의를 모두 포괄하는 '건강한 사람(homme en santé)'을 목표로 한다[21]." 카바니스 이후로 어떤 사람이 건강하다는 말은 그 사람이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도덕적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의(醫)는 의사에게 환자의 사회적 환경의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게 되었고 이 의무는 '공중위생' 개념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카바니스는 자연과학과 정치제도로서의 '공중보건' 이념의 근대적 기틀을 마련했고 이 이념은 카바니스의 적극적인 정치활동 덕분에 19세기 초에 이르러 프랑스의 과학과 정치의 영역 모두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의(醫)와 사회의 경계를 허물고 의학의 사회화와 사회의 의학화를 동시에 추진했던 것이다. 의(醫)는 개인의 신체와 정신 건강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도덕에도 관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부여 받았고 이에 맞추어 공중위생의 역할도 강화되었다.
18세기를 전후로 프랑스 사회에서 분명하게 제도화된 역학적(épidémiologique) 조사는 의(醫)가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의 영역에도 관여하도록 요구했다. 의(醫)는 환자 개인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 사회의 구성원인 그 환자의 사회적 및 경제적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개선시켜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공중보건이란 명분으로 의(醫)는 한 개인의 건강(santé)은 물론이거니와 한 사회의 위생상태(salubrité)와 더 나아가서 한 국가의 보건안전(sécurité)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다[22]. 이제 의(醫)는 한 개인을 치료해 그가 속한 사회를 치료하고 반대로 한 사회를 개혁해 한 개인의 질병을 치료한다. 더 나아가 의(醫)는 개인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치료의 요구를 받기 전에 정상상태의 개인을 잠재적인 환자나 전염병의 매개로 간주하고 예방의 차원에서 정당하게 그 개인에게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한다. 18세기 카바니스 이후로 건강은 장기들이 침묵(silence)하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discrétion) 상태도 의미하게 되었다[23]. 결국 의(醫)가 인간학으로 확장되어 정의됨에 따라 건강과 질병은 신체, 정신, 도덕, 사회의 네 차원 모두에서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대혁명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관점에서 의(醫)의 본질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가 현재 프랑스 의사직업윤리법에 집대성되어 있다. 물론 프랑스 의료계도 사회의 필요와 대중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충족하며 국가 권력과 대립하는 과정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의료가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선도적으로 창출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부터 프랑스 의료계는 국가철학의 수립과 추진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프랑스에서 의사는 사회의 리더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대되었고 프랑스 의료계는 대중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 비해 200년이 늦긴 하지만 이제라도 의(醫)의 본질과 의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반성이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중추적인 기능으로서 의료란 우리나라에서 과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는 과연 어떤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의사는 어떤 지식과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러한 의인문학적인 반성을 기초로 우리 의료현실이 반영된 자율규제 원리도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의료계가 이 자율규제 원리를 철저히 준수한다면 전문직으로서의 의사가 개인과 사회에 대한 실천으로서의 의료를 올바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자율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Peer Reviewers' Commentary

본 논문은 한국 의사들에게 비교적 낯선, 프랑스의 '의학적 인간학'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러한 의-철학 사상이 유럽 대륙의 사회보건의료체계의 전통 수립에 기여하는 바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21세기가 진행되면서 특히 한국 보건의료복지 체계 내의 갈등구조가 심각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 시기에 진료행위와 보건정책, 의사의 역할과 국가의 역할 등의 고난도 방정식을 단순한 정답풀이가 아닌 방정식의 원리와 사상의 단계부터 근원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한국의 의사와 의학계가 줄곧 치중해 왔던 의학 지식 및 의료에 대한 역량뿐 만 아니라, 의-윤리 및 인문사회의학적 소양을 교수학습하고 이를 개인과 공공의 역량으로 확대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면서 아울러 보다 깊이 있는 의-교육이 시행되고 보건의료 정책들이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정리: 편집위원회]

Figures and Tables

Figure 1
Pierre-Jean-Georges Cabanis' medical anthropology and its 3 major domains.
jkma-57-104-g001

Acknowledgement

This study was supported by a Korea University Grant (K130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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